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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pr 19. 2024

낸시 마이어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씨네아카이브 39. 할리우드 중년 로코의 정석 part.1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를 이야기하면 나는 노라 에프런과 낸시 마이어스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노라 에프런의 영화는 20세기 로맨스 편에서 다뤘으니, 이번에는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를 소개할 차례! 개인적으로 로맨스 장르는 어딘가에서 주인공들이 깨 볶으며 즐겁게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데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작품은 항상 그런 여운이 남아 언제든 다시 꺼내 보고 싶게 만든다.


'씨네아카이브 39. 할리우드 중년 로코의 정석 (감독특집 ep.10)' 전문 읽기



중년 로코의 정석, 낸시 마이어스


(출처: VERA ANDERSON GETTY IMAGES / VANITY FAIR)


낸시 마이어스는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할리우드 여성 감독으로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남편의 작품에 참여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녀가 오롯이 감독으로서 첫 메가폰을 잡은 영화가 지난번에 소개한 <페어런트 트랩>! 이후 멜 깁슨 주연의 <왓 위민 원트>를 통해 독특한 설정과 이야기 전개로 흥행에 성공하며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후로도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로맨틱 홀리데이>, <사랑은 너무 복잡해>까지 작품이 연타로 흥행하며 할리우드 대표 여성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현역으로 활동 중이지만, 2015년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인턴> 이후 아직까지 차기작 소식은 요원한데 최근에는 넷플릭스와 준비 중이던 작품이 예산 조율 과정에서 무산되었다고 하니 그녀의 차기작 소식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낸시 마이어스의 영화는 그녀만의 인장이라 할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①솔직하고 주체적인 여성, ②어느 날 갑자기 여자 주인공의 인생에 개입하게 되는 남자 주인공, ③감각적인 세트 디자인과 의상, ④유머가 적절하게 곁들여진 해학적인 대사. 무엇보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풋풋한 청춘들의 로맨스가 아닌 인생의 단맛, 쓴맛, 짠맛까지 경험한 중년들의 로맨스를 청춘 로맨스 못지않게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여주인공의 경우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지만 이혼을 경험했거나 사랑에 상처받은 적이 있고, 단단해 보여도 내면은 여린 인물로 새로운 사랑에 망설이다가도 기꺼이 한 발 내딛는 모습을 보인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주인공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의상이나 세트 디자인이 세련되고 모던하게 그려져 비현실적이란 비판도 있지만 때로는 로맨스 영화에서 관객들이 기대하는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캐릭터만의 매력, 등장인물 간의 케미, 로맨스와 유머를 골고루 활용해 그녀만의 인장이 돋보일 수 있는 로코를 가장 잘 만들어 낸다. 그녀가 감독으로 참여한 장편영화들은 평균 1억 5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이중 4편이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였다고 하는데 흥행 수익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대중들을 얼마나 잘 설득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낸시 마이어스의 공식이 대중들이 심리를 제대로 파고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 아닐까.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Something's Gotta Give), 낸시 마이어스, 2003년 개봉

(출처: Comlumbia Pirctures Industries)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부유한 중년의 독신남과 저명한 작가이자 독립적인 성격의 이혼녀가 우연히 엮이게 되면서 인생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는 이야기를 그렸다. 잭 니콜슨이 성공한 사업가이자 젊은 여자들과 가벼운 연애만 즐기는 해리 역을 맡아 능글맞은 캐릭터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표현했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잭 니콜슨을 좋아했던 이들은 이 작품 역시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That's me...) 이혼 후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온 희극 작가 에리카 역은 <애니 홀>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다이앤 키튼이 연기했는데 배우 본연의 우아함에 캐릭터가 갖고 있는 귀여움이 더해져 다시 찾게 된 연애 감정으로 들뜬 중년 여성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표현했다. 다이앤 키튼은 이 작품을 통해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키아누 리브스의 풋풋한 젊은 시절과 <쓰리 빌보드>, <노매드랜드> 등으로 사연 많은 캐릭터를 연기해 온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가볍고 유쾌한 연기까지 스토리 외에도 주조연 배우들 간의 연기 앙상블 역시 돋보이는 작품이다.


(출처: Comlumbia Pirctures Industries)


젊은 여자들과 가벼운 연애를 즐기며 사는 부유한 독신남 해리는 미모의 경매사 마린과 함께 오붓한 주말을 보내기 위해 마린 엄마의 별장에 놀러 갔다 예기치 못한 심장발작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게 된다. 마린의 엄마이자 성공한 희극 작가 에리카는 동생과 함께 주말을 보내려고 별장을 찾았다 얼결에 딸의 중년 남친(?)을 돌봐줘야 할 처지가 된다. 독립적인 성격의 에리카는 딸이 나이 많은 남자와 사귀는 걸 못마땅해하며 은근히 해리를 경멸하지만 동년배인 두 사람은 함께 지내며 조금씩 친구가 되고, 그러다 묘한 감정까지 싹튼다. 엄마와 남친의 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마린이 쿨하게 이별을 선언하자 해리와 에리카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오랫동안 자유로운 연애를 즐겨온 해리는 에리카에게 정조를 기대하지 말라 선언하고, 에리카는 해리와 자신의 기대치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은 나이에 겪게 되는 실연의 상처로 힘들어하는데... 해리와 에리카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줄거리만 보면 막장드라마가 떠오를 수 있지만 딸의 나이 많은 남친과 사랑이 싹튼다는 설정만 제외하면 유쾌하고 로맨틱한 영화다. 감독은 “중년 남녀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로맨스 코미디로 ‘사람들이 늙어가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밝혔는데 그녀의 말처럼 노화를 겪는 현실적인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이를 해리와 에리카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친구가 되었다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는 지점으로 풀어낸다. 영화는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겪는 고충을 로맨스 영화의 문법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인데 이를 통해 나이가 들어도 환상적인 사랑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고 계속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마리’s CLIP: “에리카의 눈물의 집필 신”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에리카에 대해 “강인한 여성상보다 ‘사실적인 여성상’에 집중해서 그린 캐릭터”라고 밝혔는데 ‘에리카의 눈물의 집필 신’은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부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같았다. 한 여자에게 정착해 본 적 없는 해리로 인해 상처받은 에리카가 이별 후 겪게 되는 감정을 쏟아내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희곡을 집필하던 이 장면은 에리카를 연기한 다이앤 키튼이 지닌 본연의 매력과 만나 한층 더 사랑스럽게 표현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신이기도 하다. 매 순간 성숙하고 어른스러울 것이라 생각한 중년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틀을 바꿔 준 것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로맨스도 청춘 로맨스만큼 새콤달콤하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다이앤 키튼처럼 늙고 싶다. 푼수 짓을 해도 마지막 품위 한 조각은 만큼은 잃지 않는, 귀여움은 덤인 그런 할머니 ㅎㅎㅎ)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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