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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May 04. 2023

동화 속 비극 <플로리다 프로젝트>

씨네아카이브 16. 아이들의 세상 Part. 1

5월은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까지, 기념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발행되는 16번째 아카이빙은 아이들의 세상을 담은 영화 2편을 소개한다.


"씨네아카이브 16 아이들의 세상" 전문 읽기



<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 2018년 개봉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미국 올랜도 디즈니 월드 근처 ‘매직 랜드’라는 모텔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6살 무니. 디즈니 월드의 화려함과 달리 이곳에는 놀이터라고는 없다. 하지만 옆 모델 ‘퓨처 랜드’에 무니 또래의 소녀 젠시가 이사를 오고, 무니와 젠시는 금세 친구가 되어 사방을 자신들만의 놀이터로 만든다. 문제 많은 엄마와 모텔에 살면서 환상의 세계를 찾아낸 무니는 오늘도 친구들과 함께 신나는 하루를 보내러 나서는데... 무니와 친구들이 발견한 환상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데 탁월한 숀 베이커 감독의 작품으로 월트 디즈니 월드가 위치한 휴양지 올랜도 외곽을 배경으로 비현실적인 느낌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미국 빈민층의 현실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담아내 평단의 호평받았다. 무니 역의 브루클린 프린스는 이 영화로 역대 최연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 아역상을 받았는데 당시 함께 후보에 올랐던 후보자들에게 끝나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한 수상소감이 커뮤니티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엄마 핼리 역을 맡은 브리아 비나이테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일반인으로 신선한 얼굴을 찾고 있던 감독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캐스팅했다고 한다.


영화 제목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처음 월트 디즈니 월드 건설에 착수할 때 불린 프로젝트 이름과 홈리스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명과 동일한 제목으로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0년대 중반 디즈니가 테마파크를 건설하기 위해 진행한 올랜도 일대의 부동산 매입 계획으로 디즈니 월드를 찾는 가족 관광객을 겨냥해 화려한 외양의 모텔이 주변에 우후죽순 지어졌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소득층 홈리스들이 매주 방세를 내며 장기 투숙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 용어로 극 중 모녀가 거주 중인 모텔 역시 실제로 저소득층 홈리스들이 매주 방세를 내며 장기 투숙하는 곳이다. 해당 지역 모텔에는 정부에서 확인하지 못한 히든 홈리스들이 넘쳐난다고 하는데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 한주 단위로 방세를 지불하며 모텔 방을 전전하며 시스템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해 나가는 셈이다.


션 베이커 감독은 화려한 휴양지 이면의 감춰진 어둠에 초점을 맞춰 3년간의 지역 조사를 통해 영화를 완성했다. 그리고 ‘이곳 역시 결국은 사람이 사는 곳’이란 결론을 얻고 아이러니한 올랜도 지역의 모습을 아이들의 시점에서 그림으로서 디즈니랜드의 환상적인 외관 뒤에 가려진 그늘과 아이러니를 증폭시켰다. 감독은 이전 작품에서도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중국인 이민자, 포르노 배우, 트랜스젠더)를 그려왔는데 사회 중심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과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들을 소모 거리로 만들지 않고, 철저한 사전 조사를 기반으로 한 현실성과 현장감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감독은 별도의 세트를 짓지 않고 배경이 되는 공간에 인물을 데려다 놓고 상황을 찍고,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캐스팅한다고. 그래서인지 션 베이커 감독의 작품을 보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나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보기 전 찾아본 포스터와 시놉시스를 읽고 어린이들의 모험담을 그린 귀엽고 행복한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범상치 않았던 오프닝부터 극이 진행될수록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예상과 달라 당황스럽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영화 마케팅이 행복한 영화처럼 포장된 것 같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수입사 인터뷰에 따르면, “감독과 제작진들이 ‘영화가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히든 홈리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유년 시절과 모녀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아이들의 모험과 일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고, 허름한 모텔에서 산다고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없으며,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도리어 못된 시선이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에 나온 마케팅 방식”이라고 한다.


평단의 극찬을 받은 만큼 기억에 남는 한 줄 평도 많았는데 그중 가장 공감이 갔던 건 “타인의 곤경을 동정하거나 착취하지 않는 휴머니즘의 예’라는 김혜리 평론가님의 평이었다. 실제로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주인공 모녀가 겪는 빈곤을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는 척 구경거리로 삼지 않는다. 보통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해답을 제시하는 형식을 띠지만 어떤 영화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관객들로 하여금 계속 생각해 보게 하는데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바로 그런 영화다. 영화를 보는 동안 즉각적으로 반응해 분노하고 슬퍼하다 영화관을 나서면 금세 휘발 되어버리는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복잡한 문제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 보도록 한다. 어떻게 보면 전자는 공감이 아닌 연민의 감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연민은 ‘즉각적이고 휘발하는 반응’이기 때문에 우리는 연민보다는 공감을 기르며 살아야 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연민에는 상대를 생각한다는 마음 아래 그래도 나의 상황이 상대보다는 낫다는 안도가 숨겨져 있어 때로는 연민의 대상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어렵긴 하지만 공감의 탈을 쓴 연민만으로 공통점에만 공감하며 살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면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됐다.


영화는 빈곤층에 대한 묘사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보통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무슨 돈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빈곤한 처지만 강조하는 경우가 있는데 영화는 아이들이 간식 살 돈을 어떻게 구하는지가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재미와 놀이를 찾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더 사실적으로 아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극이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들도 사회 문제를 더 냉철하게 바라보고 섣부른 판단을 지양하게 된다. 션 베이커 감독은 영화를 무니의 눈높이에서 어린아이들의 여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상하게 된 이유로 “싸구려 모텔에서 사는 아이들이 있는데 하필 그 모델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알려진 디즈니월드 근처에 있다는 점과 이러한 아이러니와 슬픔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히든 홈리스 문제를 디즈니월드 주변부에 사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찍게 된다면 사람들에게 미국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더 뚜렷하게 전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히든 홈리스 문제뿐만 아니라 아동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한다. 극 중 핼리는 일반적인 엄마의 모습으로 보기 힘들지만, 딸을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사실상 아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물리적인 폭력만큼 무서운 것이 방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보호자로서 아이를 사랑하지만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는 딜레마를 핼리를 통해 보여주는 셈이다. 미국의 복지 정책은 아이를 제대로 양육할 수 없는 부모로부터 아이를 떼어놓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데 과연 이것이 올바른 방식인가, 아니면 그래도 가족의 틀 안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해당 질문에 대한 관객들의 답은 매직 캐슬의 관리자로 나오는 바비의 모습이 대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바비는 관리자로서 엄격한 부분이 있지만 정도 많고 성실하며 책임감도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결정적 순간에는 결국 방관자가 된다. 사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일들은 단순한 개인의 선의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고, 영화가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비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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