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37. 음악으로 기억될 영화 Part.2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3월에는 격주로 쓰고 있는 씨네아카이브의 주제를 아카데미와 연관 있는 것으로 선정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의미의 연관성을 부여한 주제로 골라봤다. 야박하다 싶을 만큼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었으나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 마침내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인물 특집으로. 이름하야 '음악으로 기억될 영화 (feat. 엔니오 모리꼬네와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하모니)'.
'씨네아카이브 37. 음악으로 기억될 영화' 전문 읽기
<피아니스트의 전설 (The Legend Of 1900)>, 쥬세페 토르나토레, 1998년 개봉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알렌산드로 바리코의 『노베첸토』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평생을 바다 위에서 보낸 천재 피아니스트 ‘나인틴 헌드레드’의 아름답고 순수한 삶을 그렸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1998년 작품이지만 국내에는 2002년 첫 개봉 후 무려 20여 년 만인 2020년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했었다. 영화는 <시네마 천국>, <베스트 오퍼>에 이은 ‘예술’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도 불린다. 배에서 태어나 한 번도 육지를 밟아본 적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인물 설정과 그의 삶과 우정을 설득력 있게 그린 감동적인 스토리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더해져 짙은 여운을 남긴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과 엔니오 모리꼬네가 함께 한 숨겨진 명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국내 재개봉 이후 TV 영화 채널에서 우연히 보게 됐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더불어 눈과 귀를 황홀하게 하는 피아노 연주 장면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 연주 장면은 배우들이 직접 연주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연주하는 연기’를 펼친 것이라고. 나인틴 헌드레드 역을 맡은 팀 로스는 6개월 동안 피아노 연주할 때의 연주자 신체 동작이나 감정 표현을 관찰하고 연습하면서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
1900년,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버지니아 호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 위에서만 살아온 천재 피아니스트 나인틴 헌드레드.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버지니아 호 악단의 트럼펫 연주자인 맥스는 운행이 중단된 버지니아 호가 폭파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전히 배에 남아 있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나인틴 헌드레드의 탄생부터 버지니아 호에서의 첫 만남, 그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배에서 내리지 않는 천재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재즈 피아니스트와의 대결 등 버지니아 호에서 바다 밖 너머의 세상을 배워가던 전설 같은 나인틴 헌드레드의 인생사를 들려준다.
맥스가 들려주는 나인틴 헌드레드의 인생사는 단순히 관객들에게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순수함, 예술을 향한 사랑,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통해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맥스와 같은 마음으로 배에서 내리기를 간절히 소망하던 관객들에게 “88개의 건반으로 이루어진 유한한 피아노와 달리 무한한 건반이 펼쳐진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건 신만 가능한 영역이라 배에서 내릴 수가 없다” 말하는 나인틴 헌드레드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바다에 붙이는 ‘거친 파도’와 같은 수식어는 사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에 더 적합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하게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떨며 살기보다 삶의 전부였던 배와 함께 사라지기를 선택한 나인틴 헌드레드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하고.
마리’s CLIP: “Magic Waltz from Amedeo Tommasi”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피아니스트의 전설>에서도 영화의 숨결이 되어 관객들에게 작품의 정서와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었는데 ‘이 영화엔 이 음악이지’ 같은 딱 떨어지는 선택을 내리기 가장 어려웠던 것도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스코어였다. 가장 대표적인 곡을 꼽자면 주인공이 처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담은 “Playing Love”이겠지만… 개인적인 선택은 “Magic Waltz"! 해당 곡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스코어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아메데오 토마시의 곡인데 나인틴 헌드레드와 맥스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 삽입된 곡으로 넘실대는 파도로 흔들리는 선상 위에서 피아노와 혼연일체가 되어 곡 제목처럼 환상적인 왈츠를 추는 듯한 장면을 잊을 수 없어 선택했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추천곡 이외에도 피아노 대결 장면에 들어간 “Enduring Movement”, 엔니오 모리꼬네 편곡 버전의 “The Crave” 등 좋은 곡이 정말 많으니 전 트랙을 감상해 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