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텐블로 산책 (feat. 바르비종)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는 1구에서 20구까지로 파리 인트라 뮤로스(Paris intra-muros)라고도 부른다. 파리를 포함해 20구 밖을 벗어난 근교 지역은 일 드 프랑스 ( Île-de-France)로 이번에 떠나볼 여행지는 파리 근교로 분류되는 일 드 프랑스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일 드 프랑스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아마도 베르사유. 소개할 곳은 베르사유만큼 알려지진 않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선정했다. 베르사유 못지않은 아름답고 넓은 정원, 마을과 인접한 광활한 숲을 만나 볼 수 있는 퐁텐블로와 바르비종이다.
퐁텐블로와 바르비종은 차로 15분이면 오갈 수 있을 만큼 가깝고 두 마을을 오가는 버스도 있지만 배차 간격이 길고 운영 여부가 불투명할 때가 많아 나는 항상 택시를 이용했다. 파리에서 퐁텐블로까지는 기차(TER)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보통은 ①파리에서 TER를 타고 퐁텐블로에 들렀다 ②퐁텐블로에서 택시를 타고 바르비종으로 이동 후 ③역순으로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여정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두 곳 모두 반나절씩 하루 만에 보고 올 수 있고 구석구석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면 각각 하루씩 다녀오는 것도 추천!
프랑스 왕실에서 가장 사랑한 퐁텐블로 궁전
퐁텐블로는 궁전과 정원, 2만여 헥타르에 이르는 광활한 숲으로 유명하다. 퐁텐블로 정원의 경우 그 규모가 베르사유 못지않다. 사실 베르사유 방문은 꽤 피곤한 여정이다. 관광객 틈에 섞여 표를 사고 입장까지 기본 2시간은 줄을 서야 하고 궁전 안에서는 인파에 떠밀려 다닐 때도 있으니까. 그러나 퐁텐블로에서는 긴 줄을 서야 할 일도 인파에 휩쓸릴 걱정도 없다. 여행 성수기인 7-8월에도 비교적 한산한 편이라 조용하게 주변 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아 오기만 하면 된다.
퐁텐블로 궁전은 무려 8세기 동안 프랑스 왕가의 사랑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퐁텐블로 궁에는 '프랑스 왕들이 가장 사랑한 궁전'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궁전과 마을에 인접해 있는 퐁텐블로 숲은 오랫동안 프랑스 왕실의 사냥터로 사용되었는데 왕가에서 사냥을 나올 때마다 퐁텐블로 궁에 머물렀으니 일종의 왕실 별장이었던 셈. 별장처럼 사용하며 여러 번의 증축을 거쳐 중세부터 18세기를 아우르는 다양한 건축양식이 응집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궁전 내부에는 프랑스 왕들이 수집해 온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프랑수아 1세는 퐁텐블로 궁전을 '신 로마'로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의 유명 예술가들을 불러들였는데 그 영향으로 르네상스 미학을 도입하게 되었고 지금의 모습이 완성됐다고 한다.
퐁텐블로 궁전에 가면 꼭 봐야 할 장소가 있는데 성에서 정원으로 이어지는 말발굽 모양의 계단 '페리슈발'과 그 앞에 펼쳐진 백마 광장이다. 일종의 퐁텐블로 공식 포토존이랄까. 말발굽 모양을 닮은 페리슈발과 그 앞으로 펼쳐진 백마 광장은 나폴레옹이 폐위되어 엘바 섬으로 유배를 떠나기 전 이별을 고한 장소로 '작별의 뜰 (Cour des Adieux)'로도 불린다.
웅장하고 화려한 프랑스 궁전의 정원을 꼽자면 베르사유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퐁텐블로도 규모나 아름다움이 베르사유 못지않은데 사실 베르사유 정원과 퐁텐블로 정원을 설계한 인물이 모두 같은 사람이다. 퐁텐블로 정원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정원 양식을 모두 볼 수 있는데 크게 프랑스식과 영국식으로 구분한다. 프랑스식 정원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칼각으로 맞춰 설계한 좌우대칭 구조가 돋보인다면, 영국식 정원은 좀 더 자유롭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정원의 규모가 방대하기 때문에 도보로 돌아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대신 마차나 미니 트람을 이용할 수 있는데 트람은 퐁텐블로 궁전 내부 정원 안에서만 운영되고, 마차는 궁과 인접한 퐁텐블로 숲 일부까지 함께 돌아볼 수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은 마부가 중간중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에 관한 설명도 해주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많다면 트람 대신 마차 투어를 이용해 보는 걸 추천!
밀레 <만종>의 탄생지 바르비종
바르비종은 퐁텐블로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조금 더 더 작고 아담한 마을로 인상주의 미술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모네의 지베르니, 반 고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와 함께 파리 근교 인상주의 미술 투어의 삼대장을 완성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비종이 생소한 이들에게 밀레의 <만종>과 <이삭 줍는 사람들>의 탄생지라고 하면 조금 더 익숙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19세기 말 밀레와 자연주의 작가 루소가 이곳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했다. 특히 화가들의 아지트였던 간느 여인숙은 바르비종파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바르비종의 메인 로드인 그랑 휘(Grand Rue)에는 밀레의 아틀리에가 자리하고 있다.)
밀레의 아틀리에에는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소품과 그림이 소장되어 있는데 그의 대표작인 <만종>과 <이삭 줍는 사람들>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니 참고할 것. 대신 마을 곳곳에 모자이크로 그의 작품을 재현해 두었는데 그랑 휘를 따라 걷다 보면 발견할 수 있으니 주위를 잘 둘러보시길. 그랑 휘는 바르비종에서 가장 큰 호텔부터 밀레의 아틀리에, 바르비종 미술관, 크고 작은 상점까지 모두 모여 있는 바르비종으 메인 로드와 같은 곳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아담한 메인 로드가 아닐까 싶을 만큼 소담한 매력이 돋보이는 곳이다. 그랑 휘의 길 끝은 자연스레 퐁텐블로 숲으로 이어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숲까지 가볍게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숲 초입에서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밀레와 루소의 얼굴이 새겨진 바위와 코끼리 형상을 닮은 코끼리 바위를 만날 수 있다. 나는 바르비종 관광 안내소에 들러 지도를 받았을 때 직원 추천하길래 일부러 찾아갔다. 지도상에 그려진 코끼리 바위에 별까지 그려가며 강조하기에 얼마나 닮았나 싶었는데 고개를 살포시 숙인 채 코를 둥글게 말고 있는 모습이 완전 아기 코끼리였다.
찾아보면 파리 근교에는 데이 트립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꽤 많다. 대부분은 예전에 성주가 살았던 성을 중심으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곳들로 궁전부터 정원, 숲에서 즐기는 가벼운 피크닉과 산책, 미술 여행까지 한 곳에서 모든 걸 다 즐기고 싶다면 퐁텐블로와 바르비종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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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행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