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22. 재즈영화 특집 Part.1
나는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여름이 가장 힘들다. 하지만 습하고 더워도 여름을 기다리게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청명한 하늘, 가벼운 옷차림, 그리고 재즈! 아직은 초보 입문자지만 여름밤 재즈의 낭만을 접한 뒤로는 여름이 오면 일부러 찾아서 듣곤 한다. 잠들어 있던 재즈감성을 일깨워 줄 재즈와 관련된 영화 2편을 골라봤다.
"씨네아카이브 Issue 22. 재즈란 말이죠..." 전문 읽기
재즈란 말이죠...
사람들은 ‘재즈’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나는 몇 년 전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던 ‘스캣’이 생각난다. 스캣은 재즈의 창법 중 하나로 ‘특별한 가사 없이 부르는 사람이 즉흥적으로 소리를 내어 청자가 멜로디와 리듬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창법’이자 재즈의 꽃으로 불릴 만큼 구사하기 어렵다고 한다. 재즈가 즉흥성이 돋보이는 장르인 만큼 ‘재즈가 무엇인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스캣이다. 음악 듣는 것에 취미가 없거나 재즈가 낯선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재즈란 무엇인가를 정의’한 사례(?)라고 생각해 아직까지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해당 영상의 오리지널 버전도 궁금해서 찾아봤었는데 엘라 피츠제럴드의 스캣을 시작으로 진행자와 밴드가 자연스럽게 합류하며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한동안 몇 번씩 다시 돌려봤었다.
재즈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지역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에서 탄생한 음악 장르 중 하나다. 특히 20세기 초-중반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미국 의회에서 재즈를 ‘희귀하고 귀중한 미국의 국보’로 지정했을 만큼 미국의 문화와 정서를 나타내는 장르이기도 하다. 재즈의 발상지가 미국이며 미국인들의 정서가 깊이 자리 잡은 것은 맞지만 찾아보니 재즈를 미국의 민속 음악으로만 보지 않는 견해도 있는데 재즈의 특성에는 클래식, 집시 음악, 블루스에서 영향받은 요소들, 즉흥성, 스윙 등 여러 음악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재즈의 발상지인 루이지애나는 원래 프랑스 영토였다. 나폴레옹이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루이지애나주를 미국에 넘기면서 미국 땅이 되었는데 루이지애나를 넘기는 조건으로 그 지역에서 거주하는 크레올(créole,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내걸었고, 이 덕분에 루이지애나주 크레올들은 비교적 백인들과 동등한 지위의 교육 혜택을 누릴 수 있었고, 이때 서양음악과 악기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면서 재즈가 탄생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초창기에는 재즈가 인종을 초월한 미국인을 위한 음악으로 여겨졌으나 이후 재즈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면서 여러 민속 음악과 결합하여 갈래가 나뉘었고, 이때 파생된 것들이 보사노바, 레게, 맘보, 차차차 등으로 모두 재즈의 영향을 받아 토속 음악과 결합하여 탄생하게 된 장르다. 아직은 한 번의 청취만으로 재즈와 보사노바를 구분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지 못했지만… 언젠가 척하면 척 알아맞출 수 있는 듣는 귀(?)를 가지길 바라는 중이다.
<치코와 리타>, 하비에르 마리스칼, 2010년 개봉
<치코와 리타>는 스페인 애니메이션으로 국내에서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어 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과 일러스트레이터 하비에르 마리스칼, 쿠바의 재즈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가 합심해서 제작했는데 하비에르 마리스칼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스코트인 코비를 디자인한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베보 발데스는 1940-50년대 쿠바 음악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재즈 피아니스트로 그래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쿠바 음악의 전설이라고 한다. 영화는 쿠바와 뉴욕, 라스베이거스를 오가며 낭만적인 그림체와 아름다운 재즈 선율의 향연에 애절한 스토리가 어우러져 재즈 팬들에게는 그 시절의 낭만과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관객들의 눈과 귀를 함께 충족시킨다.
1983년 쿠바의 하바나, 야망에 찬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치코는 어느 날 밤 클럽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리타와 만나게 된다. 젊음과 재능으로 빛나는 두 사람은 곧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열정과 욕망, 질투와 오해가 뒤엉키며 이별하고 이후 기회의 도시 뉴욕에 막 발을 디딘 치코는 스타로서 성공을 눈앞에 둔 리타와 재회한다. 서로를 향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계속 어긋나기만 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
<치코와 리타>는 연인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를 그린 조금 뻔한 로맨스 영화의 스토리를 따르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정교하게 구현해 낸 쿠바, 뉴욕, 라스베이거스의 이국적인 풍경과 매력적인 그림체,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음악이 돋보인다. 특히 영화 전체에 흐르는 재즈 선율이 흔히 재즈 하면 떠올리던 음악과는 달라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더 돋보였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재즈 중에서도 ‘라틴 재즈’로 브라스 합주가 돋보이는 장르라고.
음악을 맡은 베보 발데스의 삶은 영화 속 주인공 치코의 삶과 닮아 있는 부분도 많다. 치코는 쿠바 혁명 이후 사람들에게 잊혀졌다 30년 후 다시 그의 음악과 함께 주목받는데 이는 실제 베보 발데스의 삶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고, 감독 역시 영화를 발데스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영화는 발데스뿐만 아니라 1940-50년대에 활약한 쿠바 뮤지션들에 대한 존경을 담고 있다. 음악과 함께 사랑에 빠지고, 음악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음악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는 치코의 모습은 젊은 날의 치기와 열정부터 남루한 세월까지 음악으로 담아내는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주인공 리타는 유색인 예술가로서 마주하게 되는 불평등한 상황이나 한계를 보여주는데 영화 곳곳에 격동의 쿠바 역사와 유색인종에 대한 제재가 심했던 시기의 미국 사회 분위기도 담겨있기에 관련 지식을 알고 보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활기 넘치는 원색의 하바나와 모노톤의 뉴욕 풍경을 구현한 그림체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재즈 선율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