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37. 음악으로 기억될 영화 Part.1
지난주 개최된 아카데미! 늘 그랬듯 재방송 버전으로 시청했는데 이번에는 ‘받았으면 좋겠다’ 혹은 ‘받을 것 같다’ 예상한 작품의 수상 적중률이 높아 더 즐겁게 감상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3월에는 격주로 쓰고 있는 씨네아카이브의 주제를 아카데미와 연관 있는 것으로 선정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의미의 연관성을 부여한 주제로 골라봤다. 야박하다 싶을 만큼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었으나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 마침내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인물 특집으로. 이름하야 '음악으로 기억될 영화 (feat. 엔니오 모리꼬네와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하모니)'.
나는 영화를 보고 나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영화의 메시지나 특정 인물을 표현한 배우의 연기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유형이다. (그래서인지 후자의 경우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파고들어 가다 또 새로운 배우를 발견하게 되고, 필모 도장 깨기를 하고, 또 새로운 배우를 발견하고…’의 무한 반복) 그러나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으로 기억될 영화’라고.
'씨네아카이브 37. 음악으로 기억될 영화' 전문 읽기
엔니오 모리꼬네와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하모니
관객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음악을 통해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는, 영화 음악의 위상을 바꿔놓은 인물을 꼽으라면 모두 엔니오 모리꼬네를 이야기하지 않을까. 설사 엔니오 모리꼬네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그가 작업한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분명 들어본 적 있으리라 확신한다.
* 오리지널 스코어(Original Score)는 영화에 특화되어 작곡된 음악. ‘사운드트랙’은 영화와 어울린다 생각해 삽입된 ‘삽입곡’과 영화의 분위기에 맞춰 만든 창작곡인 ‘스코어’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를 영화음악 감독으로만 알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 같은데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그리고 트럼펫 연주자이기도 하다. 영화 음악사에 미친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 영화 음악 작업만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휘자로서도 꾸준히 활동하며 전 세계의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400여 편의 영화 ・ 드라마 음악, 100여 곡의 클래식을 작곡한 20세기부터 21세기를 아우르는 전무후무한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영화 음악의 위상을 끌어올리며 음악계 사람들이 영화 음악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부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이가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다.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①실험적인 기법들을 도입하며 영화 음악의 세계를 다채롭게 발전시킨 것은 물론이고 ②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캐릭터의 복잡한 심리를 선율만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며 공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③20세기 영화 음악의 체계를 발명한 것과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음악원에서 트럼펫과 오케스트레이션을 공부한 후 다양한 분야에서 음악작업을 이어왔던 그는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서부극의 음악을 만들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와 <석양의 무법자>. 해당 작품을 보지 않은 이들도 음악만큼은 모두 들어봤을 거다. 이외에도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 등이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 꼽힌다.
할리우드로 진출한 후에는 돈 시겔, 브라이언 드 팔마, 워렌 비티, 쿠엔틴 타린티노 등과 함께하며 영화와 더불어 인상적인 음악들을 많이 남겼는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경우 엔니오 모리꼬네의 열렬한 팬으로 평소에도 그의 음악을 작품에 잘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타란티노와 함께 작업한 <헤이트풀 8>으로 61년 만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는데 이는 아카데미 역대 최고령 수상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할 당시 그의 나이가 87세였다.
*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음악과 관련된 상은 크게 2가지로 ‘음악상(The Best Original Score)’, 주제가상(The Best Original Song)’으로 나뉘는데요. 주제가상은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실린 음악 중 단일한 하나의 곡에 부여’하며 그 곡을 부른 가수가 아닌 작곡가에게 주어진다. 음악상은 ‘영화 음악 전체에 부여하는 상’으로 둘의 가장 큰 차이는 가사의 유무라고 보면 된다.
