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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Nov 16. 2023

<덩케르크> '이것은 전쟁 영화가 아니다'

씨네아카이브 28.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생존을 그리다 Part. 2

몇 년 전 우연한 계기로 11월 11일이 다른 곳에서는 1차 대전 종전 기념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퇴역 군인들을 기리는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로 유럽에서는 휴전 기념일(Armistice Day)로 기리는 날이었는데 대서양과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똑같은 날도 이렇게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누군가에게는 가볍게 기분 좋은 선물을 건네는 빼빼로 데이라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역사의 한 부분을 잊지 않고 돌이켜 보는 순간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11월이 되면 마트나 편의점 전면에 전시된 빼빼로를 볼 때마다 휴전 기념일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아카이빙은 양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골라봤다.


"씨네아카이브 28.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생존을 그리다" 전문 읽기



<덩케르크 (Dunkirk)>, 크리스토퍼 놀란, 2017년 개봉


<덩케르크>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로 상공에서의 1시간, 해상에서의 하루, 지상에서의 일주일이 맞물리는 시점을 활용하여 여러 관점을 엮은 듯한 연출과 편집, 탁월한 영상미와 생생한 음향 효과 등이 어우러져 기존의 전쟁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느낌의 전쟁 영화로서 돋보이는 점이 많은 작품이다. 특히 하늘, 바다, 지상에서의 세 시점을 교차편집하면서 번갈아 진행되는 스토리가 매끄럽게 이어지며 놀란이 ‘플롯의 마술사’ 임을 여실 없이 증명해 보인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2차 대전 당시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병력을 영국 본토로 탈출시키는 작전인 ‘덩케르크 철수작전 (다이나모 작전)’을 다룬다. 공식 작전명인 ‘다이나모 작전’은 작전을 모의한 도버 성내 해군 지휘소의 방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덩케르크는 프랑스 북부 벨기에 접경 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도버 해협과 맞닿아 있는데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40년 5월 연합군이 이곳에 9일간 고립되어 있었고,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이루어진 작전이 ‘덩케르크 철수작전’이다. 연합군은 이 작전으로 30만여 명의 연합군 장병을 철수시키는 데 성공하며 훗날 반격을 위한 전력을 보존할 수 있었고, 당시 구출된 병력이 훗날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상당수 동원되어 승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만큼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극적인 상황으로 평가받는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는 영국 민간 선박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는데 실질적으로 민간 선박이 구해낸 병사의 수는 미미하지만, 영국 국민에게는 자긍심을 일깨운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지며 지금까지 ‘덩케르크 스피릿(Dunkirk Spirit)’이라는 표현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기꺼이 도와주려는 마음’을 표현하는 용어로 쓰인다. (현대에 와서는 그 의미가 변한 부분도 있다고 보지만, 통상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기꺼이 맞서는 태도를 포괄적으로 표현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전쟁 영화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적군을 죽이는 것에서 쾌감을 얻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덩케르크>는 아군을 살리는 데서 쾌감을 얻는 영화로서 기존의 전쟁 영화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감독 스스로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영화는 그동안의 전쟁 영화가 다루는 주제와 차별화된 부분이 많다. 특히 “위기에 처한 군인들을 구조하는 민간인과 각자 임무에 충실한 사람들을 비추며 인류애와 희망, 인간의 의지 등에 집중”한다. 실제로 영국인들에게 ‘다이나모 작전’이 어떤 정신으로 각인되었는지(Dunkirk Spirit!)가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감독 역시 “덩케르크에서 일어난 사건은 인간 역사상 생존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자유의 보전이며 배들의 항해가 시작됨으로써 생존의 가능성이 존재”했다고 이야기하며 전쟁에서 적을 무찌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생존’ 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덩케르크>는 앞서 소개한 <1917>과 마찬가지로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이 신예 배우다. 토미 역을 맡은 핀 화이트헤드의 경우 <덩케르크>가 영화 데뷔작으로 이전까지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이었다고. 알렉스 역의 해리 스타일스의 경우 원 디렉션의 멤버이자 가수로 유명한 상태였지만 유명세와 무관하게 일반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되었으며 놀란 감독 역시 그가 유명 가수인 줄 몰랐다고 한다.


