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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Feb 09. 2023

매즈 미켈슨의
더 헌트 & 어나더 라운드

씨네아카이브 11. 덴마크 영화 어디까지 봤니?

11번째 아카이빙은 지난 스웨덴 영화에 이어 북유럽 영화의 한 축을 맡고 있는 덴마크 영화! 덴마크는 루미에르 형제가 파리에서 첫 영화 상영을 했던 시기와 불과 6개월 차에 불과할 만큼, 영화산업의 태동이 굉장히 빨랐다. 이후 국가 차원의 여러 지원을 통해 꾸준히 성장하며 걸출한 감독과 배우들을 배출해 내고 있다. 그중 21세기 덴마크 영화를 대표하는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과 명실상부 덴마크 국민배우로 불리는 매즈 미켈슨이 함께 한 작품 <더 헌트>와 <어나더 라운드>를 소개한다.


"씨네아카이브 11. 덴마크 영화 어디까지 봤니?" 전문 읽기



<더 헌트>, 토마스 빈터베르, 2012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이혼 후 고향으로 내려온 유치원 교사 루카스(매즈 미켈슨)는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며 아들 마커스와 함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루카스를 둘러싼 한 소녀의 사소한 거짓말이 전염병처럼 마을로 퍼지고,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의 불신, 광기 어린 맹신, 집단적인 폭력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의 <더 헌트>는 성범죄 무고에 대한 영화로 치명적인 오해 하나로 인생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한 남자의 비극을 담고 있다. 영화는 아동학자의 실제 문서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는데 아이들이 실제로는 없었던 성추행 후유증을 보이는 모습이나 아이들이 루카스네 집의 지하실에 대해 진술하지만 실제로 집에 지하실이 없었던 사실 등 영화 속에서 등장한 사건들은 모두 해당 문서에 기록된 실화라고. 매즈 미켈슨의 호연과 극 전반의 우울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영화는 21세기 마녀사냥의 한 형태로 공동체 정의가 항상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소셜네트워크상에서 정확한 근거와 확인 없이 퍼지는 거짓 정보와 허위 소문, 편향된 주장이 남발하는 요즘 사회에 생각해 볼거리를 던지는 영화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선량한 인물로 평가받던 루카스(매즈 미켈슨)는 친구의 딸이자 자신이 근무하는 유치원 원생인 클라라의 거짓말로 인해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리게 되고, 그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가까웠던 친구들과 동료, 애인까지 모두 그를 의심하고 외면하기 시작한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공동체의 지나친 맹신은 폭력으로 이어져 루카스의 삶을 망가트린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사건의 진실을 초반부에 보여준 후 극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한 점의 의심도 하지 않는 오만으로 타인에게 폭력을 일삼고 정의라고 치부하는 것이 얼마나 섬뜩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공동체가 거짓을 부정당해서는 안 되는 진실로 만드는 과정은 영화의 제목처럼 사냥과 닮았다그러나 동시에 관객들에게 과연 당신이라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함과 동시에 진실과 정의 구현이라는 이름 아래 표출되는 분노가 과연 정당한 것이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함부로 심판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고구마 백 만개를 사이다도 없이 먹은 것 같은 답답함과 불편함의 이유를 평론을 보고서야 해소할 수 있었다. 클라라의 거짓말을 듣고 어른들은 이성적으로 사태를 파악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과정에는 한 가지 허점이 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지나친 확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사람들은 아이가 거짓말을 실토해도 “끔찍했던 기억이 무의식을 차단한 것” 정도로 치부한다. 그러나 이러한 어른들의 믿음에 악의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누구나 아이가 아닌 어른을 거짓말하는 존재로 인식하니까. 이러한 “이성의 역설과 광기로 인한 합리적 부조리의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성이 부정당한 집단은 마침내 비이성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진실이 부정당하자 집단적인 폭력의 형태를 보이는데 이 모습은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현대판 마녀사냥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토박이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마을 공동체로 가족적인 유대감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는 오프닝 호숫가 수영 장면을 통해 한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며 개인에게 박해나 폭력을 가하는 대상이 개인과 몰랐던 사이거나 다른 곳에서 이주해 왔기 때문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때로는 가장 무서운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기에 영화를 본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씁쓸함이 결코 가볍게 넘겨지지만은 않는다.




