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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l 20. 2023

이상하게 응원하고 싶은 그녀
<프란시스 하>

씨네아카이브 21.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 Part.1

지난 호에 이은 감독특집 주인공은 그레타 거윅과 그녀의 삶의 동반자이자 작업 파트너이기도 한 노아 바움백 커플!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 영화를 좋아하는 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동떨어진 인물들이 아닌,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는 주인공들이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담고 있기에 보는 내내 소리 없는 응원을 건네게 된다.


"씨네아카이브 21.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 전문 읽기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


그레타 거윅은 <레이디 버드>로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감독에서 <작은 아씨들>을 거쳐 믿고 보는 감독으로 자리매김 중인 요즘 가장 주목받는 여성 감독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감독이자 각본가, 배우이기도 한데 19호 반짝이는 이탈리아의 여름 추천작 <로마 위드 러브>에서 잭의 여자친구 샐리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그레타 거윅이다. 사실 이때까지는 배우로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주연을 맡은 <프란시스 하>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게 된다. 이후 출연하는 작품마다 개성 있는 연기로 캐릭터를 소화하며 자기만의 색을 갖춘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레타 거윅은 각본과 연출에도 꾸준히 참여해 왔는데 처음 단독으로 감독을 맡은 <레이디 버드>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골든글로브 코미디/뮤지컬 부문에서 작품상을 수상, 이후 <작은 아씨들>을 통해 섬세한 연출력을 갖춘 감독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증명해 보였다.


그레타 거윅이 배우로서 자신의 개성을 온전히 펼쳐 보인 <프란시스 하>는 노아 바움백 감독의 작품이다. 두 사람은 연인이자 작업 파트너로 <그린버그>에서 처음 배우와 감독으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 지금까지도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고 여러 작품에서 각본을 함께 쓰거나 감독과 배우로서 호흡을 맞춰오고 있다. 노아 바움백은 지난 레터의 주인공웨스 앤더슨 감독도 절친한 사이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에 각본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의 경우 주로 노아 바움백이 감독을 맡은 작품에 그레타 거윅이 각본가나 배우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두 사람이 함께하지 않은 작품도 좋은 평을 받았지만,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회자되는 작품은 두 사람이 함께했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출처:CHELSEA LAUREN/REX/SHUTTERSTOCK)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 두 사람은 모두 ‘뉴욕을 다룬 영화’하면 떠올리는 감독이기도 하다. 노아 바움백의 경우 뉴욕에서 나고 자란 본 투 비 뉴요커이지만, 그레타 거윅은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나 그녀가 참여한 작품에는 항상 ‘뉴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배경이 대부분 뉴욕(<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매기스 플랜> 등)이고,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엉뚱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고, 꿈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지만 결국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해 나가는 캐릭터라 보는 내내 함께 울고 웃으며 응원하게 된다.


