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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l 27. 2023

사춘기 시절 일기장 같은 영화
<레이디 버드>

씨네아카이브 21.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 Part.2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 영화를 좋아하는 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동떨어진 인물들이 아닌,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는 주인공들이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담고 있기에 보는 내내 소리 없는 응원을 건네게 된다. <프란시스 하>에  두 번째 추천작은 <레이디 버드>! <프란시스>는 응원해주고 싶은 나의 모습 같은 영화였다면 <레이디 버드>는 꺼내보면 분명 이불킥 하고도 남을 나의 사춘기 시절 일기장 같은 영화다.


"씨네아카이브 21.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 전문 읽기



<레이디 버드 (Lady Bird)>, 그레타 거윅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레이디 버드>는 그레타 거윅의 첫 단독 연출작으로 제90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제75회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분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의 호평과 함께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입증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감독이 나고 자란 새크라멘토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자전적 영화로 많이 알려졌지만, 영화 속 인물이나 사건에 실제 경험담은 하나도 없다고 밝혔는데 영화의 핵심인 ‘고향과 유년 시절, 그리고 떠남의 정서’는 본인의 것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영화의 배경인 새크라멘토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농업 지대 북쪽 끝에 자리한 도시로 캘리포니아주의 주요 도시임에도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의 화려함과는 대비되는 곳이다. 대신 주민들의 끈끈한 정이 묻어나는 곳으로 LA나 샌프란시스코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보통의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곳으로 그려진다. 사실 그레타 거윅의 작품을 생각하면 의례 ‘뉴욕’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와 함께 ‘새크라멘토’ 역시 자주 묘사되는데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 한편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 애틋함, 그리고 애증을 간직하고 있듯 새크라멘토가 그레타 거윅 감독에게는 이런 존재인 듯하다.


영화는 특별한 존재가 되길 갈망하는 소녀 ‘레이디 버드’의 고등학교 졸업 학년 한 해를 조명하며 그녀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세계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냈다. 가족과의 갈등, 친구와의 우정과 질투, 이성에 대한 호기심, 진로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갈망 등 소위 말하는 성장 영화의 필수 요소와 공식이 모두 담겨있지만 기존의 성장 영화와는 궤를 조금 달리한다. 성장 영화지만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기를 갈망하는 17살 소녀를 이해해 나가며,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와 성장’도 함께 다루고 있기에 조금 더 특별한 성장 영화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성 친구를 두고 경쟁하거나 특정 인물을 악녀로 만드는 클리셰가 없다는 것도 특징적이다. 특히 주인공 ‘레이디 버드’를 연기한 시얼샤 로넌의 연기가 인상적인데 감독은 2015년 토론토 영화제에서 그녀를 처음 처음 만나 호텔 방에서 각본을 함께 읽었는데 그녀가 대사를 내뱉는 순간 레이디 버드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영화를 보면 감독의 극찬에 고개를 끄덕일 만큼 ‘시얼샤 로넌 = 레이드 버드’ 그 자체였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본명 대신 스스로 지은 이름 “레이디 버드”로 불리기를 원하는 질풍노도의 17세 소녀 크리스틴은 따분한 고향을 떠나 넓은 세상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길 갈망한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게 건네는 충고는 잔소리처럼 느껴지고, 사사건건 엄마와 부딪히며 조용할 날 없는 그녀의 10대 끝자락은 어떻게 매듭 짓게 될까?


영화는 ‘레이디 버드’의 고등학교 마지막 해를 그리고 있다. 그레타 거윅은 한 해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온전히 다루길 원했다고 한다. “끝을 향해 가는 세계에는 뚜렷한 선명함이 있고, 마지막이란 것에는 늘 상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데 이는 비단 학생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내달리는 마지막 한 해가 영화의 테마”라고 밝혔다. 영화는 주인공 소녀의 성장만 다루는 것이 아닌 그녀의 주변 인물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의 성장도 함께 다룬다. 그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이 크리스틴과 그녀의 엄마다. 감독은 영화의 제목이 확정되기 전까지 가제를 <엄마와 딸>로 붙여두었을 만큼 모녀 관계는 영화의 러브라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보통 10대 청소년 영화에서 훈남 소년이 중심에 놓일 거라 생각하지만 감독은 “대부분 여성은 청소년 시절 각자의 어머니와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한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모녀 관계를 영화의 중심에 두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 사람의 갈등에는 세대 차이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매리언은 1950년대 전후 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한 세대이자 대공황을 경험한 세대라면 ‘레이디 버드’는 1980년대에 태어나 자기가 원하는 꿈을 꾸며 주체적으로 삶을 헤쳐 나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대로 감독은 두 사람의 세대 차이가 모녀 관계에 어떤 갈등을 유발하는지 역시 간과하지 않으려 했다고.


크리스틴과 엄마 매리언은 서로의 닮은 점 때문에 가까워지기도 멀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세상 모든 모녀 관계와 닮아 있기에 작품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자식은 결코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알게 되는 것이 있다면, 부모님은 자녀들이 자신의 좋은 점만 닮아 세상을 현명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창 예민한 10대 청소년기에는 잘 와닿지 않고, 한참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 늘 아이러니지만... 무엇보다 영화에서 모녀가 투닥거리는 모습, 어떻게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으로 가고 싶어 하는 크리스틴을 보면서 사춘기 시절 한창 엄마와 싸우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심지어 무조건 대학은 집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까지 비슷해서 소름이...)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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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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