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파리 한 바퀴 ep. 13
파리 곳곳에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이 많다. 보통 식료품 위주의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같은 막쉐가 대부분이지만, 유럽 벼룩시장의 낭만이 곳곳에 묻어나는 대표적인 벼룩시장이 두 곳 있다. 하나는 파리 북쪽의 생투앙, 다른 하나는 남쪽의 방브 벼룩시장. 파리 가장 남쪽에서 열리는 방브 벼룩시장은 현지인들뿐만 아니라 여행자들도 즐겨 찾는 대표적인 움직이는 빈티지 마켓으로 손때 묻은 찻잔부터 그림, 엽서, 인형, CD, 카메라, 장난감 등 두 눈 크게 뜨고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파리 방브 벼룩시장(Puces du vanves
방브 벼룩시장은 주말 아침에만 잠깐 열리기에 놓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메트로 13호선을 타고 Port de Vanves 역에서 나오면 금방이다. 버스로는 58번, 95번 버스를 타고 Port de Vanves에서 내리면 된다. 95번 버스의 경우 방브 벼룩시장이 열리는 시장 초입 근처가 종점이기 때문에 95번 버스가 지나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방문하면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7시에 문을 열지만 가장 활기를 띠는 시간은 11시 ~ 12시 사이. 1시가 넘어가면 파장 분위기에 접어들기 때문에 구석구석 둘러보고 싶다면 10시쯤 도착해서 구경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냥 두면 왠지 낡고 무서워 보일 법한 인형이나 그림도 벼룩시장에서는 제 자리를 찾은 듯 클래식한 매력을 발산하는데 그림이나 책, DVD, 비디오, CD와 테이프 더미는 꼼꼼히 뒤져보면 진귀한 것들도 많이 찾을 수 있다. 가장 많이 보이고 부담 없이 구입하기 좋은 것은 찻잔. 그 외에는 액세서리와 리넨 제품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특히 저렴하게 나온 그림도 많은데 방브 벼룩시장도 '알고 보니 억 소리 나는 명화였다 카더라' 썰을 품고 있다. 오래전 억 단위의 고갱 작품을 10유로도 안되는 가격에 사 갔다는 말을 듣고 나도 숨겨진 역작은 없을까 열심히 찾아봤지만 물건도 아는 만큼 보이고 또 많이 사 본 사람이 잘 산다는 결론.
아기자기한 것들도 많아 특별히 살 물건이 없더라도 구경만으로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데 어쩌면 벼룩시장의 진짜 묘미 '소비'가 아닌 '아이쇼핑'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물건 사러 간 주인이 나무 둥치에 묶어두고 간 댕댕이, 주인 따라 열심히 코를 킁킁거리며 물건을 살피는 댕댕이 구경은 덤이고. 방브 벼룩시장은 대로를 따라 길게 펼쳐져 있는데 지동 상으로 보면 짧아 보여도 구석구석 보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갈 만큼 볼거리가 많다. 물건을 한가득 실어 온 차량 트렁크를 열어두고 그 위에서 무심하게 걸터앉아 이야기하는 사람들, 판매자들끼리 둘러앉아 카드를 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연중 매주 열리지만 방문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파리가 가장 반짝이는 청명한 여름! 6월을 가장 추천하며 7월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바캉스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에 방브 벼룩시장도 휴가를 떠나는 판매자들이 있어 7월 전에 가야 가장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빈티지에는 별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방브 벼룩시장만큼은 '빈티지 필터'가 제대로 쓰여서 모든 물건이 다 예뻐 보여서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우드톤 집에 걸어두면 더 빛을 발할 것 같았던 거울은 몇 번을 고민하다 내려놓았으니까. 무엇보다 벼룩시장은 오래된 물건에서 풍겨 나오는 특유의 공기와 분위기가 묘하게 사람을 매료시킨다. 화려한 쇼윈도 대신에 무심하게 나무에 두어도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해 보이는 것이 벼룩시장의 매력이고 오래된 물건에서 추억과 함께 그리운 사람들이 떠오르는 것도 벼룩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누군가의 손때 묻은 물건을 보면 그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벼룩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추억을 함께 구매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벼룩시장은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판매자들은 진열대 뒤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체스를 두기도 하는데 그 모습마저 방브 벼룩시장의 매력을 배가 시킨다. 콧수염과 레드 스트라이프, 그 뒤로 보이는 파란 미니 트럭까지. 무성영화 속에서 나 온 것 같은 느낌의 므슈는 이름 모를 70년대 영화가 생각나게 했다. 나의 첫 유럽의 벼룩시장은 8년 전 여행으로 찾았던 파리 북쪽의 생투앙 벼룩시장이었다. 파리 북쪽은 동네 분위기가 어두운 편이라 긴장하고 다닌 탓에 벼룩시장을 온전히 즐기진 못했었다. 방브 벼룩시장은 동네 분위기도 밝은 편이고 구경 후에 다른 여행지로 이동하기에 동선도 편리하기에 여행 중 벼룩시장은 한곳만 방문할 예정이라면 주저 없이 방브 벼룩시장 추천!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행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