<어나더 라운드>, 토마스 빈터베르, 2020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같은 고등학교에서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마르틴, 톰뮈, 니콜라이, 페테르는 의욕 없는 학생들을 상대하며 열정마저 사라지고 하루하루가 우울하기만 하다. 네 친구는 니콜라이의 마흔 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알코올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마르틴이 실험에 들어간다. 인기 없던 수업에 활력이 넘치고 가족들과의 관계도 좋아진 마르틴의 후일담을 들은 친구들이 모두 동참하며 직장과 가정에서 인정받는 교사와 가장이 되기 위해 점차 알코올 농도를 올리며 실험은 계속되는데 과연 술은 인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가설의 결말은 어떻게 끝이 날까?


<어나더 라운드>는 ‘혈중알코올농도 0.05%가 되면 더 적극적인 성격이 발현된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실험을 시도하는 중년 남성들의 이야기다. 알코올에 대한 가설은 스콜데루드 박사가 서문을 쓴 알코올의 효능을 담은 책에서 소개된 것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애초에 0.05%의 알코올이 부족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0.05%의 알코올을 채워야 정상적인 형태가 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일종의 상상 실험으로 사실에 근거한 이론은 아닌데 감독의 시나리오가 재미있어 영화화를 허락했다고 한다. 영화는 칸에 초정되어 경쟁 부문 후보에 올랐는데 코로나로 영화제가 취소되면서 이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고, 세자르 영화제, 영국과 미국 아카데미에서 모두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영화는 미국판으로 리메이크가 확정되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을 예정이라고. (술 취한 디카르프리오의 연기 나만 기대되는 거?!)


영화는 원래 알코올이 없었다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에 대한 상상으로 시작하는 술에 대한 찬가 정도였는데 감독이 딸에게서 고등학생들의 자유로운 술 문화를 듣고 각본을 수정해 지금의 내용이 되었다. 딸의 모교에서 촬영했고, 극 중 학생들도 같은 반 친구들이며 딸이 마르틴의 딸로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촬영 전 전방주시태만 운전자로 인해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면서 음주에 대한 찬가에서 술로 삶의 활력을 찾아가는 과정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시나리오가 다시 한번 수정되었다고 한다. 감독은 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의 영감이 되어 준 딸에게 고마움을 표함과 동시에 그리움을 드러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는 술을 마셔야만 했던 40대 중년 남성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가설을 실험하는 단계를 따라가며 전개된다. 1단계 가설은 적정량의 알코올을 섭취했을 때 삶에 어떤 변화가 찾아오는가에 대한 실험으로 결과는 성공적이다. 마르틴과 니콜라이는 무료했던 수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아이들의 집중력과 참여를 끌어올리며 무기력하고 무능력해 보였던 교사의 모습에서 벗어난다. 2단계는 개인의 혈중알코올농도 실험으로 처음 정했던 규칙에서 조금씩 벗어나며 술에 빠져들게 된다. 다행히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고, 가설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3단계는 최대 혈중알코올농도 실험으로 궁극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까지, 즉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고 결과는 모두가 예상하는 그림과 다르지 않다. 통제를 벗어난 이들의 삶과 실험은 처음과 달리 망가지고 애써 다시 쌓아 올린 관계도 부서지게 된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알코올 향이 배어 있다. 그러나 술의 끝이 대부분 파국이었던 것에 비해 달콤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처럼 희극과 비극이 섞여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나친 음주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처럼 보이지만 술을 매개로 “정형화된 삶 속에서 간과하고 있던, 진정으로 삶을 살아있게 하는 의지를 일깨우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권태에 빠져 삶의 열정과 꿈을 잊어버렸던 사람들에게 권태의 탈을 쓴 음주 상태에서 깨어나 ‘Another Round’를 시작하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마크 철학자 키에르 키르케고르의 격언 ‘젊음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란 말을 비추며 시작하는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사랑하는 꿈을 꾸는 동안에는 청춘이란 의미가 된다. 영화에서 "청춘을 잃어버리고 삶의 위기를 겪고 있는 주인공들이 알코올로 위기를 극복해보려 하며, 결국에는 사랑 즉 청춘을 상징적으로 다시 찾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이동진 평론가님은 빈터베르 감독이 어떤 이유에서 알코올에 대한 상상 실험에 집중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이 삶에서 가진 행복의 양과 상태에 희망을 품은 이론으로서 술은 즐거움 ・ 쾌락 ・ 행복을 상징한다 가정하고, 우리는 행복을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술로서 강제로 항상 행복한 상태를 인간의 기본값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 그리고 주인공들의 가설 진행 과정과 일말의 사건을 통해 “사실 삶은 무조건 행복할 수 없고, 고통과 위기는 필연적인데 인간의 삶이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는 믿음이 오히려 삶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 개인적으로 행복한 상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편인데 왜 항상 남들보다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이해하게 된 명쾌한 해설이라 인상적이었다. (그에 따른 자기성찰과 반성은 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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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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