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20. 우연히, 웨스 앤더슨 Part.1
아카데미 전후, 텐트폴 영화가 연달아 개봉하는 휴가철은 영화관을 자주 찾게 되는 시기다. 나도 요즘 주말마다 개봉작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영화관을 방문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 두 편 있었다. 7월의 씨네아카이브는 이 두 감독 특집으로 이어 나가 볼까 한다. 첫 주자는 국내에도 꽤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웨스 앤더슨 감독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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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웨스 앤더슨
웨스 앤더슨은 개성 있는 미국의 영화감독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웨스 앤더슨 터치’라 불리는 자신만의 미학으로 두터운 마니아 팬을 보유하고 있다. 대중적으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좋은 평을 끌어내며 팬층의 두터운 지지를 바탕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도 많다. 웨스 앤더슨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은 감독의 개성과 예술관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연출 방식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 같은데요. (그중 한 사람 나야 나!) 완벽한 좌우 대칭과 파스텔톤 색조, 독특한 편집 방식과 낭만적이고 복고적인 분위기가 마치 알록달록한 동화책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작품 속 캐릭터는 동화적인 세계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 어딘가 결여된 캐릭터이며 가족들은 해체되어 있다. 어른들은 대책 없을 정도로 철이 없고, 철없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조숙하게 자란다. 이러한 인물 구성 방식은 감독의 데뷔작부터 이어져 왔고, 작품의 근간을 이룬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을 자신과 형제들의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영화 속에서 해체된 가족의 모습이 지속해서 등장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결코 혼자 성장하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자라나며 마침내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담은 것으로 “기본적으로 인간은 외로운 존재이며 단독으로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이 서로의 이상을 향해 느슨하게 연대를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는 거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미학적인 연출뿐만 아니라 패션 감각이 뛰어난 걸로도 유명하다. 현장에서도 발끝까지 완벽한 핏을 갖추고 있고, 2012년에는 GQ가 선정한 베스트드레서 25인에도 이름을 올렸을 만큼 패셔니스타로 꼽힌다. 이러한 감독의 패션 감각과 스타일은 작품 속 캐릭터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시나리오 집필 과정에서부터 각 캐릭터가 입을 의상을 염두에 둔다고. 특히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에는 유니폼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꾸준히 등장하는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유니폼이 스토리 라인과도 관계를 맺으며 일종의 영화적 기호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유니폼’은 인물들이 같은 옷을 착용함으로써 연대 의식을 느끼도록 하는 공동체적 의복이라는 점을 미루어 보면 이는 웨스 앤더슨 감독이 생각하는 ‘느슨한 연대’를 표현하는 방식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같은 배우들을 자주 기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해서 그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배우들도 상당히 많은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배우가 18호에서 소개했던 <미드나잇 인 파리>의 오언 윌슨. 두 사람은 대학에서 같은 강의를 들으면서 알게 된 후, 감독의 단편부터 시작해 지속적으로 함께 작업하고 있다. 그 외에도 빌 머레이, 제이슨 슈워츠먼, 윌렘 대포, 에이드리언 브로디, 에드워드 노튼, 틸다 스윈튼 등 유명 배우들이 꾸준히 그의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들 모두가 역할의 비중과 관계없이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 이는 그만큼 감독과 배우 사이의 신뢰가 두텁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런 신뢰의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건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관계인 ‘느슨한 연대’가 작품 세계 밖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문라이즈 킹덤>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칸 영화제 첫 출품작이자 개막작으로 뉴 펜잔스 섬에서 벌어진 3일간을 소동을 다루고 있다. 감독이 <다즐링 주식회사>를 제작할 때부터 작품에 관한 아이디어를 준비했다고 하는데 본인의 어린 시절인 1960년대의 로맨스를 보여주기 위해 1965년 뉴 펜잔스 섬으로 관객들을 초대해 그 시절의 감성을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인 뉴 펜잔스 섬은 가상의 섬이라 실제로는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촬영했지만, 영화의 세부적인 사항은 철저한 고증을 통해 구축했다고 한다. 60년대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미술팀은 전국의 골동품점을 뒤지고 지인들의 소품까지 동원하여 배경을 하나하나 완성해 나갔다고. 덕분에 레트로 무드를 좋아하는 이들은 시각적으로도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다. 소품과 의상뿐만 아니라 스태프와 출연진들도 영화 속 인물이 사는 시대에 몰입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디지털 세대인 아역배우들에게는 영화 속에서처럼 손 편지를 주고받도록 했다고 한다.
