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파리의 정원

by 마리

파리에서 학교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있다.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자 파리지엔이 한없이 부러웠던 공간. 바로 파리의 공원이다. 몇 년 전 과제로 파리의 19세기 정원에 대한 발표를 준비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알았다. 파리 도심 안에는 크고 작은 스퀘어를 포함해 100여 개가 넘는 녹지가 있다는 사실을. 파리 도심 곳곳을 수놓은 정원 중에서 즐겨 찾았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좋아할 것 같은 '내가 사랑한 파리의 정원' 두 곳을 골라봤다.


뤽상부르 정원 (Jardin du Luxembourg)


뤽상부르 정원은 루브르에서 콩코르드 광장까지 길게 뻗어 있는 튈르리 다음으로 파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정원이다. 원래는 마리 드 메디치를 위해 지어진 뤽상부르 궁전에 딸린 정원으로 대표적인 프랑스식 정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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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Bonheur Archive

뤽상부르는 파리지엔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아늑하고 가정적인 분위기가 짖은 파리 5구 전역에 펼쳐져 있어 어디에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집에서 뤽상부르까지는 걸어서 10분이었는데 그 덕에 주말 아침에는 조깅하러 자주 찾기도 했고 매일 아침저녁 등하교 길이면 일부러 정원을 가로질러 다니곤 했다. 덕분에 도서관 지박령(?) 신세를 면치 못할 때에도 뤽상부르에서 파리의 미묘한 사계절 변화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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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에는 테니스 코트와 농구 코트, 페땅끄 경기장, 미니 극장과 미술관, 놀이터까지 모두 마련되어 있어 가족, 연인, 친구들끼리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름이면 농구 코트에 네트를 설치해 발리볼 경기를 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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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뤽상부르 정원은 열린 전시공간으로도 유명한데 곳곳에서 유명한 조각상을 만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석구석 공원을 쏘다니며 조각상을 찾아보는 것도 뤽상부르에서만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랄까.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을 꼽자면 황금색 사람 얼굴 모형의 'Le Prophete'과 바르톨디의 '자유의 여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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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길 수 있는 문화 행사도 많은데 미술관 외에도 궁정에 딸린 온실이었던 오랑주리(Orangerie)에서 주기적으로 무료 전시를 열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여름 무도회. 오후 산책길에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마치 르누아르의 작품 <걀레트의 무도회 (Le Moulin de la Galette)>가 떠오를 만큼 '인상적'인 풍경이자 녹음이 절정을 이루던 8월의 여름, 아주 잠시나마 유학생활의 시름을 잊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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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뤽상부르는 읽기 힘든 책을 집중해서 읽고 싶을 때면 찾 곳이기도 했다. 나무그늘 아래 앉아 느긋하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읽기 힘든 책도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되는, 과제 때문에 읽어야 할 책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떠올리던 나만의 숲 속 도서관이었다.



팔레 루와얄 (Palais Royal)


팔레 로와얄은 버스를 타야 하는 번거로움 마저 감수할 만큼 자주 찾았던 곳이다. 원래는 리슐리외 추기경이 살던 대저택으로 이후 루이 13세에게 증여되었다가 루이 14세가 잠시 머물면서 왕궁으로 승격되어 '팔레 루와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남동생인 오를레앙 공작의 소유가 되어 오를레앙 가의 본거지로 사용되었는데 루이 필리프 2세가 정원을 빙 둘러싸듯 건물을 짓고 건물을 상인들에게 임대하기 시작하면서 카페와 상점이 즐비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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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 루와얄은 환경 설치 미술가인 다니엘 뷰렌의 작품을 배경으로 인생사진을 남기기 위해 여행자들이 거쳐가는 포토 스폿으로도 유명하다. 광장에 새워진 260개의 높낮이가 다른 줄무늬 기둥은 팔레 루와얄의 트레이드 마크. 그러나 나에게 다니엘 뷰렌의 흑백 기둥은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는 곳이다. 훌쩍 파리로 떠나온 첫 해 겨울, 연일 우중충하던 겨울 틈새로 해가 고개를 내밀었던 날, 첫 산책지로 고른 곳이 팔레 루와얄이었는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파리지엔들을 보며 집 생각이 더 간절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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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지나 정원 안으로 들어서면 양 옆으로 상점을 끼고 있는 정원을 마주하게 되는데 정원 가운데 위치한 분수 주변으로는 파리 공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초록 의자가 빙 둘러 놓여있고, 계절에 관계없이 분수 주변에 앉아 책을 보거나 담소를 나누는 파리지엔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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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 루와얄을 즐겨 찾았던 진짜 이유는 키츠네 카페 때문이었다. 일종의 유명세도 있지만 커피 맛도 좋아 아무리 줄이 길어도, 버스를 타고 나와야 하는 수고를 감수하더라도, 일부러 찾아갈 이유는 충분했다. 카페에 좌석이 없어도 정원을 카페테라스 삼을 수 있으니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유유자적 오후를 보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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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고 나면 가로수 아래를 거닐었는데 에어컨이 없는 유럽의 더운 여름이면 그늘 아래서 책 보며 쉬는 것보다 좋은 피서는 없었던 것 같다. 파리의 모든 정원이 그러하듯 계절마다 매력이 다른데 가장 좋아했던 시기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 초여름의 팔레 루와얄은 군데군데 햇살을 머금고 한껏 무르익은 녹음이 유난히 아름답다. 팔레 루와얄은 여행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루브르 박물관과 일식당과 한식당이 모여 있는 오페라 지구에서도 가깝기 때문에 루브르나 오페라를 방문하는 날, 팔레 루와얄도 함께 찾아 광장에서는 설치미술을 관람하고, 정원에서는 키츠네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겨보길 추천하고 싶은 곳!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행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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