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41.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추천 Part.1
3월이 아카데미라면 5월은 칸이지. 이번 아카이빙은 예전부터 다뤄보고 싶었던 칸 황금종려상 특집! 특정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 무조건 좋은 영화는 아니지만, 평소에 즐겨 보지 않는 장르를 경험하거나 단편적인 취향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일부러 찾아보기도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보고 나면 왜 상을 받았고 좋은 영화라고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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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는 베를린과 베니스 영화제와 묶어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며 3대 영화제 중에서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영화제에 속하는데 한국 영화가 다양한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굵직한 상들을 수상했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감독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박쥐>가 심사위원대상,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 전도연 배우가 <밀양>으로 여우주연상, 송강호 배우가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2019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는 칸 영화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경쟁부문 섹션의 주요 영역의 상을 다 받았다.
씨네아카이브 41. '황금빛 잎사귀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특집)' 전문 읽기
<로제타 (Rosetta)>, 장 피에르 다르덴 & 뤽 다르덴, 1999년 개봉
(2019년 국내개봉)
<로제타>는 벨기에의 형제 감독인 다르덴 형제의 작품으로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와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는 10대 소녀 로제타가 경제적 궁곤함에서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제5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들의 고통을 쉽게 단정 짓지 않으면서도 당시 벨기에의 청년실업 문제를 고발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주인공의 이름이자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로제타(Rosetta)’는 영화 개봉 후 저학력 청년들의 실업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1999년 작품이지만 국내에는 2019년에 첫 개봉했는데 다르덴 형제의 이후 작품들(<내일을 위한 시간>, <자전거 탄 소년>, <언노운 걸>, <토리와 리키타> 등)이 꾸준히 국내에 개봉되면서 감독의 이름이 많이 알려지게 되자 <로제타>가 뒤늦게 개봉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늦게라도 다양한 영화가 개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쁠 다름...) 다르덴 형제는 처음부터 함께 작품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형만 벨기에의 유명 극작가 밑에서 수련하며 일하고 있었는데 이후 동생도 합류하게 되면서 형제가 공동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덴 형제의 영화는 대부분 사회제도 밖으로 내몰린 이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선진국이라 불리는 서구 사회와 그들의 제도가 지닌 허점을 비판한다. 리얼리즘에 기반한 윤리적인 주제를 다루며 주인공에게 집중해 관객들이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이를 위해 핸드헬드나 롱테이크 기법을 잘 활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르덴 형제의 작업방식 역시 인상적인데 연습에 연습을 거쳐 신을 완성하기에 배우와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호흡을 맞추고 현장에서도 20회 이상의 테이크를 반복한다고. 다르덴 형제는 한 번 수상하기도 힘든 황금종려상을 <로제타>와 <더 차일드>로 두 번이나 수상했는데 이외에도 <아들>, <로나의 침묵>, <자전거 탄 소년>, <내일을 위한 시간>, <언노운 걸>, <소년 아메드>, <토리와 리키타>까지 대부분의 작품을 칸 경쟁부문에 진출시킨 칸 영화제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감독이기도 하다.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와 함께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는 로제타의 꿈은 소박하다. 일하고 있는 공장에서 무사히 수습기간을 마치고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친구도 사귀고, 따뜻한 집으로 이사해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 모두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소박한 희망조차 허락되지 않던 어느 날, 와플 가게에서 일하는 리케가 호감을 표하며 다가오고 로제타는 그의 도움으로 와플 가게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장의 아들이 그녀의 자리를 꿰차면서 다시 실직자가 되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로제타는 자신에게 선의의 손길을 내미는 리케와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싸우게 되는데... 그녀는 자신의 소박한 꿈인 평범한 삶을 이룰 수 있을까?
<로제타>는 다르덴 형제의 작품 스타일이 모두 집약된 영화로 평가받는다. 그들의 정치적 견해가 담긴 작품이자 자본주의에 기반한 사회적 제도에 대해 이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데 <로제타> 뿐만 아니라 형제의 모든 영화가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단순히 문제점을 고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면의 윤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로제타는 미성년자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지만, 생계의 최전선에 내몰려 엄마를 대신해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선진국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서구 유럽 국가를 떠올렸을 때 그려지는 이미지의 대척점에 놓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끊임없이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장면이나 매일 거리로 나가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통해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감독은 영화의 후반부 로제타와 리케의 관계를 통해 “생존이라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을 때 도덕적 관념은 부차적인 문제로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이 옳은가”라는 물음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마리’s CLIP:
“너의 이름은 로제타. 내 이름은 로제타. 넌 일자리가 생겼어. 난 일자리가 생겼어. 넌 친구도 생겼어. 난 친구도 생겼어. 넌 평범한 삶을 살 거야. 난 평범한 삶을 살 거야. 넌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 거야. 난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 거야. 잘 자.
(Tu t’appelles Rosetta. Je m’appelle Rosetta. Tu as trouvé du travail. J’ai trouvé du travail. Tu as trouvé un ami. J’ai trouvé un ami. Tu as une vie normale. J’ai une vie normale. Tu ne tomberas pas dans le trou. Je ne tomberai pas dans le trou. Bonne nuit.)”
‘평범한 삶’은 ‘개인이 성취한 경제적 자유 안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살아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단순 명료해 보이는 평범함이 누군가에게는 죽을 만큼 노력해도 이루지 못하는 목표가 되기도 한다. 로제타의 하루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생존과의 사투’는 야생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느끼게 되는데 쉽게 대체 가능한 그녀의 일이 제도의 허점과 만나면 쉽게 부당해고 될 수 있는 일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제타는 좌절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헌 옷을 모아 리폼해서 중고상에 되팔거나 공병과 철사줄로 낚시도구를 만들어 생선을 잡으며 생존을 모색한다. 로제타에게 의식주에 해당하는 인간다운 삶의 기본권은 고군분투해도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그렇기에 리케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얻고, 집에 초대를 받은 날 잠들기 전 주문처럼 되뇌던 로제타의 한 마디는 그녀가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매일을 살아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는 그녀의 생존 투쟁의 결과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암시하는 듯한 모습으로 끝나는 영화에 결말 때문에 더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는데 부디 그녀가 되뇌었던 주문처럼 ‘평범한 삶’에 가 닿기를 바라게 된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