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Apr 20. 2023

몽글몽글 첫사랑 영화
<노트북>&<플립>

씨네아카이브 15. 첫사랑 추천 영화 2편

봄은 특별한 것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계절 같다. 로맨스 영화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기도 하고.️ 15번째 아카이빙은 다시 돌아온 로맨스 특집! 아날로그 감성으로 가득한 20세기 로맨스, 절절한 멜로, 통통 튀는 로맨틱 코미디도 좋지만, 이번에는 몽글몽글한 첫사랑 영화다 각자 인생 첫사랑 영화로 꼽는 작품이 많겠지만 온전히 개인 취향 기준 가장 좋아하는 <노트북>과 <플립>을 골랐다. 2편의 영화를 소개하기 전에 씨네아카이브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던 한국, 일본, 대만 그리고 프랑스 첫사랑 영화 4편을 먼저 간략하게 소개한다.


“설원 위에서 외쳐보는 당신의 안부, <러브레터> (이와이 슌지 감독, 1995년 개봉)”

<러브레터>는 이와이 슌지가 쓴 소설이 원작으로 작가가 직접 각본과 연출까지 맡았다. 북해도 오타루의 설원을 배경으로 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도 유명하고, 영화와 함께 영화의 배경지, OST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다. 히로코가 연인을 잃은 설산에서 그리움과 애틋함을 꾹꾹 눌러 담아 안부를 묻던 장면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이자 “잘 지내고 있어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라는 대사는 많은 패러디를 양산하기도 했다. <러브레터>는 개인적으로 첫사랑의 설렘,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아름답게 그린 일본 멜로 영화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작품! 봄보다 겨울에 조금 더 어울리는 영화이긴 하지만...

 

“Cap ou pas cap?,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얀 사무엘 감독, 2003년 개봉)”

<러브 미 이프 유 데어>는 어린 시절부터 ‘사랑 게임’을 이어온 두 주인공을 그린 프랑스 영화로 달콤한 사탕보다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 같은 영화에 가깝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심오한 감성(?)으로 그려낸 연출과 인물, 여러 해석이 난무하는 결말 때문에 처음 봤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기도 했다. 흔히 생각하는 첫사랑 영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독창적인 작품으로 마리옹 꼬띠아르와 기욤 까네의 풋풋했던 시절을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소피와 줄리앙의 내기 신호와 같은 ‘Cap ou pas cap’은 ‘capable ou pas capable’의 줄임말로 번역하면 ‘할 수 있어? 없어?’쯤 되겠다. 실제로 있는 놀이 이름이기도 한데 영화 속에 나온 방식 그대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성공하기 힘든 퀘스트를 던지면서 “cap ou pas cap”라고 외치면 놀이가 시작된다. 영화를 위해 만든 놀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있는 놀이라는 것을 알고, 프랑스는 아이들의 놀이마저 범상치 않은 감성을 지녔다 생각했었더랬다...

 

“내 눈 속의 사과 같은 너,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구파도 감독, 2011년 개봉)”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청춘 로맨스 특히 첫사랑 영화로 잘 알려진 대만 영화. 비슷한 감성의 첫사랑 대만 영화들을 이야기할 때 꼭 언급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이 직접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2000년대 온라인 소설을 보는 것 같은 유치한 설정과 작위적인 묘사가 많지만, 그 시절 인소 좀 읽었다 하는 이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런 하이틴 장르의 첫사랑 영화들은 좀 유치해야 맛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작품의 영어 제목(You are the apple of my eye) 만큼은 견디기 힘들다. 닭살이 피부를 뚫고 나올 것 같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 2012년 개봉)”

<건축학개론>은 국내에서 첫사랑 영화를 언급할 때 꼭 거론되는 작품으로 과거 ‘첫사랑’의 기억으로 얽혀 있는 두 남녀가 15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나 추억을 완성하는 이야기. 스무 살의 승민을 연기한 이제훈, 서연을 연기한 수지, 승민의 동네 친구 납득이를 연기한 조정석까지 해당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납득이는 당시 신드롬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분이 패러디하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짤이 돌아다니는 진정한 감초 캐릭터였다. (난 모든 역할 중 납득이가 제일 좋았는데 ㅎㅎㅎ) 개인적으로는 작품 곳곳에 녹아 있는 아날로그 감성과 영화의 삽입곡들이 기억에 남는 작품.




<노트북 (The Notebook)>, 닉 카사베츠, 2004년 개봉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17살 노아는 밝고 순수한 앨리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되고 둘은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들 앞에 놓인 신분격차라는 장벽에 막혀 이별하게 되고, 24살이 된 앨리는 우연히 신문에서 노아의 소식을 접하고 잊을 수 없는 첫사랑 앞에서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앨리와 노아 두 사람의 첫사랑은 마지막 사랑이 될 수 있을까?


