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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May 25. 2023

버려진 사람들이 모여 가족이 되었다 <어느 가족>

씨네아카이브 17. 가족이라는 이름 Part. 2

5월이면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가 많이 개봉한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가족은 함께 있을 때 기쁨을 배가시키고, 슬픔을 상쇄시켜 주기도 하며, 나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존재가 아닐까.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가족뿐이라는 어른들의 말처럼. 나는 가족영화 하면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유독 가족을 다룬 작품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가족의 형태와는 조금 다른 궤를 가진 가족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감독이기도 하다. 17번째 아카이빙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영화 2편을 골랐다.


"씨네아카이브 17. 가족이라는 이름" 전문 읽기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년 개봉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서 생활하는 가난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어느 가족은 우연히 길 위에서 떨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가족처럼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각자 품고 있던 비밀과 간절한 바람이 드러나게 되는데... 조금 특별한 어느 가족의 이야기는 어떤 끝을 맺게 될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2018년 칸 경쟁 부문 진출작이자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감독이 노부부가 사망하자 그 자녀와 자손들이 사망 처리를 하지 않고 연금을 받아 생활하다 체포된 가족의 뉴스를 보고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이 작품을 통해 “가족의 의미에 대해 지난 10년 동안 생각해 온 모든 것을 담은 영화”라고 전했는데 감독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가족’을 중심에 두고,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짜 가족이었던 이들의 모습을 통해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키키 키린이 연금 수령자인 할머니 시바타 하츠에로, 릴리 프랭키가 시바타 오사무로 출연해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 인자한 할머니와 어머니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키키 키린은 <어느 가족>을 마지막으로 별세하며, 해당 영화가 그녀의 유작이 되었다. 무엇보다 안도 사쿠라에 대한 평단의 극찬이 많았다. 안도 사쿠라는 무심한 듯하지만 속 깊은 엄마 시바타 노부요 역을 맡았는데 극 후반부 취조실 장면에서는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해당 신을 본 케이트 블란쳇은 “앞으로 우리가 찍는 영화에 우는 장면이 있다면, 그것은 안도 사쿠라를 흉내 낸 장면일 것이다”라는 말로 그녀의 연기를 극찬했다고.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어느 가족>은 얼핏 보면 할머니와 부부, 처제 그리고 아들과 소녀까지 3대가 함께 사는 평범한 가족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두 우연한 계기로 함께 살게 되었을 뿐 누구도 진짜 혈연관계로 맺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다고 가족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혈연을 넘어선 형태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으며,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영화를 보고 난 후 관객들도 같은 고민을 하기를 바랐다”라고 밝혔는데 이 같은 고민과 함께 영화를 보면 영화의 마지막, 소녀가 친모의 곁으로 돌아가게 된 이후의 모습을 비춰주는 장면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는 혈연을 넘어선 가족의 형태뿐만 아니라 사회 제도 밖에 놓인 사람들의 빈곤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는데 각 구성원은 특정 사회 문제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할머니 하츠에는 노년층의 고독 문제, 노부요와 오사무 부부는 실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복지 문제, 그리고 아들 쇼타와 소녀 유리는 아동 방임 및 학대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이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었더라도 세상과 단절된 구성원들이 모여 이루어진 가족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자연스레 캐릭터와 사회문제를 연결해서 보게 될 수밖에 없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좋은 가족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보다 여러 형태의 가족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며, “가족들은 범죄를 일으키고 법의 심판을 받게 되지만 혈연이 아닌 형태로 공동체를 구성해서 가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었다”고 밝혔는데 혈연관계가 아닌 이들을 가족으로 묶어준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표면적으로는 ‘돈’ 때문으로 보인다. 오사무와 아키의 대화나 할머니가 죽은 후에도 연금을 받기 위해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집에 숨겨둔 돈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이들의 유대감이 반드시 금전적인 이유가 전부라고 말하긴 힘들다. 그 이면에는 분명히 연대 의식과 사랑이 있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구성원 모두 서로의 진짜 가족에게서는 사랑과 유대감을 나누지 못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츠에 할머니는 자식이 있어도 연락하지 않고, 남편은 바람을 피워 다른 가족을 꾸렸다. 아키의 가족들은 그녀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쇼타와 유리는 친부모로부터 방치된 걸 보고 노부요가 데려왔다.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그들의 존재가 드러나고 외부에서는 돈 때문에 얽힌 관계로만 봤을지 몰라도 어쩌면 그들 스스로는 유대감을 나누는 진짜 가족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함께했던 바닷가 여행에서 하츠에 할머니가 읊조린 ‘고마웠다’는 말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사랑으로 함께해 준 그들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인사로 느껴졌으니까.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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