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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May 15. 2023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놀이터
<플레이그라운드>

씨네아카이브 16. 아이들의 세상 Part.2

5월은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까지, 기념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발행되는 16번째 아카이빙은 아이들의 세상을 담은 영화 2편을 소개한다.


"씨네아카이브 16 아이들의 세상" 전문 읽기



<플레이그라운드 (Un Monde)>, 2021년 개봉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막 학교에 입학한 7살 노라는 낯선 학교가 무섭기만 하다. 노라의 오빠 아벨은 동생을 위로하지만, 사실 아벨도 학교가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점차 친구도 사귀며 학교에 적응해 가는 노라는 우연히 아벨이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노라는 어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하지만 아벨은 노라가 그저 침묵하길 바라는데... 두 남매가 맞닥뜨린 아이들의 세상 ‘플레이그라운드’는 어떤 모습일까?


<플레이그라운드>는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공개된 후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받으며 전 세계 영화제에서 30개 이상의 트로피를 휩쓸고, 제94회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벨기에 출품작으로 주목받았다. 72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 동안 극을 이끌어가는 노라를 연기한 배우 ‘마야 반데베크’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한데 마야는 캐스팅 세션을 통해 선발되었고, 캐스팅에 합격한 후 “자신의 모든 노력을 영화에 쏟아붓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고. 테스트는 아이들에게 각자의 운동장을 떠올려 보고 무슨 게임을 했는지 질문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제스처와 말투를 카메라로 잡아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는 모든 것이 아이의 시선에서 그려지고 있는데 노라가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느끼는지를 관객들이 최대한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각자의 경험을 투영하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영화를 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촬영 방식을 통해 찍겠다는 직관이 있었고, 이는 관객들의 몰입감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영화 속에서 모든 것은 노라가 원하는 대로 인식되는데 노라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작은 정보만 인식하고, 그래서 공간의 일부분만을 보게 되며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그려진다. 나는 Cinef 채널을 통해 처음 보게 되었는데 영화가 중반부까지 진행된 후부터 감상하기 시작했음에도 금세 영화에 몰입하게 됐다.


영화는 아이들이 가장 처음 경험하게 되는 작은 사회인 학교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남기게 되는 필연적인 상처와 아픔을 날카롭게 그려냈다. 노라의 시선으로 그려진 학교는 무감각한 어른들과 무법적인 또래 아이들로 이루어진 잔혹한 공간이다. 이러한 속성은 섈로 포커스(shallow focus, 이미지의 한층 만을 강조하는 촬영 기법)와 오프 스크린 사운드(Off Screen Sound, 일체의 가공된 음악 없이 화면 밖의 상황 전개를 알리는 효과음) 등을 활용하여 표현되는데 실제로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카메라의 시점은 노라에게 맞춰져 있다. 영화의 무대도 초등학교 안으로 한정되어 등하교 장면을 주기적으로 보여주고, 교실과 식당, 체육관과 수영장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플레이그라운드>는 보고 있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아픈 영화였다. 다 보고 난 후에는 노라를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영화는 나락으로 추락하며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마지막 희망을 끈을 놓지 않으며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벨기에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다르덴 형제의 연출방식과도 닮았는데 실제로 감독인 노라 완델은 인터뷰를 통해 다르덴 형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르덴 형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관심과 그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바탕으로 리얼리즘에 기반해 사회적인 테마를 다룬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로 사회에서 소외된 불안정한 형태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는데 다큐멘터리 작업을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다큐적 화법이 많이 느껴진다.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피해 학생뿐만 아니라 그 형제•자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이런 연쇄적인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동 정신의학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같은 공간 안에서 형제나 자매가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본인이 고통받는 것과 같다고 느끼게 되고, 이는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유발하기 때문에 학교생활에 적응하기도 더 힘들어진다. 이런 감정적 동화 작용이 더 나아가게 되면 자신의 감정이나 현실을 부인하게 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피해자가 겪는 고통을 마침내 깨부수고 결속력이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아벨과 노라처럼.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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