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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Nov 23. 2023

증오와 차별에 시대에 피어난 희망
<쉰들러 리스트>

씨네아카이브 29.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추천

이번 씨네아카이브는 지난호의 연장선으로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2편을 골랐다. 홀로코스트는 그동안 영화에서 많이 다뤄졌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정확한 의미를 찾아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 레터를 준비하면서 구체적인 정의와 개념에 대해서 알게 됐다. 세상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영화도 알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커진다고 한 인간의 열등감과 증오심에서 비롯된 끔찍한 참상을 겪고도 여전히 증오와 차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지나온 역사와 타인의 고통은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닐까.


"씨네아카이브 29.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추천" 전문 읽기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스티븐 스필버그, 1993년 개봉


(출처: 영화 스틸컷)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는 홀로코스트를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다룬 작품으로 호주 작가 토머스 캐닐리의 소설 『쉰들러의 방주(Schindler’s Ark)』가 원작이다. 쉰들러가 구출한 유대인을 지칭하는 ‘쉰들러 유대인’ 중 한 사람이 종전 후 미국에서 가게를 운영했는데 자신의 가게를 찾은 작가에게 오스카 쉰들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에 흥미를 느낀 작가가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필버그 감독은 우연한 계기로 원작을 읽고 판권을 사 영화를 제작했는데 원래는 제작만 하고 연출은 마틴 스콜세이지, 로만 폴란스키 등에게 부탁했으나 돌고 돌아 결국은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게 되었다고...


영화는 빨간 코트를 입고 등장하는 아이와 후반부 쉰들러의 묘비를 찾은 유대인 등장 장면을 제외하면 모두 흑백으로 연출되었는데 특히 작중 쉰들러는 빨간 코트를 입은 아이가 사망한 것을 계기로 유대인을 돕기 시작하기 때문에 이후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상징하게 되었다. (실제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를 연기했던 소녀는 장성하여 현재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도시에서 난민을 돕고 있다.) 영화는 처참했던 유대인들의 상황과 기회주의자였던 쉰들러가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으며 무려 3 2천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린 것은 물론 66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무려 7 부문을 수상했다. 영화는 대부분 실화에 기반하고 있지만, 실제와 다른 부분도 일부 존재하는데 오스카 쉰들러가 아내를 두고도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 등은 영화적 상상력에 기반한 부분이라고.


그러나 영화에 묘사된 홀로코스트 장면 대부분은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져 나체 상태로 신체 검열을 당하는 장면이나 가스실 촬영 장면에서는 일부 배우들이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며 촬영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유대계 감독이기도  스필버그 역시 촬영 내내 이루 말할  없는 심리적 압박과 고통에 시달렸다고 밝혔는데 그런 그가 의지할  있었던 대상이 지금은 고인이  로빈 윌리엄스였다. 스필버그 감독은 로빈 윌리엄스와 매주 전화 통화를 하며 그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 요청해 제작 과정에서 오는 압박과 우울감을 극복했다고 한다.


(출처: 영화 스틸컷)

1939년, 독일에 점령당한 폴란드의 한 도시를 찾은 독일인 사업가이자 냉정한 기회주이자인 오스카 쉰들러는 유대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나치 장교들을 구워삶아 공장을 인수하고, 인건비 한 푼 들이지 않고 수백 명의 유대인을 고용한 쉰들러는 실력 좋은 유대인 회계사 스턴을 고용하면서 그와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이 심해질수록 그의 양심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했던 쉰들러는 유대인들의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마침내 강제 노동 수용소로부터 유대인들을 구해 내기로 결심하고 그의 회계사 스턴과 함께 유대인 명단이 적힌 쉰들러 리스트를 만든다.


영화는 내내 흑백 화면을 보여주다 독일군 장교 괴트(랄프 파인즈)가 게토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유대인 학살 장면에서 처음으로 빨간 코트 입은 소녀를 등장시키는데 이는 오스카 쉰들러가 그동안 편의를 봐주던 인심 좋은 사장님에서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어 유대인들을 구하는 의인으로 변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쉰들러 리스트’는 쉰들러가 자신의 군수품 공장에서 일할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수용소에서 빼내 오기 위해 작성한 유대인 명단을 말하는데 그는 독일 장교들을 온갖 뇌물로 매수해 명단에 적힌 이들을 수용소에서 구해낸다. 그리고 그의 공장은 수개월 동안 실질적인 생산품을 만들지 못하고 버티다 종전을 맞이한다. 그리고 쉰들러는 유대인들을 빼돌리는 비용에 공장이 돌아가는 동안 유대인들을 먹여 살리는 비용까지 그가 벌어들인 재산을 대부분 잃는다. 쉰들러가 구해낸 유대인들은 종전 후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쉰들러는 나치 당원이었다는 이유로 전범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재산을 모두 잃고 전범자로 낙인까지 찍힌 와중에도 쉰들러가 더 많은 유대인을 구해내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장면이었다. 악랄한 짓을 서슴없이 벌이던 괴트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의연한 태도를 보였던 그가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던 유대인들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강강약약’의 모습을 지닌 이상적인 의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강강약약’을 실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아니까...) 그리고 고마움을 잊지 않고 대를 이어 쉰들러를 기리는 유대인들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다. 쉰들러 유대인들은 감사를 표하기 위해 탈무드의 글귀를 새긴 금반지를 만들어 건네주는데 이 금반지는 한 유대인의 금니를 뽑아 녹여서 만든 반지다. 이가 생으로 뽑히는 고통에도 쉰들러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어 좋다는 유대인의 미소는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이의 미소였다.


<쉰들러 리스트> 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를 보면 인간이 인간에게 한 행동이라고는 믿기 힘든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참상의 근원이 단순히 다른 이를 향한 미움과 증오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착잡하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과 혐오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걸 보면 오히려 지금이 그때보다 더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속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오스카 쉰들러와 쉰들러 유대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증오와 차별의 시대에도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의 근원은 역시 ‘사람’ 일 테니까.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날 희망과 인간애를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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