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32. 종이와 스크린 사이 Part.2
새해가 되면 다이어리 첫 장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기록하곤 한다. 연말에 돌아보며 후회할 걸 알면서도 매년 반복하게 되는 건 ‘새해’이라는 단어가 주는 긍정과 희망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올해는 작년에 달성하지 못한 목표를 첫 줄에 적었는데 ‘작년보다 책 5권 더 읽기!’ 왜 하필 5권이냐면… 부담스럽지도 모자라지도 않아 보이는 숫자가 5였다. 다짐을 적고 보니 내가 독서를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된 계기가 영화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해외 영화를 보는 비중이 많은데 외화는 특히나 원작 소설을 각색한 경우가 많다. 신기하게도 영화가 좋으면 원작에 대한 호기심도 커져 영화로 봤던 소설을 하나씩 찾아 읽으며 조금씩 독서에 눈을 뜨게 됐다. 영화를 통해 책의 세계에 입문한 이력(?)을 갖고 있는 관계로 영화를 보고 원작까지 읽게 된 작품이 꽤 된다. 물론 훨씬 깊이 있게 영화와 독서를 즐기는 이들과 비교하면 미미하지만, 책을 너무 안 읽어서 남몰래 부모님을 걱정시켰던 지라 지금의 성장만으로도 아주 큰 변화다. 그래서 골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2편! 언제나처럼 선정 기준은 발행인 마음...
"씨네아카이브 32. 종이와 스크린 사이 (소설 원작 영화)" 전문 읽기
<원더 (Wonder)>, 스티븐 크보스키, 2017년 개봉
<원더>는 R.J. 팔라시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선천적 얼굴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소년 어기의 성장담을 그렸다. 원작은 첫 출간 후 45개국에서 800만 이상의 독자들을 매료시키며 성공했는데 작가는 작품 속 어기와 비슷한 여자아이를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만났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심지어 데뷔작!) 소설은 남들과 다른 외모로 태어난 소년이 건네는 친절과 그로 인해 변화하는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각기 다른 등장인물의 시선에서 그려내며 유머와 감동까지 모두 잡았는데 개인적으로 영화와 원작 모두 추천하는 작품이다. (One of my favourite!)
영화는 개봉 당시 흥행작으로 예견되던 블록버스터 사이에서도 높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영화를 감상한 셀럽들의 호평에 힘입어 장기 흥행에 성공, 1 억불에 달하는 흥행 수익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영화의 흥행에는 배우와 제작진들의 역할이 크다. 주인공 ‘어기’ 역을 맡은 제이콥 트렘블레이는 촬영 기간 내내 보형물을 착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유머와 에너지를 잃지 않으며 촬영 현장을 이끌었고 여기에 언제나 아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잃지 않는 엄마로 줄리아 로버츠가, 장난기 넘치는 유쾌한 아빠를 오웬 윌슨이 맡아 빈틈없는 연기력과 호흡을 보여주며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유쾌한 가족을 완성시켰다. 어기의 정확한 병명은 ‘트레처코린스 증후군(Treacher Collins Syndrom, TCS). 태어날 때부터 안면에 여러 기형이 나타나는 선천성 질환이다. 극 중에서 어기는 27번의 성형 수술을 견뎌낸 것으로 묘사되는데 어기의 얼굴 분장은 캐릭터에 사실감을 더하며 그해 아카데미 분장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연출을 맡은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은 원작에서 강조하는 ‘자신의 선택으로 달라질 수 있는 자신의 모습과 세상’에 집중하며 자칫 억지 감동으로 바뀔 수도 있었을 드라마를 유쾌함과 감동이 공존하는 드라마로 완성시키며 원작의 메시지와 감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영상 매체의 특성을 적절하게 활용한 이상적인 각색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우주 헬멧을 쓴 어기가 담긴 포스터, 언제나 사랑과 유머가 넘치는 어기네 집 등 영화 곳곳에 녹아있는 배경과 소품은 관객들의 온기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누구보다 위트 있고 호기심 많은 어기. 하지만 남들과 다른 외모로 태어난 어기는 크리스마스 보다 얼굴을 감출 수 있는 핼러윈을 더 좋아한다. 10살이 된 아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엄마 이사벨과 아빠 네이트는 어기를 학교에 보낼 준비를 하고, 동생에 모든 것을 양보해 왔지만 누구보다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비아도 어기의 첫걸음을 응원해 준다. 그렇게 가족이 세상의 전부였던 어기는 처음으로 헬멧을 벗고 낯선 세상에 첫발을 내딛지만, ‘남다른 외모’로 인한 사람들의 시선에 큰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27번의 성형 수술도 견뎌낸 어기는 다시 용기를 내고, 어기의 주변 사람들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데... 과연 어기의 발걸음이 가 닿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원더>는 주인공 어기의 성장과 함께 주변사람들의 성장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통의 성장 서사는 주인공에게만 집중되지만 영화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맞추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특한 방식이라 생각했는데 이는 영화가 소설의 플롯을 그대로 살려서 가져온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어기를 시작으로 어기의 누나 비아, 친구 잭 윌, 비아의 절친 미란다에게로 차례차례 시선을 옮겨가는데 소설에는 영화에서 조명하지 않았던 어기의 다른 친구들과 비아의 남자친구까지 더 많은 인물들의 관점이 묘사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서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어기가 있고 어기라는 행성을 중심으로 주위를 도는 위성처럼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기라는 개인의 성장에서 출발해 가족, 친구, 공동체로 영역을 확장하며 관객들이 다양한 관점을 토대로 인물들의 서사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소설의 플롯을 영리하게 활용한 것도 인상적이지만 <원더>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건 결국 영화와 원작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의 힘이 가장 크다. ‘편견과 차별로 가득한 세상에서 용기 내어 자신을 마주하고,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면 조금씩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할 뿐만 아니라 친절에는 연습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원작가는 도서 출간과 함께 ‘친절을 선택하라(Choose Kind Movement)’ 캠페인으로 메시지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작가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있다면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막상 그런 상황에 놓이면 내면의 갈등과 맞서게 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저 최선을 다해 맞서야 한다 ”라고 원작이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마리’s Clip
“ 옳은 것과 친절함 중 골라야 한다면 친절함을 고르라 (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
영화도 소설도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정말 많지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기의 담임 선생님이 매달 학생들에게 써주었던 문장 중 하나를 고르고 싶다.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보는 건 서로를 헐뜯고 미워하는 흉흉한 이야기들뿐이지만 세상에는 소리 없는 영웅과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믿고 싶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나의 선의가 때로는 선의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친절을 베풀면 어딘가에서 알아봐 줄 거라는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없고 그렇게 생각하면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과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함과 친절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옳은 것과 친절함 중 친절을 고르라는 건 친절을 베풀거나 베풂을 받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옳은 길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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