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노블, 안시와 샤모니에 이어 소개할 론 알프스 지역 마지막 도시는 리옹. 론-알프스를 이야기하면서 리옹을 빼놓을 수는 없다. 리옹은 '가장 프랑스다운 도시'라 불릴 만큼 프랑스의 오랜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리옹 사람들이 고향에 대해 갖는 자부심도 남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역사와 문화의 도시, 미식의 도시, 빛의 도시 등 리옹 앞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그만큼 도시의 얼굴이 다양하다.
리옹 여행의 시작과 끝은 프레스킬(Presqu'île)에서
파리의 심장이 시테라면 리옹의 심장은 프레스킬이다. 리옹을 가로지르는 론 강과 손 강의 하구 사이에 반도 형태를 띠고 있어서 이름도 프레스킬(Presqu'île, île은 불어로 섬이라는 뜻이고 presque는 '거의'라는 뜻으로 거의 섬과 같다는 의미다). 프레스킬을 중심으로 손 강 너머에는 리옹 구시가지, 북쪽에는 라 크루아 후스, 중앙에는 벨쿠르 광장과 리옹 시청을 비롯한 고급 부티크와 카페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프레스킬을 중심점으로 잡고 여행을 시작하면 리옹의 주요 여행 포인트는 거의 다 둘러볼 수 있다.
프레스킬 중심부에 있는 벨쿠르 광장은 리옹의 중심지이자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는 곳으로 광장 중앙에는 루이 14세 기마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잘 찾아보면 생텍쥐페리 동상도 만나볼 수 있다. 생텍쥐페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동상인데 처음으로 읽었던 프랑스 소설이 <어린 왕자> 였기에 나는 기마상보다 생텍쥐페리 동상을 더 만나보고 싶었다. 광장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기마상과 달리 생텍쥐페리 동상은 광장 구석에 있어 구글 지도를 켜고 찾아야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벨쿠르 광장에는 오직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리옹 대관람차. 12월에 열리는 빛 축제를 위해 11월 말에 설치해 2월까지 운영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리옹 사람들은 광장에 대관람차가 나타나면 '겨울이 왔구나' 생각한다고 한다. 일종의 겨울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움직이는 달력과 같은 존재랄까.
리옹 시청이 위치한 떼호 광장 주변에는 오페라 극장, 리옹 미술관, 식당과 상점들이 모여 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광장을 많이 보게 되고 광장에는 분수나 조각상 하나씩은 꼭 놓여 있기 마련. 지금까지 방문했던 도시들의 광장에서도 분수나 조각상을 종종 보곤 했지만 크게 관심을 두는 편은 아니었는데 떼호 광장의 바르톨디 분수는 실물로 봤을 때 유독 크고 웅장하게 느껴졌던 분수라 오래 기억에 남는다.
리옹 실크 산업의 중심지, 라 크루아 후스 (La Croix-Rousse)
프레스킬 북쪽은 라 크루와 후스 지역으로 18~19 세기에 실크 제조 업체가 모여 있던 곳이자 리옹의 실크 산업을 대표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크 산업만큼 유명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벽화. 우중충한 건물 외벽에 'Mur des Canuts'라는 벽화를 그려 생기를 불어넣으면서 해당 벽화와 함께 라 크루아 후스 지역도 유명해졌다. 놀라운 건 1997년 처음 벽화가 그려진 후로 매년 조금씩 그림이 업데이트된다는 것! 벽화 속 인물들이 세월에 따라 늙어가는 모습이 벽화 속에도 고스란히 담긴다. 프랑스는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으로 개발하고자 마음먹으면 지속해서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리옹의 과거 속을 걸어보는 리옹 구시가지 산책
프레스킬에서 손 강을 건너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리옹 구시가지를 만날 수 있다. 르네상스 시기에 부유한 이탈리아 상인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그 당시 건물과 자갈 깔린 좁은 골목길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구시가지는 리옹을 여행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었는데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걷기 좋은 곳이었다.
구시가지 서쪽 푸르비에르 언덕에는 푸르비에르 성당이 있는데 파리 몽마르트르에 사크레 쾨르 대성당이 있다면 리옹에는 푸르비에르 성당이 있는 셈이랄까. 그러나 리옹 사람들은 리옹의 특정 지역을 파리의 특정 지역과 빗대어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리오네즈(Lyonnais, 리옹 사람)라는 자부심이 남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리옹 구시가지에서 푸르비에르 언덕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창밖으로 도시를 내려다보며 올라갈 줄 알았는데 리옹의 케이블카는 꼭 지하철 타는 것 같았는데 기차 칸처럼 생긴 케이블카가 터널 아래 깔린 레일 위를 달려 올라가기 때문이다.
언덕에 오르면 손 강과 붉은 지붕으로 빼곡히 채워진 리옹 도심, 도시 너머 지평선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성당을 보기 위해 언덕을 오르는 사람도 많지만 나처럼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풍경을 보러 올라오는 사람들도 꽤 많다. 언덕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내려다보면 알 수 있게 된다. 답답한 일 있을 때 높은 곳에 올라 탁 트인 곳을 내려다보는 이유를.
나의 여행 스타일은 도시 풍경 감상형으로 주로 풍경을 사진에 담거나 여행지의 골목길을 걸어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크고 작은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성당 안을 둘러보는 것도 잊지 않게 됐다. 비슷해 보이지만 안에 들어섰을 때 전해지는 감상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빼놓지 않고 꼭 들러보는데 때로는 웅장함에 압도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조용히 사색에 잠긴 사람들에 눈길이 가기도 한다. 푸르비에르 성당의 느낌은 따뜻함이었다. 은은하게 성당 안을 밝혀주던 불빛을 보고 있으면 추위에 꽁꽁 얼었던 몸과 여행 막바지에 다다라 지친 마음까지 녹여주는 것 같았다.
도심을 수놓는 빛의 향연, 리옹 빛 축제
리옹 여행의 종착지는 빛 축제 관람으로 겨울에 리옹을 방문한 이유도 이 빛 축제를 보기 위해서였다. 매년 12월에 열리는 리옹 빛 축제는 100년이 훌쩍 넘은 리옹을 대표하는 축제로 1년 동안 이뤄진 계획 아래 도시 전체를 장식해 도시를 한 편의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 유명한 축제인 만큼 축제 기간에 방문하면 많은 인파와 축제 특수가 작용한 물가를 감수 하긴 해야 한다. 그러나 빛 축제를 보기 위해 한 번 더 리옹을 방문하겠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 같다. 프랑스는 1년 12달 도시마다 크고 작은 축제로 채워지는 축제의 나라이기도 한데 빛 축제에서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시가지 골목길도 걸어봤고, 보고 싶었던 생텍쥐페리 동상도 봤고, 빛 축제도 즐겼지만 아쉬움으로 남은 것이 있다면 부숑을 방문해 보지 못했다는 것. 리옹이 미식 도시로 불리는 데에는 2018년 타계한 폴 보퀴즈와 함께 리옹의 가정식 식당 부숑의 역할이 크다. 여행지가 쌓일수록 추구하는 여행 스타일도 조금씩 변하게 되는데 먹는 즐거움을 깨닫고 난 뒤로는 리옹에서 부숑에 방문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코로나로 여행이 어려워지니까 다음을 기약하며 미뤄뒀던 것들이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다시 자유롭게 여행이 가능해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리옹에서 부숑 방문하기, 한 번 더 보고 싶은 리옹 빛 축제와 함께 위시리스트에 적어 둬야겠다.
Reference
리옹 관광청 (lyon-france.com)
본 글은 매일경제/네이버 여행+ CP 8기 활동으로 제공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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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행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