노아 바움백 작품의 경우 전반에 도시에 대한 동경과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깔려 있다. 특히 노아 바움백은 “보편적인 일상을 특별하게 그려내는 것에 탁월한 능력을 갖춘 감독”으로 평가받는데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누구나 할 법한 자신의 미래, 친구와의 우정, 가족과의 관계 등으로 고민하기에 보고 있으면 묘하게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게 된다. 말 그대로 주인공의 고민에서 지금 혹은 지난날 나의 고민이 겹쳐 보이면서 짠한 마음도 들고 같이 울고 웃게 되는 거다. 그러나 각본이 탄탄하게 잘 짜여 있어 영화가 진부하지 않고, 간결하고 명료하다. 심지어 노아 바움백의 작품은 러닝 타임 90분 내외라 긴 러닝타임을 힘겨워하는 관객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프란시스 하 (Francis Ha)>, 노아 바움백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프란시스 하>는 노아 바움백이 연출하고 그레타 거윅이 주연을 맡아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유수의 매체들이 ‘2013년 미국 최고의 인디 영화’로 선정한 작품. 특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올해의 영화 TOP10’에 꼽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대무용수로 성공해 세계를 접수하겠다는 꿈과는 반대로 현실에서는 무엇 하나 되는 일 없는 평범한 연습생인 27살의 뉴요커 ‘프란시스’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홀로 서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누구나 공감할 보통의 주인공 프란시스를 통해 젊은이들의 꿈과 현실, 사랑과 우정에 대한 고민을 밝고 유쾌하게 그려내며 전 세계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주연을 맡은 그레타 거윅은 이 작품을 통해 생애 첫 골든글로브에 노미네이트 되었을 만큼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배우로서 그녀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제대로 각인시켰다. 나도 이 작품을 통해 그레타 거윅을 알게 되었다. 각본은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이 함께 작업하며 인물, 에피소드, 대사를 구성해 나갔는데 특히 그레타 거윅의 자전적인 경험들이 ‘프란시스’에게 많이 투영되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출신, 어린 시절 발레를 배운 경험, 대학 졸업 후 친구들과 함께 살았던 일화 등은 모두 그레타 거윅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주인공 ‘프란시스’라고 생각하지만, 하나 더 꼽자면 모던하고 낭만적인 분위기. 노아 바움백 감독은 “뉴욕을 색다른 시선으로 보여주면서 프란시스 이야기에 즉각적인 노스탤지어를 담아내기 위해 과감하게 흑백 촬영을 선택”했다고 밝혔는데 모노톤의 배경 덕분에 프란시스의 여정을 따라가며 보이는 거리, 공원, 식당, 클럽 등이 마치 누벨바그 영화 속 장면처럼 보이기도 하고, 삽입곡들과도 잘 어우러져 낭만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흔히 뉴욕 하면 떠올리는 화려함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노아 바움백은 프랑스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감독이라 영화 곳곳에 오마주가 등장하는데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에 구타>에 나왔던 음악을 차용하기도 하고, 프란시스가 ‘Modern Love’에 맞춰 뉴욕의 거리를 뛰어가다 춤추는 장면은 레오 카락스 감독의 <나쁜 피>의 오마주 장면이라고. (해당 장면은 프란시스의 활기찬 모습이 보는 이들에게까지 스며드는 기분이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신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에서 둘도 없는 친구 소피와 살고 있는 27살 뉴요커 프란시스. 무용수로 성공해 뉴욕을 접수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꾸지만, 현실은 몇 년째 평범한 연습생 신세다. 사소한 말다툼 끝에 애인과 헤어지고 절친 소피마저 독립을 선언하자 그녀의 일상은 꼬이기 시작하는데... 직업, 사랑, 우정, 무엇 하나 쉽지 않은 프란시스는 과연 당당하게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는 발랄하고 유쾌하지만, 은연중에 나의 모습이 겹쳐 보여 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프란시스의 홀로서기를 그렸다. 시놉시스에서 설명한 것처럼 프란시스의 현실은 이상과 괴리감이 크다. 그러나 프란시스가 한없이 짠하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 시종일관 뉴욕을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더 많다. 우울한 현실과 대비되는 활기찬 모습을 보고 있으면 프란시스 그 자체인 그레타 거윅마저 사랑할 수밖에 없을 만큼. 그러나 살짝 텐션 과다로 보이는 모습은 내면의 불안과 위축된 상황을 은폐하기 위한 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프란시스가 오롯이 혼자 있을 때 가장 잘 드러나는데 사람들과 함께 일 때와 혼자일 때의 대비되는 모습들이 바깥에 보여지는 자신과 내면의 자신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연극의 막이 바뀌는 것처럼 장소로 이루어진 소제목을 보여주는데 각각의 장소들은 프란시스의 상황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의 처지가 바뀔 때마다 장소를 옮겨 다니는 거다. 이는 경제적 기반이 없어 이동이 잦은 20대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상황에서 꿈은 크지만 현실은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삶의 아이러니를 극복해 나가는 인물이 프란시스로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끝에 보이는 ‘프란시스 하’라는 푯말이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일지 관객들도 오롯이 공감하게 된다. 


프란시스를 보고 있으면 묘하게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 자꾸만 응원하고 싶어 진다. 겉으로는 쿨한 척하지만 여전히 다른 이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가끔은 남에게 부탁해도 될 일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뒤돌아서면 이불킥 할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원한다고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보통의 우리가 그러하듯 프란시스도 꿈과 현실 사이의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 마침내 ‘프란시스 하’에 도달한다. 그리고 ‘현실적인 행복을 위해 때로는 이상을 포기하는 것도 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대부분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현실을 택하며 산다. 그리고 프란시스가 자신과 타협하고 비로소 행복을 찾았듯이,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실패한 인생이라 단정 지을 순 없다. 오히려 꿈을 성취하는 것보다 현실과 타협점을 찾는 것이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니까.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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