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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n 22. 2023

반짝이는 이탈리아의 여름

씨네아카이브 19. 영화로 떠나는 여행 ep.2

적도 반대편 추운 나라, 작정하고 더위를 만끽할 수 있는 동남아, 에메랄드빛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지중해 까지. 각자 휴가지로 선호하는 곳이 있겠지만 내가 여름 휴가지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은 이탈리아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탈리아의 여름은 ‘청춘, 반짝임, 녹음, 열정’과 같은 단어와 함께 잠시 행복한 꿈을 꾸고 온 듯한 여름 휴가지로서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이런 인상을 심어준 것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덕분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고. 유럽 여행자들이 꿈꾸는 낭만 여행지 파리를 떠나 이번에는 반짝거리는 이탈리아의 여름을 아름답게 담아낸 <레터스 투 줄리엣>, <로마 위드 러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3편을 소개한다.


"씨네아카이브 19. 반짝이는 이탈리아의 여름" 전문 읽기



<레터스 투 줄리엣>, 게리 위닉, 2010년 개봉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레터스 투 줄리엣>은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의 로맨스 영화이자 본격 이탈리아 여행 자극 영화로 나에게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로망을 처음으로 심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 배경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지이기도 한 이탈리아 베로나로 주인공 소피가 전 세계 여성들이 사랑 이야기를 편지로 보내오는 베로나의 명소 ‘줄리엣의 발코니’에서 우연히 50년 전에 보낸 러브레터를 발견해 답장을 보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베로나를 비롯해 시에나 등 이탈리아 북부의 아름다운 도시들은 물론 중간중간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도 오감을 자극한다. 본격 이탈리아 로드 트립 권장 영화답게 오렌지 빛 태양아래 반짝이는 이탈리아의 여름 풍경이 인상적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작가 지망생 소피는 전 세계 여성들이 비밀스러운 사랑을 고백하는 ‘줄리엣의 발코니’에서 우연히 50년 전에 쓰인 러브레터 한 통을 발견하고, 편지 속 안타까운 사연에 답장을 보낸다. 며칠 후, 소피의 눈앞에 편지 속 주인공 클레어와 그녀의 손자 찰리가 나타난다. 소피의 편지에 용기를 내어 50년 전 놓쳐버린 첫사랑을 찾고 싶다는 클레어와 할머니의 첫사랑 찾기를 돕기 위해 따라나선 찰리, 그리고 그들과 동행하게 된 소피까지. 세 사람의 로맨틱한 이탈리아 로드 트립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주인공인 소피는 잡지사 뉴요커의 자료조사원, 일명 팩트체커로 일하고 있는 작가 지망생으로 나는 이 ‘팩트체커’라는 직업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런 직업이 있다는 것도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지만, 클레어의 첫사랑 찾기를 도와주는 소피의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설정이라 생각했다. 소피에게는 약혼자가 있다. 열정 넘치는 요리사이자 워커 홀릭인 약혼자 빅터가 여행지에서도 일에만 몰두하는 탓에 혼자 시간을 보내다 클레어와 찰리를 만나게 된다. 혼자 베로나를 둘러보던 소피는 줄리엣의 하우스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여성들이 줄리엣 앞으로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편지로 써서 담벼락에 붙여놓으면 베로나시 공무원들이 답장을 써 주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낭만적이란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너무 놀라웠던 부분이었다. 소피는 줄리엣의 하우스에서 미처 수거되지 못한 클레어의 50년 전 편지를 발견하고, 부모님의 반대로 첫사랑과 헤어지게 된 그녀에게 진심 어린 답장을 보내자,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소피의 편지에 용기를 내어 첫사랑 로렌조를 찾아 나서기 위해 클레어와 그녀의 손자 찰리가 나타나게 된 것. 그리고 소피가 이들의 여정에 동참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탈리아 로드 무비가 펼쳐진다.


