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베르니 & 오베르 쉬르 우아즈 산책
인상주의 회화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파리 근교 여행지는 단연 지베르니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다. 모네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 두 사람의 생의 마지막 순각이 녹아 있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자 파리 못지않게 예술과 낭만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미술을 테마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파리만큼 사랑받는 근교 여행지로 꼽힌다.
지베르니에서 만난 모네의 정원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여생을 보내며 그의 걸작 <수련>을 완성했는데 모네의 정원에 꽃이 만개하는 5~6월에 지베르니를 찾으면 그의 작품에서 보던 색감과 풍경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특히 지베르니에는 모네의 집과 정원 외에도 인상주의 미술관을 비롯해 예쁘게 조경을 가꿔둔 작고 아담한 집들과 갤러리가 많아 마을 전체가 한 폭의 인상주의 그림 같다.
모네의 정원은 모네가 지베르니에 정착했던 초기, 아이 딸린 여성과 함께 산다는 이유로 이웃들로부터 받았던 따가운 시선을 잊기 위해 꽃과 식물을 가꾸는 일에 몰두하면서 탄생했다. 이후 그가 손수 가꾼 정원을 그린 작품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정원사를 고용하여 정원의 규모를 점점 키워나갔다고 한다. 정원의 하이라이트는 ‘물의 정원’으로 모네는 일본식 다리가 설치된 이곳에 남다른 애정을 쏟아부으며 이를 배경으로 그 유명한 <수련>을 남겼고 사후에 프랑스 정부에 기증되었다. <수련>이 소장된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은 오로지 <수련>을 전시하기 위해 지어진 곳으로, 만약 모네의 작품이 없었다면 여전히 튈르리 정원의 온실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의 정원을 나오면 모네의 생가를 둘러볼 수 있다. 집 내부에는 방이 10개나 되는데 가장 큰 살(Salle)인 화실에는 생전 그가 남긴 작품들의 필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화실에서 나의 눈길은 사로잡았던 건 모네의 그림들이 아닌 창밖 풍경이었다. 모네가 정성으로 가꾼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오직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는 평온함이 무엇일지, 그리고 모네가 왜 그토록 정원 가꾸는 일에 몰두했을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오베르 쉬르 우아즈 산책
지베르니가 모네의 마을이라면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남프랑스 아를과 함께 고흐 마을로 불린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고흐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 활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무려 70여 점의 그림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마을 곳곳에 그의 흔적이 녹아 있어 평소 고흐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아를과 함께 꼭 가봐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 전역이 가장 아름답게 만개하는 봄과 초여름 사이에 방문한다면 청량한 하늘과 포근한 햇살 아래 반짝이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거리를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볼 수 있다.
고흐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만 7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했지만 이곳에 머문 시간은 고작 두 달이에 불과했으니 죽기 직전까지 거의 하루에 한 점씩 작품을 남긴 셈이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본 발걸음 끝에 마지막까지 그림에 몰두하며 그가 화가로서의 삶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어 짧은 생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천천히 마을을 걷다 보면 작품 속 배경이 된 오베르 쉬르 우아즈 교회(파리 오르세 미술관 반 고흐 관에 전시되어 있다.)가 나오고, 교회 옆으로 이어진 자그마한 언덕길을 오르면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밀밭과 고흐가 묻힌 묘지가 나온다.
묘지에는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나란히 잠들어 있다. 미디어를 통해 그려진 고흐의 삶은 대부분 ‘불행’에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나는 막연하게 고흐는 작품으로 부와 명예를 얻지 못해 불행한 화가였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그가 불행하기만 했던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예술이 있었고, 무엇보다 후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흐는 자손이 없었지만 동생 테오는 가정을 이루었고, 그의 후손들이 고흐의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다.) 고흐의 묘지를 보며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인 두 형제는 생전에 외면받았던 작품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묘지 앞으로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된 황금빛 밀밭이 펼쳐져 있다. 지평선 너머 밀밭을 보며 바람결에 살랑이는 나뭇잎 소리를 듣고 있자니 고요가 주는 평온에 지친 일상을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지베르니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 둘 다 작고 아담한 화가 마을로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 좋다. 두 곳 모두 파리 외곽 북서쪽에 위치해 일찍 서두르기만 한다면 반나절씩 하루 만에 둘러보고 오는 것도 가능하다. 단, 지베르니의 경우 파리에서 기차로 '베르농'까지 이동한 후 버스 혹은 택시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만 방문할 계획이라면 베르농 역에서 지베르니까지 운행하는 미니기차나 셔틀이 다니는 시기(6-8월)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경우 파리 생 라자르 역에서 기차를 타고 Cergy 역에서 1번 환승하면 곧장 마을에 닿을 수 있다.
Reference
본 글은 매일경제/네이버 여행+ CP 8기 활동으로 제공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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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행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