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Nov 30. 2023

겁쟁이 소년의 성장기 <조조 래빗>

씨네아카이브 29.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추천

이번 씨네아카이브는 지난호의 연장선으로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2편을 골랐다. 홀로코스트는 그동안 영화에서 많이 다뤄졌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정확한 의미를 찾아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야 구체적인 정의와 개념에 대해서 알게 됐다. 세상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영화도 알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커진다고 한 인간의 열등감과 증오심에서 비롯된 참상을 겪고도 여전히 증오와 차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지나온 역사와 타인의 고통은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닐까.


"씨네아카이브 29.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추천" 전문 읽기



<조조 래빗 (Jojo Rabbit)>, 타이카 와이티티, 2019년 개봉

(출처: 영화 스틸컷)

<조조 래빗>은 크리스트 뢰넨스의 소설 갇힌 하늘(Caging Skies) 원작으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2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작품이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뤘다는 이유로 불호를 표현한 관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평론가와 관객들에게 좋은 평을 받으며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받았다. 토론토 국제 영화제 관객상의 경우 현장에서 관객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최우수 작품에 해당하는 상으로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분의 수상으로 직결되는 것은 물론 흥행 여부를 가늠할  있는 지표 역할을 하는 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킹스 스피치>, <라라랜드>, <그린 > 등이 모두 토론토 국제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그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수상했고 <조조 래빗> 역시 92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6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각색상을 받았다.


영화에는 스칼렛 요한슨,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토마신 맥켄지,  록웰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들이 참여했는데 특히 주인공 조조의 미망인 엄마 로지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광기만 남은 전시 상황에서도 아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 ‘로지 그녀만의 섬세한 표현력으로 그려내며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조조의 상상  친구인 아돌프 히틀러는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가직접 연기했는데 원래는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했으나 아무도 히틀러를 연기하려고 하지 않는 데다 감독이 직접 연기해야만 제작이 가능한 조건이었다고. 참고로 감독은 폴리네시아계 유대인 혼혈이다.


감독은 끔찍한 2 대전의 이야기를 새롭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들려주는  초점을 맞추고 어두운 배경 속에 풍자와 코미디를 균형 있게 녹여내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특히 영화 속 나치 캐릭터들은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그려내 유머 속에 ‘악의적인 이념이 얼마나 쉽게 퍼지는지에 대한 경고’를 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출 방식은 새로운 결의 전쟁 영화로서 해외 유수의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1940년대 기록 영상을 많이 참조했다고 밝혔는데 예상과 달리 밝고 세련된 느낌에 영감을 얻어 <조조 래빗>을 밝고 생기 넘치는 작품으로 탄생시킬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어린아이인 ‘조조’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영화는 밝은 톤의 색감과 함께 주인공들의 의상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다. (스칼렛 로한슨이 연기한 엄마 로지의 의상이 정말 예쁘다!) 이 역시 방대한 자료 조사와 연구를 토대로 그 당시 사람들의 독특한 스타일을 찾아내 그 시절의 정서를 구현한 것이라고. 화려한 색감과 패턴을 활용해 직접 의상을 제작하기도 하고, 이탈리아 코스튬 하우스를 뒤져 빈티지 의상을 공수하는 등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의 모습과 대비되는 사회상이 인상에 오래 남았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완성시키는 데에는 음악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를 비롯해 비틀스의 ‘I Want to Hold Your Hand’ 등 주옥같은 명곡을 독일어 버전으로 삽입, 관객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출처: 영화 스틸컷)

2차 대전 말기, 엄마 로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10살 소년 조조는 그토록 염원하던 독일 소년단에 입단한다. 하지만 겁쟁이 토끼라 놀림받는 것도 모자라 수류탄 사고로 얼굴에 흉을 얻자 낙담하게 되고 그런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는 건 상상 속 친구 히틀러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는 우연히 집에 숨어 들어온 미스터리 한 소녀 엘사를 발견하고, 그녀와의 공존 아닌 공존을 통해 겁 많고 소심했던 조조는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순수한 소년 조조의 시선을 따라가며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줄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감독은 “어른들에 의해 생긴 역사적 증오의 감정”이 자신이 어린 시절 느낀 것과 비슷했다”라고 밝히며, 원작을 ‘세뇌된 독일 어린이의 시선’이란 소재로 각색했다. (감독은 폴리네시아계 유대인 그의 어머니 역시 러시아계 유대인이다.) 원작가는 영화를 보고 “관객들의 양심을 간지럽혀 스스로 웃음 코드를 찾아내도록 하는 우회적인 방식을 통해 웃음을 단순하게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역사적 비극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는 것이 옳은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개인적으로 희극적인 부분이 부각되었다고해서 불편한 점은 없었다. 만약 영화가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섰더라면 관객들로부터 외면받았겠지만 오히려 많은 이가 공감했다는 것은 영화가 희극적인 부분을 담고 있음에도 적정선을 잘 지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영화는 홀로코스트 이야기이자 조조의 성장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조조가 성장하게 되는 단계마다 각각 다른 이들이 옆에서 도와준다. 처음 조조를 도와주는 건 상상 속 히틀러로 나치 소년단에 입단해 기쁘기도 하지만 두려움도 느끼는 조조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응원한다. 두 번째는 수류탄 사고로 얼굴에 흉이 생긴 조조가 밖에 나가기 싫어하자 조조의 엄마 로지가 용기를 준다. 마지막 조력자는 조조의 집에 숨어 지내는 유대인 소녀 엘사로 조조는 그녀를 통해 비로소 유대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결국 영화는 조조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조조가 어떻게 유대인들을 이해하게 되는가를 그리고 있는 셈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조조 래빗>은 조조의 별명이기도 한데 조조는 나치 소년단 캠프에서 토끼를 죽여야 하는데 죽이지 못해 토끼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영화에서 토끼는 유대인을 비유하는 동물로 나치는 유대인들을 토끼 처럼 유약하고 박멸해야 하는 존재로 본다. (귀여운 토끼를 어떻게 그렇게 볼 수 있는 거지...?)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유대인인 엘사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조조와의 첫 대면부터 정체가 발각될 위기의 순간까지 엘사는 한 번도 유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뛰어난 임기응변과 함께 강인한 모습을 보여줄 뿐. 감독은 이를 통해 유대인들은 전혀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에 가지고 있는 편견을 부수고 조조가 변화하고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매거진의 이전글 증오와 차별에 시대에 피어난 희망 <쉰들러 리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