전통적인 촬영 방식을 고수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지론은 <덩케르크>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는데 실제 사용했던 해군 함선을 공수하고, 민간 선박을 제작하는 것은 물론 당시 영국 왕립 공군에서 사용했던 전투기와 독일군이 사용하던 전투기를 그대로 재현해 냈다. 여기에 병사들의 전투복 형태부터 독일군이 선전용으로 하늘에 뿌리던 전단까지 실제와 흡사하게 제작했다고 한다. <덩케르크>는 장르가 용인할 수 있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고증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놀란 감독은 “전쟁영화에서 다뤄지는 잔혹한 장면을 거의 배제해 관객들이 공포감에 눈을 돌리지 않고 스크린에 계속 몰입하면서 긴장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라고 밝혔는데 실제로 영화는 유혈 낭자한 참혹한 전장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거의 없다. 이는 전쟁 영화의 바이블로 불리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전 제작팀과 함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프린트를 얻어 단체 관람을 하고, 이를 기준점으로 놓고 <덩케르크>의 지향점을 고민했다고 한다. 전쟁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자 한다면 다큐멘터리적 관점에서 전장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인상주의적 관점에서 전장의 현실을 담아낼 것인지 결정’ 해야 하는데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경우 처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다루면서도 전장에서 사라져 간 개인의 모습을 통해 인간애를 강조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고, <덩케르크>는 다이나모 작전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승리의 서사가 아니면서도 블록버스터급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야 한다는 점을 함께 고민”했다고. (관객들 사이에서는 기존의 전쟁 영화가 그리는 방식과 달라서 좋았다는 의견과 달라서 지루했다는 의견이 갈리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자에 한 표!) 여담으로 <덩케르크>는 양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 중 가장 높은 흥행스코어를 기록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뛰어넘으며 ‘가장 흥행한 2차 세계대전 영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상륙지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들판에서 싸우고 시가에서도 싸울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에게 포위된 채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위기의 일주일이 해변에서 벌어지는 동안 바다 위에서는 군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배를 몰고 덩케르크로 항해하는 하루가 그려진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는 적군의 전투기로부터 지상군 탈출을 엄호하는 임무를 받은 이들이 남은 연료로 비행이 가능한 한 시간 동안 필사의 노력을 다하는데...


놀람 감독은 <덩케르크>의 이야기 구조를 “플롯을 통해 현실의 시간을 재구성한 생존을 그린 드라마”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육지에서 영국으로 철수하는 배를 기다리는 병사들의 일주일, 바다에서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배를 타고 가는 하루, 하늘에서 철수작전을 엄호하는 전투기들의 한 시간으로 나눠서 보여준다. 세 가지 시공간은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각각 따로 보여지며 시간의 밀도 역시 모두 다르게 묘사되는데 공중에서는 제한된 시간을 연료 게이지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긴박함을 표현한다면, 반대로 육지에서는 빨리 배가 와서 철수하기를 바라는 병사들의 고립감과 절박함을 극대화해 묘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진행되던 육해공의 시공간은 후반부 한 지점에서 일치하게 되고 이 순간이 영화의 절정 역할을 한다. 이는 ‘생존’이라는 영화의 주제와도 연관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영화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조하는 사람’과 ‘구조되는 사람’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전자를 용기 있는 건장한 사람으로 그리지도, 후자를 패잔병이나 힘없는 사람으로 그리지도 않음으로써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이 둘은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결국 영화는 “어떻게 함께 살아서 돌아갈 것인가를 이야기하며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살아서 돌아가는 생존”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 전반에는 적군보다 아군의 공포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전쟁이 ‘공포와의 싸움’ 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실질적으로 영화에서 독일군의 모습이 등장하는 장면도 극히 일부분으로 독일군은 마치 재난 영화에서 인간을 덮친 자연재해처럼 묘사된다. (독일군이 덩케르크 해변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할 때, 주저앉아 귀를 틀어막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병사들의 모습은 마치 밀어닥치는 토네이도 앞에서 어찌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동진 평론가님은 이를 두고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이지만 재난 영화의 문법을 가진 작품”이라고 설명했는데 놀란 감독이 이러한 방식을 택한 것도 결국은 “자연재해와 같은 비인격적인 폭력 앞에서 함께 살아남으려는 공동체의 숭고한 지향력”을 담아내기 위함인 셈이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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