평소에 로맨스 영화 좀 봤다 하는 이들은 짐작했겠지만, 소피는 우연히 동행하게 된 여행에서 자신의 진짜 사랑도 찾고 책 집필도 완성한다. 남자와 여자가 낯선 여행지를 함께 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이 싹트게 된다는 설정은 언뜻 배낭여행의 바이블과 같은 <비포 선라이즈>가 떠오른다. <비포 선라이즈>가 오스트리아 빈을 누볐다면, <레터스 투 줄리엣>은 이탈리아를 누비는 거다. 영화는 클레어를 통해 “사랑을 이야기할 때 늦었다는 말을 결코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이미 늦었다’는 웃픈 짤과 반대로 영화는 상대가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된다면 그게 어느 때든 망설이지 말라고 충고하는데 언뜻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화면에서 펼쳐진 이탈리아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낭만에는 한도 초과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게 된다.




<로마 위드 러브>, 우디 앨런, 2013년 개봉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로마 위드 러브>는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한 우디 앨런의 작품으로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와 파리를 배경으로 한 <미드나잇 인 파리>에 이은 우디 앨런의 유럽 시리즈 이탈리아 버전이다. 영화마다 도시가 가진 매력을 극대화하는 우디 앨런은 골목길마다 유적지가 되는 로마를 배경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영화는 총 4개의 에피소드가 교차 진행되며, 감독은 “로마는 도시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인, 세상 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곳으로 한 편의 이야기로 풀어내기에는 너무나 굉장한 곳이다”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로마는 전통을 간직한 사람들부터 현대적이고 세련된 사람들까지 고루 공존하는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도시로 그려진다. “로마에 사는 주민 100명을 붙잡고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모두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는 감독의 말대로 <로마 위드 러브>는 로마 구석구석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우디 앨런 특유의 유머로 버무려졌다. 여기에 화려한 캐스팅이 화룡점정의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엘리엇 페이지가 된 엘렌 페이지, <소셜 네트워크>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제시 아이젠버그, 작품마다 굵직한 연기를 선보이는 알렉 볼드윈, 스페인 출신의 매력적인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 <인생은 아름다워>로 아카데미 최초 외국인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된 로베르토 베니니까지 국적과 세대를 아우르는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로마를 사랑하는 건축학도 잭은 여자친구의 친구 모니카와 아찔한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고뇌한다. 평범한 아버지이자 남편 그리고 로마 시민인 레오폴도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면서 온 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새로운 삶을 위해 로마로 떠나온 안토니오는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갑자기 나타난 콜걸 안나를 만나 본능에 눈뜨게 되고, 은퇴한 오페라 감독 제리는 예비 사돈에게서 엄청난 재능을 발견하며 잊고 있던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 한다. 네 명의 주인공들이 겪게 되는 일탈의 끝은 어디일까?


<로마 위드 러브> 속 주인공들은 로마에서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는데 우디 앨런 감독은 이를 ‘추억, 명성, 스캔들, 꿈’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펼쳐낸다. 여행 차 들른 로마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건축학도를 만나 그의 삼각관계에 훈수를 두기도 하고(추억), 어느 날 갑자기 전 국민이 아침 식사까지 궁금해하는 스타가 되어 온갖 즐거움을 누리기도 한다(명성). 또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켜온 순수한 커플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이성의 유혹이 다가오고(스캔들), 누군가에게는 평생 이루고 싶었던 꿈을 실현해 줄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로마의 골목에서 마주하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곳곳에 묻어있는 위트와 유머를 보고 있으면 우디 앨런의 각본가로서의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더불어 우디 앨런은 예비 사돈과 못다 한 꿈을 이루려는 제리로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제작진들이 모두 참여했음에도 전작보다는 아쉬운 평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즐겁게 감상했다. 무엇보다 로마의 아름다운 풍경만큼은 고스란히 담겨있다.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등 로마의 대표적인 명소를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은 물론, 골목길마다 펼쳐지는 유적지를 섬세하게 담아내며 로마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영화에는 여행자와 현지인들이 서로 섞여 있는데 4개의 에피소드 중 두 명은 로마를 찾은 미국인 여행자, 두 명은 이탈리아인으로 설정해 외국인과 현지인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었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로마의 명소를 고루 조명하면서 미처 몰랐던 로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카 구아다니노, 2018년 개봉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아름다운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로 많은 관객을 티모시 샬라메에 입덕시킨 화제작이기도 하다. (그중 한 사람이 접니다...원작은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그해, 여름 손님>으로 영화는 1983년 이탈리아 북부를 배경으로 17살 소년 엘리오가 아버지의 조수로 가족의 별장을 찾은 24살 청년 올리버와 사랑에 빠지면서 펼쳐지는 6주간의 이야기를 다뤘다. 작품은 공개와 동시에 전 세계 영화제에서 70관왕에 오르며 호평받았는데 버라이어티, 타임, 가디언 등 유수의 매체는 올해의 영화에 이름을 올렸고, 각종 수식어와 함께 극찬을 보내며 관객들의 기대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관객들 역시 호평 일색으로 팬덤을 형성할 만큼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이 되었다.


