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39. 할리우드 중년 로코의 정석 part.2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를 이야기하면 나는 노라 에프런과 낸시 마이어스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노라 에프런의 영화는 20세기 로맨스 편에서 다뤘으니, 이번에는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를 소개할 차례! 개인적으로 로맨스 장르는 어딘가에서 주인공들이 깨 볶으며 즐겁게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데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작품은 항상 그런 여운이 남아 언제든 다시 꺼내 보고 싶게 만든다.
씨네아카이브 39. 할리우드 중년 로코의 정석 (감독특집 ep.10)' 전문 읽기
사랑은 너무 복잡해 (It's Complicated), 낸시 마이어스, 2009년 개봉
<사랑은 너무 복잡해>는 오래전 이혼한 전남편과 다시금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 주인공이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새롭게 싹트는 연애 감정과 새로운 인연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중년 로맨스를 유쾌하게 그린 작품. <왓 위민 원트>,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로맨틱 홀리데이>까지 세 작품을 연달아 흥행시킨 로코 장인 낸시 마이어스와 아카데미 2회, 골든글로브 7회 수상에 빛나는 메릴 스트립의 첫 만남으로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은 각본 단계에서부터 주인공 역할로 메릴 스트립을 생각하며 대본을 썼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메릴 스트립은 삶의 모든 부분에서 노련함을 보여주지만, 불쑥 찾아온 사랑 앞에서는 청춘처럼 설레어하는 제인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이외에도 알렉 볼드윈이 제인의 전남편 제이크를, 스티브 마틴이 새롭게 찾아온 인연 아담을, 존 크라신스키가 제인과 제이크의 예비 사위 역할을 맡아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를 선보였다.
베이커리 숍을 운영하며 집 안팎에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해오고 있는 이혼녀 제인. 자식과 친구들 일로 전남편 제이크와 만나게 될 일이 많아지고, 제이크와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결혼 전 연애 시절로 돌아간 듯한 감정을 느낀다. 이와 동시에 제인의 집 인테리어 공사를 맡은 건축가 아담이 제인에게 호감을 보이는데... 다시 연애 시절로 돌아간 듯한 전남편과 새로운 남자친구 사이에서 제인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영화는 제목 그대로 사랑의 복잡함을 구체적으로 그리며 사랑은 인생 경험이 많은 중년에게도 여전히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혼한 부부 사이에 다시 연애 감정이 되살아 난다는 설정이 색다르면서도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감독은 이혼한 부부가 헤어진 후에도 서로 만날 일이 여전히 많다는 것에서 이야기의 줄기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제인과 제이크는 두 사람의 공통된 친구들의 결혼기념일이나 아들의 졸업식으로 자주 부딪히게 되고 이는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스파크가 튀는 계기가 된다. 특히 결혼 생활 동안 단점으로 보였던 부분이 이혼 후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삶이 변화함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고, 이러한 변화를 통해 다시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아담과 제인의 만남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만남에 조심스럽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중년 로맨스 공식을 따르고 있는 설정 같았다. 그러나 중간중간 보이는 일탈이나 소소한 설렘은 신중하지만 그만큼 서로를 잘 보듬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중년 로맨스가 불편하지 않은 건 주인공이 두 사랑 사이에서 끝끝내 중심을 지키고 가족들의 행복과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는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항상 그려왔던 여성 캐릭터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한데 감독은 ‘제인’을 통해 잠시 주춤한 여성들도 언제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마리’s CLIP: “제인과 아담의 베이커리 신”
<사랑은 너무 복잡해>는 모든 장면이 잘 어우러지는 영화라 특별히 인상적인 신은 없지만 굳이 뽑자면 제인과 아담이 베이커리에서 함께 초콜릿 크로와상을 만들어 먹던 장면. 제이크와 아담 두 사람 중 제인에게 더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 건 아담과의 인연이었다. 인생의 고난을 한 번씩 겪고 서로 공감대를 나누며 조심스럽지만 성숙한 태도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중년의 로맨스를 이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기억에 남았다. 무엇보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는 세트 디자인이 돋보이는 것으로 유명한데 아늑한 분위기의 베이커리와 인물 간의 관계 발전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에 한스 짐머의 음악이 더해져 낸시 마이어스 감독만의 로코 무드가 잘 담겨 있는 장면이기도 한 것 같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