사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유독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는 편이었다. <천국의 나날들>, <미션>, <언터처블>, <벅시>, <말레나>로 후보에 올랐으나 모두 노미네이트에 그쳤고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미션>이 노미네이트에 그쳤을 때는 영화계 전반에서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고. 이후 2007년 공로상을 수상한 바가 있지만 그동안 영화 음악사의 발전에 미친 그의 역량을 생각한다면 아쉬울 수밖에 없기에 마침내 거머쥐게 된 오스카 트로피가 더욱 의미 있게 여겨진다.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선율과 서정적인 음악으로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는 그의 작품들은 영화음악의 위상을 바꿔놓은 것은 물론이고 60년을 훌쩍 넘긴 긴 세월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며 세대를 넘어 모든 음악가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더욱 값진 것 같다.
엔니오 모리꼬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영화감독을 꼽자면 세르지오 레오네와 쥬세페 토르나토레를 이야기할 수 있는데 세르지오 레오네가 엔니오 모리꼬네를 세상에 알렸다면, 쥬세페 토르나토레는 그의 음악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를 만든 감독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대표적인 작품이 <시네마 천국>으로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해당 작품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BAFTA 각본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쥬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 감독은 정교한 캐릭터와 스토리텔링, 유려한 영상미, 감성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는 특히 관객들로 하여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의 경우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통해 그 면모가 더욱 부각되면서 기억에 오래도록 남기에 두 사람의 하모니는 영화팬의 입장에서 그저 사랑이라고 할 수밖에.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 쥬세페 토르나토레, 1988년 개봉
<시네마 천국>은 어릴 적부터 영화를 사랑한 토토의 유년기부터 장년기까지의 일생과 그의 삶에서 멘토와 같은 역할을 했던 알베르토와의 우정을 그린 작품. 알프레도가 건네는 조언들은 토토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선사하며 영화는 개봉 후 지금까지 영화사에 남을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국내에서도 첫 개봉 후 지금까지도 여러 차례 재개봉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시네마 천국>을 통해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며 장면마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전달하는 음악들로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었는데 <시네마 천국>의 사운드트랙 역시 명반으로 꼽힌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사랑했던 토토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마을 광장의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이라는 극장으로 달려가 영사 기사 알프레도의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며 때로는 손자와 할아버지, 때로는 아버지와 아들, 때로는 친구처럼 함께 한다. 어느 날 관객들을 위해 광장에서 야외 상영 중이던 알프레도가 화재 사고로 실명하게 되자 토토가 뒤를 이어 시네마 천국의 영사기사로 일하게 된다. 토토가 청년이 된 후에도 여전히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알프레도는 그가 사랑하는 여자의 부모님 반대로 헤어질 위기에 처하자 사랑보다는 자신의 꿈을 펼치는 인생을 살길 바라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배우기를 권유하고, 이후 토토는 유명 감독이 되어 알프레도의 사망소식을 듣고 30년 만에 고향인 시칠리아로 돌아오는데...
<시네마 천국>은 세대를 불문하고 관객들에게 ‘향수(nostalgia)’를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아닐까. 토토의 순수하고 장난기 어린 유년기부터 장년이 된 후 알프레도가 건넨 충고의 의미를 깨닫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절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지나온 추억을 지금 세대에게는 가족, 친구 그리고 첫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어쩌면 향수는 국적과 장소에 관계없이 사람 사는 곳 어디에서건 각자의 추억을 돌아보게 하는 손에 잡히지 않는 타임머신 같은 감정 같기도 하다. 영화는 영화사의 발전과정과 그 이면의 추억도 함께 그리고 있는데 제목이자 토토와 알프레도의 역사이기도 한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이라는 극장을 중심으로 무성영화와 필름에서 유성 영화와 비디오테이프를 거쳐 디지털에 이르는 영화사의 발전 과정을 시네마 천국의 흥망성쇠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마리’s CLIP: “Love Theme”
<시네마 천국>이 전달하고자 했던 감정에 관객들이 온전히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번에는 가장 좋았던 오리지널 스코어를 하나 골라봤다. 역시 <시네마 천국>하면 “Love Theme". 도입부에서 흘러나오는 클라리넷 소리만으로도 영화의 수많은 명장면들이 떠올리게 되니까. 엔니오 모리꼬네, 존 윌리엄스와 함께 영화 음악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한스 짐머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두고 “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Love Theme”을 듣고 있으면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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