제작자와 프로듀서는 원작을 읽고 “첫사랑의 감각, 열정, 에로티시즘과 사랑하며 느끼는 불안까지 잘 표현된 작품”이라며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그러나 감독과 배우들의 스케줄 조율 문제와 배경이 되는 여름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최적의 시기를 찾느라 완성까지 무려 9년이란 시간이 걸렸는데 긴 시간 공들인 만큼 뛰어난 연출력과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영화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전작인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와 함께 욕망의 3부작으로도 불리는데 감독은 “앞의 두 작품 속 욕망이 소유, 후회, 결핍, 자유에 관한 것이라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는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히며,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할 때 우리가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라고 전했다.


원작의 배경은 리비에라 지역의 리구리아 주지만 영화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거주하고 있는 크레마에서 촬영했다. 감독은 “작품의 풍경까지 캐릭터들을 표현하는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밝히며, 고민 끝에 지역의 지형과 생활 방식을 잘 알고 있는 본인의 거주지로 배경을 바꿨다고 한다. 엘리오 가족의 별장으로 등장하는 집은 크레마에서 몇 분 거리에 위치한 모스카차노에 있는 빈집이라 제작진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할 수 있었고, 집에 놓인 소품들은 실제로 감독이 사용하고 아끼는 소품들이라고. 장소 섭외가 이루어질 동안 배우들은 이탈리아에서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며 감독에게 1983년 이탈리아 모습에 대해 듣거나 현지의 또래 친구들을 사귀며 생활 습관을 익혔는데 엘리오를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는 실제로 능숙하게 피아노를 연주하지만, 완성도 높은 연기를 위해 현지 작곡가에게 따로 레슨을 받는 것은 물론 이탈리아어 수업과 기타 수업 등을 받았다고 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1983년 이탈리아, 열일곱 소년 엘리오는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족 별장에서 여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스물넷 청년 올리버가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찾아오면서 모든 날이 특별해진다. 그해 여름, 엘리오와 올리버가 함께한 이탈리아는 두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내가 생각하는 ‘반짝이는 이탈리아의 여름’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빛으로 인간의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하는 감독이란 평을 받는데 해당 작품 역시 태양광을 섬세하게 잡아내 자칫 불편해 보일 수도 있는 욕망의 세계를 아름답게 펼쳐냈다. 제작 과정에 많은 공을 들인 만큼 집, 소품, 의상, 장면마다 삽입된 음악까지 모든 것들이 섬세하고 조화롭게 어우러져 미학적으로도 관객들을 사로잡는 요소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엘리오와 올리버가 클래식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장면을 보면서 ‘이탈리아에서 자전거 여행하기’라는 버킷리스트를 하나 더 추가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주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고 배구, 수영, 춤추기 등 몸을 쓰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이는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젊은 날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가를 집중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아이러니 한 건 청춘의 뜨거운 사랑과 젊음의 아름다움을 그린 영화를 각색한 인물이 노년이라는 사실이다. 제작과 공동 각본을 맡은 제임스 아이보리가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당시 89세로 최고령 수상자였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 현학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있는데도 지루하다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연륜이 있는 제임스 아이보리의 각색이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제목이기도 한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르는 것’에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두 사람의 정체성이 곧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하나가 되고 싶은 감정을 이름을 바꿔 부르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의견에 가장 공감이 갔다. 결국 ‘이름’이라는 건 나의 존재와 정체성을 오롯이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엘리오와 올리버가 아니었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른다는 것이 묘하게 낭만적인 느낌이 극대화되는 것 같고.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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