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17. 가족이라는 이름 Part .1
5월이면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가 많이 개봉한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가족은 함께 있을 때 기쁨을 배가시키고, 슬픔을 상쇄시켜 주기도 하며, 나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존재가 아닐까.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가족뿐이라는 어른들의 말처럼. 나는 가족영화 하면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유독 가족을 다룬 작품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가족의 형태와는 조금 다른 궤를 가진 가족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감독이기도 하다. 17번째 아카이빙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영화 2편을 골랐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Like Father, Like Son), 2013년 개봉
자신을 똑 닮은 아들과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는 성공한 비지니스맨 료타는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한 통이 전화를 받게 된다. 6년간 키운 아들이 친자가 아니고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것. 료타는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다른 친아들의 가족들을 만나고 자신과 아들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고민과 갈등에 빠지게 되는데... 병원의 실수로 한 순간에 뒤죽박죽 되어 버린 두 가족의 삶은 어떻게 될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히로카즈 감독이 아버지가 된 후 딸을 보며 느낀 감정과 고민을 담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직업 특성상 바빠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데 딸이 자신을 낯선 사람처럼 대하는 것을 보고 부모와 자식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감독은 집을 나서는 자신에게 딸이 손님에게 하듯 “또 놀러 오세요”라고 하는 말을 듣는 순간(!) “핏줄이 연결돼 있다는 것만으론 아버지가 될 수 없구나”라는 것을 느꼈고 “핏줄과 시간 중 어떤 것이 부모와 자식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것인가 생각하게 됐다”라고 밝히며, 아버지이지만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는 아버지와 자기 모습이 다를 것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아버지의 이야기를 직접 그려 보기로 결심했다고.
영화는 아들이 병원에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비롯해 세계 유수영화제들을 휩쓴 2013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국내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국내에 그의 역량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나도 해당 작품을 통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입문하게 되었다.)
영화는 어느 정도 사실에 기인하고 있다. 베이비붐이 일었던 1960년대 일본에서는 실제로 아이가 바뀌는 사건들이 많았다고. 감독은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뒤바뀐 사건의 재판 자료라든지 소설을 기반으로 당사자와 가족의 마음, 심리, 그리고 본인이 느낀 감정을 담아 시나리오를 썼는데 현실에서는 대부분 가족이 혈연을 선택했지만, 소설에서는 아이를 바꾸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을 보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혈연을 외면 하기란 쉽지 않지만, 혈연에 연연하지 않는 색다른 해결 방안을 영화를 통해 제안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영화 속에는 상반된 두 아버지가 등장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는 주인공 ‘료타’와 바뀐 친아들을 키운 아버지 ‘유다이’로 유다이는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아버지로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아버지의 역할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고 여긴다. 반대로 료타는 완벽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며 자신의 가치관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격한 아버지로 그려진다. 유다이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없기 때문에 료타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인생이 료타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에 료타는 항상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모든 것에 성패의 잣대를 댄다. 그렇기에 료타에게 유다이는 아들에게 부족한 아버지처럼 여겨지지만 때로는 유다이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혼란스러워한다.
영화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료타와 유다이는 성격도 삶의 가치관도 정반대이기에 두 가정의 경제적 대비 역시 뚜렷하게 묘사되는데 사회적 성공과 부를 갖춘 아버지와 가난하지만 인간적인 아버지를 대비시켜 보여주면서 두 사람에 대한 심리 묘사를 한층 더 돋보이도록 한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가족과 살게 된 두 명의 아이도 상반되는 성격으로 묘사되는데요. 엄격한 료타의 아들로 살았던 ‘케이타’는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의 아이로 자랐지만, 자유분방한 유다이의 아들 ‘류세이’는 장난기도 많고, 한순간에 부모님이 바뀌어 버린 상황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는 솔직한 성격의 아이로 그려진다. 핏줄은 다르지만, 함께한 시간만큼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성장한 셈이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과연 가족을 잇는 것은 핏줄일까, 함께 한 시간일까?” 고민하게 된다.
영화는 우리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핏줄을 떠올리지만, 사실은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런 의미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동진 평론가님은 영화의 한 줄 평으로 “가족을 만드는 것은 본성이 아니라 역사”라고 했는데 역사라는 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과 시간의 축적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가족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가족의로서 진짜 의미가 살아난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막장처럼 보일 수도 있는 ‘뒤바뀐 아이’라는 소재를 사려 깊게 다뤘기 때문에 관객들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들이 겪는 혼란과 갈등을 진지한 성찰과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으며, 아이가 바뀐 것을 알게 된 이후에 집중해 ‘과연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또 새로 데리고 온 아이 사이에서 부모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성찰이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하도록 하는 것 아닐까.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