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파리 한 바퀴 ep.9
파리에는 에펠탑만큼 삐죽 솟아난 건물이 하나 있다. 몽파르나스 타워가 그 주인공으로 타워 주변으로는 기차역, 영화관, 식당, 상점이 뒤섞여 있는 파리 내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 중 하나다. 낭만의 명사로 불리는 파리지만 막상 살아보면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유동인구 많고 붐비는 몽파르나스 지역에서 조용하게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이름하여 파리에서 만나는 낭만 묘지!
파리의 색다른 낭만, 몽파르나스 묘지 (Cimtiere de Montparnasse)
파리의 공동묘지는 흔히 떠올리는 스산한 공동묘지와는 조금 다르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원이자 쉼터에 가까운데 유명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어 때때로 여행자들이 발길을 멈추기도 하는 파리지엔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휴식공간이랄까. 14구 몽파르나스 지역에 자리 잡은 몽파르나스 묘지는 페르 라셰즈와 함께 파리의 3대 묘지 중 하나로 꼽힌다. 메트로 6호선을 타고 에드가 퀴네 (Edgar Quinet) 역에서 하차하면 묘지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입구에는 몽파르나스에 묻힌 유명 인사들의 묘지 번호가 표시된 지도가 배치되어 있다.
무려 50년 동안 계약 결혼을 유지하고 살았던 것으로도 유명한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합장묘가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페르 라셰즈의 오스카 와일드 묘지처럼 팬들이 흔적(?)이 잔뜩 남아있었다. 이외에도 조각가 브랑쿠시 부부의 묘지도 만나 볼 수 있는데 몽파르나스 묘지 내부에는 브랑쿠시의 작품 중 하나인 '키스'도 있다고 한다. 내가 묘지를 찾았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라 보지 못했는데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고 즐길 수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몽파르나스 묘지는 19헥타르에 달하는 부지에 1200종의 나무를 곳곳에 심어 두었다. 덕분에 페르 라셰즈처럼 파리지엔들을 위한 하나의 공원이자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파리에는 크고 작은 공원이 많지만 묘지는 일반적인 공원과는 또 다른 감성과 낭만적인 분위기가 묻어난다. 유명 인사의 묘지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가볍게 산책을 즐기며 일반인들의 묘지를 둘러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는데 각자의 개성을 담아 가족, 연인 혹은 친구의 묘를 기리는 방법이 우리 문화는 많이 다르면서도 누군가의 죽음을 마냥 슬퍼하기 보다 추억으로 기릴 수 있는 좋은 방식이란 생각도 들었다.
페르 라셰즈에서도 느꼈지만 파리의 묘지가 공원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산책을 즐기거나, 독서나 사색하는 동네 주민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공동묘지는 죽은 자와 산 자가 각자의 방식대로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 아닐까.
페르 라 세즈에도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많이 잠들어 있지만, 몽파르나스도 못지않다. 보들레르, 기 드 모파상, 사무엘 베케트를 비롯해 세르주 갱스부르의 묘지도 만나볼 수 있는데 이들의 묘지를 볼 때마다 놀라웠던 건 단순하고 소박했다는 것. 생전에 이름을 날렸다면 자신의 모습을 본뜬 조각이라던가 일필휘지로 휘갈긴 문구라던가 그럴싸한 외관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유명할수록 묘지는 소박했다.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묘지 사이를 이어주던 가로수 길이다. 구역별로 나뉜 묘지 사이에도 주민들이 편히 지나다닐 수 있도록 인도와 차도, 주차공간까지 갖춘 이곳은 하늘 위로 뻗은 플라타너스 가로수와 양옆의 담벼락까지. 담장 너머는 사실 공동묘지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파리 근교의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기 드 모파상의 묘지는 길 건너편 구역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의 묘지를 찾아가는 길, 시트로엥 가문의 묘지도 만날 수 있었다. 기 드 모파상은 에펠탑이 완공된 후 에펠탑을 보지 않으려 에펠탑 2층 식당에서만 식사를 한 걸로도 유명한데 그는 에펠탑 때문에 후대가 어찌 될지 걱정된다며 파리를 떠났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묘는 파리에 있다.
tmi를 하나 더하자면, 구글맵에 기 드 모파상의 묘지를 검색하면 (Cimetiere Guy de Maupassant) 위치가 뜬다. 묘지에서 제공하는 지도에는 구역 번호만 제공되기 때문에 기 드 모파상의 묘지를 보고 싶다면 구글맵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찾기 쉽다.
파리에서 낭만을 즐기는 방법은 차고 넘치지만, 조금 색다른 낭만을 즐기고 싶다면 파리의 묘지를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페르 라셰즈는 파리 북쪽 구릉지역이라 산책이 힘들지만 몽파르나스 묘지는 평지에 자리하고 있고, 묘지 주변에는 자코메티 재단과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파리 스테이크 맛집(Les Relais de l'entrecote)도 있어 맛집 투어, 미술관 투어, 그리고 산책까지 일석삼조가 가능하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행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