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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Feb 02. 2024

그의 이야기는 허풍이 아닌 사랑이다 <빅 피쉬>

씨네아카이브 34. 장르가 곧 팀 버튼 Part.1

34번째 씨네아카이브는 팀 버튼.  <웡카> 보기 전 오랜만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다시 보고 난 후 즉흥적으로 주제를 골랐다. 팀 버튼 하면 판타지 영화나 기괴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되지만 추천작으로 고른 작품은 팀 버튼만의 색채가 거의 묻어있지 않아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부담 없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런 이유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팀 버튼 영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씨네아카이브 34. 장르가 곧 팀 버튼' 전문 읽기



<빅 피쉬 (Big Fish)>, 팀 버튼, 2003년 개봉


(출처: 영화 스틸컷)


<빅 피쉬>는 일생을 허풍으로 보낸 아버지(에드워드)와 그를 이해하기 위해 아버지의 모험담을 따라가는 아들(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팀 버튼 영화 중 가장 몽환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꼽히는데 영화를 촬영할 당시 팀 버튼이 아버지를 떠나보냄과 동시에 아이가 태어나 아버지가 되면서 윌의 처지와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팀 버튼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영화는 팀 버튼이 스스로에게 ‘아버지’란 존재가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그동안의 팀 버튼 작품과 달리 기괴한 캐릭터가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좋아하는 영화로 꼽는다. 특히 에드워드의 러브스토리 속 1만 송이 수선화 장면은 SNS상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며 두고두고 회자되는데 이는 실제 꽃밭을 만들어서 촬영한 장면이라고. (와우!) 그 외에도 CG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에 가까운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3백여 명의 제작진, 7천여 명의 엑스트라, 150여 마리의 동물이 촬영에 동원되었다. 영화 후반부 나무 위에 차가 걸려 있는 장면 역시 내부 부속품을 모두 제거하고 실제 나무 위에 차를 걸어 놓고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에드워드는 아이부터 소년, 청년, 노년까지 모두 네 사람이 연기했는데 청년 에드워드와 노년 에드워드의 캐스팅에는 비하인드가 숨어 있다. 당시 노년 에드워드가 공석인 상황에서 청년 에드워드로 이완 맥그리거가 캐스팅되었는데 캐스팅 디렉터가 한 잡지에서 나란히 놓인 엘버트 피니의 젊은 시절 사진과 이완 맥그리거의 사진 속 두 사람이 굉장히 닮은 것을 보고 노년 에드워드 캐스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고.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묘하게 닮았다!)


(출처: 영화 스틸컷)


어릴 적부터 아들 윌에게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아버지 에드워드. 윌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허구임을 자각하는 나이가 된 후에도 끊임없이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향하는데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허풍 가득한 무용담을 들려주고 윌은 그런 아버지에게 환멸을 느끼면서도 처음으로 그 이야기 속에 진실 또한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씩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팀 버튼 영화는 현실과 비현실적인 세계를 또렷이 구분해 왔다. <빅 피쉬>는 두 세계 간의 화합을 이루며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에드워드와 윌은 어떤 면에서는 둘 다 이야기꾼이다. (극 중 윌의 직업은 기자다.) 차이가 있다면 아버지는 환상을 믿는 이야기꾼, 아들은 지극히 현실 지향적인 이야기꾼이라는 것. 서로 양립하던 두 세계는 아버지의 죽음을 앞에 두고 때로는 환상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현실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지를 보여준다.


마리’s CLIP
“그 자신이 이야기가 된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사후에도 이야기로 남아 불멸이 되었다.”

에드워드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의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가족들을 향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에드워드의 기상천외한 모험담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미안함에서 출발하는데 출장이 잦아 아들의 탄생을 함께 하지 못한 아버지는 탄생에 얽힌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한다. 에드워드는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순간마다 자신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함께라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랐던 것 아닐까.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 순간은 사후에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처럼 에드워드의 모험담은 가족들 안에서 에드워드 그 자체로 영원히 함께 하게 된다.


<빅 피쉬>는 죽음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아들을 보여주며 사랑하는 이의 상실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동화 같은 판타지로 그려냈는데 이는 이야기가 단순히 허구에 그치는 것이 아닌 현실을 바라보고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환상적인 세계’를 그려온 팀 버튼 감독 이야말로 ‘이야기가 가진 힘’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감독이란 생각이 든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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