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22. 재즈영화 특집 Part.2
나는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여름이 가장 힘들다. 하지만 습하고 더워도 여름을 기다리게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청명한 하늘, 가벼운 옷차림, 그리고 재즈! 아직은 초보 입문자지만 여름밤 재즈의 낭만을 접한 뒤로는 여름이 오면 일부러 찾아서 듣곤 한다. 잠들어 있던 재즈감성을 일깨워 줄 재즈와 관련된 영화 2편을 골라봤다.
"씨네아카이브 Issue 22. 재즈란 말이죠..." 전문 읽기
<본 투 비 블루>, 로버트 뷔드로, 2015년 개봉
<본 투 비 블루>는 쳇 베이커의 전기 영화로 에단 호크가 쳇 베이커를 맡아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공개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에단 호크는 “쳇 베이커의 음악은 물론 그의 영혼까지 재현하고 싶었다”라고 밝히며 수개월 동안 트럼펫과 보컬 레슨을 받은 것은 물론 쳇 베이커의 연주 호흡, 목소리, 표정 등을 연구하며 연주 영상을 마스터, 단 한 장면도 대역을 쓰지 않고 모든 곡을 소화하며 쳇 베이커만의 트럼펫 핑거링까지 완벽하게 재연해 제작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감독은 모든 연주 장면이 에단 호크가 실제로 연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두 풀숏으로 촬영했다고.
감독은 영화 제작에 앞서 쳇 베이커와 관련된 방대한 기사와 기록을 살펴보며 쳇 베이커의 삶을 면밀히 조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의 음악 전기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발상의 영감을 얻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한 인물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따라가는 형식의 일반적인 전기 영화와는 구성이나 전개방식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쳇 베이커(1929-1988)는 잘생긴 외모와 출중한 실력으로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리던 재즈 음악사를 대표하는 트럼펫 연주자다. 1952년 찰리 파커와의 공연으로 이름을 알린 후, 재즈계에서 주목받으며 “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 “20세기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흐느낌” 등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는데 그의 수식어만으로도 음악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개인사에 있어서는 논란이 많은 인물이기도 하다.
쳇 베이커는 전설적인 재즈 색소포니스트 찰리 파커를 굉장히 동경했다고 알려져 있다. 찰리 파커는 ‘비밥’이라는 재즈 장르의 창시자로 ‘비밥 시대’를 대표하는 재즈 연주자 중 한 사람이다. 그의 별명 ‘버드’를 딴 재즈 클럽이 ‘버드랜드’였는데 쳇 베이커는 이 클럽에서 연주하는 것을 자신의 꿈으로 여겼을 만큼 찰리 파커를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는 영화 <본 투비 블루>에도 묘사된다.
잘생긴 외모와 반항아 이미지로 순식간에 웨스트코스트 쿨재즈 포스터 보이가 된 쳇 베이커는 절제된 연주와 애조 띤 감상이 결합한 연주 스타일로 재즈 애호가들과 일반 청중들에게도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950년대 말부터 재즈의 쇠락과 함께 그의 약물 중독 문제 등으로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건너가 은둔 생활을 했으며, 1970년대 초 재기 후 의문의 추락사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연주 활동을 벌였다.
청춘의 음색을 지닌 뮤지션 ‘쳇 베이커’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음악가였지만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어진 순간 그의 곁에는 연인 ‘제인’과 트럼펫만 남았다. 그러나 재즈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는 그는 음악가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재기를 꿈꾸는데...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도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있고, 살아보고 싶은 인생이 있음을 ‘쳇 베이커’ 그만의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본 투 비 블루>는 쳇 베이커의 삶 중 일부분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1966년 마약 소지 혐의로 이탈리아에 수감되어 있는 쳇 베이커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전기 영화를 제작하려는 할리우드 영화사의 도움으로 석방되고, 영화와 함께 음악가로서의 재기를 꿈꾸던 와중 마약 판매상이 고용한 괴한들에게 폭행당해 트럼펫 연주자에게는 치명적인 앞니가 전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영화 촬영으로 만나게 된 ‘제인’이 있었고, 그녀의 보살핌으로 약물도 끊고 음악에 대한 열정도 다시 일깨워 ‘버드랜드’에서 복귀 무대를 갖는다. 영화에서 다루는 일련의 시기와 사건들은 실제 쳇 베이커 삶의 연대기와 다른 부분이 있지만, 이는 감독이 쳇 베이커의 인생에서 가장 암흑기였던 시기에 집중하기 위해 바꾼 것으로 보인다.
<본 투 비 블루>는 1960년대의 쳇 베이커에 집중하고 있는데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1960년대는 미국에서 재즈가 쇠퇴하던 시기로 쳇 베이커는 이 시기를 통과하면서 재기의 몸부림을 친다. 당시 쳇 베이커에게는 사랑하는 흑인 여성이 있었는데, 1960년대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도 사회적 이슈였기에 이런 요소들이 얽혀 있는 시대가 흥미로워 선택했다”고 한다. 1960년대는 쳇 베이커라는 음악가의 갱생이 하락기에 접어든 재즈의 재기와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쳇 베이커의 전기 영화 역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이 “일대기 형식을 취하는 기존의 전기 영화의 전개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치이자 과거와 현재, 판타지와 현실, 과거와 현재의 인연을 모두 담아내기 위한 일종의 픽션 장치로서 사용” 했다고. ‘제인’ 역시 가상의 인물로 쳇 베이커의 생애에서 지나간 많은 여성을 혼합한 캐릭터다.
영화에서는 쳇 베이커가 재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그렸지만, 실제 그의 삶은 영화보다 훨씬 어지러웠고, 영화에서 1-2년 안에 이뤄진 일들이 실제로 이뤄지기까지는 7년이나 걸렸다. 사람들이 쳇 베이커의 음악은 사랑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인간이라고도 하는데 영화보다 더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과 음악을 향한 집념으로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모습을 보면 왜 ‘인간 쳇 베이커’에 대한 평과 ‘음악가 쳇 베이커’에 대한 평이 극명하게 갈리는지 이해가 간다. (나 역시 그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2월에 개봉했던 영화 <타르>를 보고 난 후 고민했던 지점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예술의 난제라고 할 수 있는 ‘예술가의 성취를 예술가 개인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