<노트북>은 니콜라스 스팍스가 쓴 소설이 원작으로 원작은 작가의 장인, 장모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로 밝혀지면서 더욱 주목받으며 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한 <노트북>은 출판사와 계약도 하기 전에 영화의 판권이 팔렸다고 하니, 영화화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연출을 맡은 닉 카사베츠 감독은 소설을 읽고 “소설 속 사랑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자, 바라왔던 사랑이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라며 원작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섬세한 연출과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원작의 절절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노트북>은 로맨스 영화를 언급할 때 꼭 회자되는 많은 이들의 인생작으로 국내에서도 개봉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으며 2016년과 2020년 두 번이나 재개봉되었다. 풋풋했던 첫사랑으로 만나 엇갈린 운명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향한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는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로맨스의 바이블로도 불립니다. 주연을 맡은 레이첼 맥아담스와 라이언 고슬링은 <노트북>을 통해 스타 반열에 올랐는데 레이첼 맥아담스는 이후 로맨스 장르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명실상부 로코 퀸이 되었다. 라이언 고슬링은 ‘노아’역으로 가장 먼저 낙점되었다는데 감독은 “잘생기지도 쿨 하지도 않고 약간 겁쟁이처럼 보이는 보통 남자의 이미지가 주인공과 닮았다”고 생각했기에 그를 노아로 캐스팅했다고 한다. 솔직히 감독의 안목에는 이견을 제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라이언 고슬링이 아닌 노아는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는 앨리와 노아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졌던 1940년대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현재에서 시작해 현재에서 끝나는 구조를 띠고 있다. 감독은 노신사가 치매를 앓고 기억을 잃은 노부인에게 앨리와 노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밋밋할 수 있는 플롯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또 “가난하지만 휘트먼의 시를 읽는 노아와 부호이지만 음담패설을 즐기는 앨리의 아버지를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신분의 차를 뛰어넘는 사랑”을 정직하게 그려냈다.


지디는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했지만 <노트북>을 보고 있으면 첫사랑만큼은 영원하고, 한날한시에 사랑하는 사람과 숨을 거둔다는 연애관은 촌스럽기보다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곁을 지켜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리고 그런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어쩌면 영화가 오랫동안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도 평생에 단 한 번뿐인 사랑, 오직 단 한 사람을 만나고 함께 한다는 클리셰 같은 이야기가 사실은 쉬운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플립 (Flipped)>, 롭 라이너, 2010년 개봉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새로 이사 온 옆집 소년 브라이스를 보고 첫눈에 사랑을 직감한 7살 소녀 줄리. 솔직하고 용감한 줄리는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만, 브라이스는 그런 줄리가 부담스럽다. 줄리의 애정 공세를 피해다니기만 6년. 브라이스는 줄리가 직접 부화시켜 키운 닭이 낳은 달걀을 매일 가져다 주는 걸 거절하지 못하고 몰래 버리다 들키게 되고, 화가 난 줄리는 그날부터 브라이스를 피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향한 줄리의 관심이 사라지자 브라이스는 오히려 줄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는데... 줄리의 첫사랑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


영화 <플립>은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원작의 배경은 2000년대이지만 영화에서는 1960년대로 시대 배경이 바뀌었다. 국내에서는 극장 개봉 없이 DVD로만 출시되었다가 2017년 재수입하면서 극장에서도 개봉하게 되었는데 극장 개봉이 없었음에도 ‘설레고 귀엽고 감동과 교훈도 있는 풋풋한 첫사랑 로맨스 영화’로 입소문을 타며 팬들의 끈질긴 요청 끝에 7년 만에 스크린 정식 개봉이 확정되었던 거라고. 개인적으로 풋풋한 하이틴 첫사랑 영화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재개봉 후에도 꾸준히 여러 커뮤니티에서 ‘인생 영화’로 꼽히며 평균 이상의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 (제발 보라구! 두 번 보라구!)


영화는 <어 퓨 굿맨>,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연출한 롭 라이너 감독의 작품으로 6번째 아카이빙 “20세기 로맨스”편에서 소개했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역시 롭 라이너가 연출한 작품! 감독은 아들의 소개로 원작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사랑 이야기에 매료되어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한다. 감독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영화로 누구나 어떤 사람에게 처음 반했던 순간, 특히 첫사랑은 잊지 못하는 것처럼, 그때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과거를 돌아보고 기억을 되짚어 보면서 웃음 지을 수 있기를 바랬다”고.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플립>은 각색 과정에서 시대 배경이 바뀌게 되었는데 원작과 달리 완전한 아날로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덕분에 주인공들의 순수하고 풋풋한 감정이 한층 돋보였고 파스텔 톤 색감으로 가득 차 있는 전원 풍경과 주인공들의 복고 의상이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줘서 좋았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생각과 입장을 보이는 줄리와 브라이스의 시선이 교차하는 구성도 흥미롭다. 영화의 제목인 ‘플립(flipped)’은 ‘뒤집힌’이라는 뜻으로 동일한 사건 속에서 줄리에서 브라이스, 브라이스에 줄리로 화자가 변화할 때마다 화면도 상하좌우로 전환되며 제목에 충실한 연출을 보여준다. ‘flipped’은 ‘반했다’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하는데 브라이스가 줄리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의 대사 “I had flipped, completely”를 통해 직접적으로 암시된다.


영화는 풋풋한 첫사랑 영화이면서 동시에 성장 영화의 면모도 담고있다. 줄리와 브라이스 두 사람의 성장담을 통해 인생에 있어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원작의 작가는 “아이들이 누군가를 판단할 때 겉모습이 아닌, 사람의 내면을 알아보는 법을 어떻게 배우는지를 담고 있다”고 밝혔는데 영화에서 줄리와 브라이스의 가정은 상반된 모습으로 그려진다. 줄리네 집은 넉넉하진 않지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보인다. 반대로 브라이스의 가정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소통이 단절되어 있다. 원작과 영화는 두 가정을 비교해서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플립>은 첫사랑 이야기 속에 삶의 교훈과 가치를 적절하게 녹여내고 이를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전달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순수함을 깨우치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줄리 캐릭터는 선호하는 유형의 인간상이자 닮고 싶은 인간상이었다. 사람들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따뜻하고, 당차고, 속이 깊은.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매거진의 이전글 케이트 블란쳇의 순간들 <블루 재스민> & <캐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