영화의 각본은 <대부>로 유명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아들 로만 코폴라가 맡았다. 자칫 어둡고 무거워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동심과 우화를 빌어 재기 발랄하게 그려내 <문라이즈 킹덤>으로 2013년 아카데미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문라이즈 킹덤>에도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빌 머레이, 에드워드 노튼,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먼드 그리고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했다. 특히 브루스 윌리스는 기존의 액션 배우 이미지에서 벗어나 따뜻하고 자상한 경찰 소장 샤프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찬사를 받았다. 1960년대 빈티지 감성을 자극하는 데에는 영화 음악도 한몫한다. 1960년대 프랑스 대표 가수인 프랑수아즈 아르디의 ‘사랑의 시간(Le temps de l’amour)’은 수지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자 샘과 수지의 사랑의 도피 테마 곡으로서 영화 전반의 분위기와 찰떡같이 어우러져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귀에 맴돌게 된다.
사고로 가족을 잃고 위탁 가정을 전전하는 카키 스카우트의 문제아 '샘'과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친구라고는 라디오와 책, 고양이가 전부인 외톨이 '수지'. 1년 전, 교회에서 단체로 연극을 보다 몰래 빠져나온 샘이 까마귀 분장을 한 수지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면서 둘은 펜팔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상처와 외로움을 나누고 점점 가까워진다. 소울메이트이자 연인이 된 샘과 수지는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아지트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하고, 필요한 준비물들을 챙겨 각자 약속 장소로 향한다. 그러나 샘과 수지의 실종사건으로 인해 섬은 발칵 뒤집히고, 수지의 부모님과 카키 스카우트 대원들은 둘의 행방을 찾아 수색 작전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과연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문라이즈 킹덤>은 1965년 미 북동부의 작은 섬 뉴 펜잔스로 사랑의 도피를 떠난 소년 소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상실감과 외로움이라는 각자의 상처를 가진 샘과 수지가 사랑이 도피를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되고, 두 사람을 찾으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사랑의 도피를 떠난 소년과 소녀 그리고 이들을 찾기 위한 어른들과 카키 스카우드 대원들의 수색 작전이 뒤죽박죽 얽히며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웨스 앤더슨 영화의 인장과도 같은 좌우 대칭과 파스텔 톤 색조, 수직과 수평을 오가는 독특한 편집방식, 어른 같은 아이와 아이 같은 어른 캐릭터 역시 돋보이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전면에 나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영화에는 해체된 가정의 모습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수지의 아빠 월트와 엄마 로라는 서로의 진심을 나누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로라는 마을의 경찰 소장 샤프와 내연 관계다. 뉴 펜잔스 섬의 어른들은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내적으로 단절된 채 외롭게 살아가지만, 샘과 수지는 어른들이 만들어 낸 세상을 서로에 대한 사랑과 모험으로 극복하려 한다. 함께 섬을 탐험하고 좋아하는 것을 얘기하며 서로에게 공감하면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어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소꿉장난을 하고 아이들은 모른 척 장단을 맞춰주는 듯한, 어른과 아이가 완전히 뒤바뀐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여기에 웨스 앤더슨 감독의 미장센이 작품의 동화적 심상을 한층 더 강조한다.
마리's Clip: 오프닝 시퀀스
<문라이즈 킹덤>의 오프닝 시퀀스는 수집의 집을 그린 그림에서 시작해 상하좌우로 화면이 전환되면서 집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수지가 망원경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화면이 줌 아웃되면 그림 속 집의 실제 외관을 멀리서 비춤과 동시에 영화의 타이틀이 올라온다. 오프닝은 영화의 첫인상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감독의 예술 세계와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를 가장 잘 집약해서 보여주는데 <문라이즈 킹덤>의 오프닝은 '웨스 앤더슨 터치'라 불리는 그만의 미학과 연출 방식을 가장 잘 표현해서 보여준 장면이었다. 특히 집 안을 보여주는 장면은 마치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단면이 잘린 인형의 집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앞으로 펼쳐질 웨스 앤더슨의 동화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지게 만든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