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르타 & 옹플뢰르 산책
인상주의 회화와 인연이 깊은 파리 근교 여행지로 대부분 지베르니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꼽는다. 목가적 풍경의 마을, 모네와 반 고흐라는 커다란 자산(?) 이외에도 기차로 반나절 만에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역시 파리 근교 여행지로서 커다란 장점이다. 그러나 인상주의 회화의 모태는 따로 있다. 인상주의 태동지이자 영감의 원천으로서 빼어난 자연경관을 품고 있는, 도시 자체로 인상주의 회화의 뮤즈가 되어 준 노르망디의 해안 도시 에트르타와 옹플뢰르다.
노르망디의 경우 지베르니나 오베르 쉬르 우아즈와 달리 대중교통을 이용해 한 번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통은 투어를 신청하거나 렌터카를 빌려 방문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추천하는 방식은 역시 렌터카를 이용한 자유여행.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허락된다면 에트르타와 옹플뢰르를 비롯해 도빌, 르아브르 등 노르망디 대표 여행지를 두루 둘러보고 오는 것도 좋다. 노르망디는 남프랑스 못지않게 프랑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휴가지이자 도심에서 벗어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많다는 사실!
인상주의 회화의 뮤즈 에트르타 (Etretat)
에트르타는 인상주의 회화의 뮤즈와 같은 곳이다. 기차 여행이 가능해지고 튜브 형태의 물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야외에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환경의 변화는 조용한 해안 마을을 인상주의의 태동지로 만들었고 쿠르베, 모네, 마네, 마티스 등 많은 화가들이 에트르타의 해안 절벽을 화폭에 옮겨 담으며 인상주의 회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인상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마음이 심란하고 답답할 때 탁 트인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는데 오랜 세월 자연이 빚은 석회암 절벽과 푸른 바다를 품고 있는 에트르타 해변은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을 찾는 이들에게 완벽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에트르타에서 꼭 봐야 하는 것은 팔레즈 다발과 팔레즈 다몽. 모파상이 코끼리가 코를 바다에 담근 모습 (un elephant plongeant sa trompe dans la mer)으로 묘사하여 우리에게는 코끼리 절벽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에트르타의 해안 절벽이다. 해안가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산책로가 갖춰져 있어 인상주의 작품 속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카메라에 담아 보고 싶다면 산책로를 따라 절벽에 올라 해변과 수평선 너머 바다를 조망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수 십 년 만의 폭염이 유럽을 덮쳤던 한 여름에 방문했더니 내리쬐는 뙤약볕에 숨 막히는 열기까지 더해져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는데 꾹 참고 정상에 올라 내려다 본 풍경은 흘린 땀방울이 결코 아깝지 않았다. 무더운 날씨만 아니라면 산책로가 완만한 편이라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올라갈 수 있다.
노르망디의 작은 코펜하겐 옹플뢰르 (Honfleur)
옹플뢰르는 프랑스 북서부 대표 항구도시로 파리에서 차로 3-4시간 거리. 도시는 작고 아담하지만 휴가철이면 보트를 몰고 유럽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로 정박지부터 구시가지 곳곳이 북적인다. 옹플뢰르 항구는 예부터 교역의 통로이자 항해를 떠나는 젊은 모험가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영국과 북유럽으로 이동하기 좋은 위치라 많은 항해사들이 옹플뢰르에서 라망슈 해협으로 모험을 떠났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서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어 지어진 독특한 건축 양식은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라고 한다. 색색깔로 늘어선 건물을 보니 북유럽의 항구도시 코펜하겐이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옹플뢰르의 첫인상은 프랑스의 작은 코펜하겐 같았다. 옹플뢰르는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네와 그의 스승 위젠 부댕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들을 주축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옹플뢰르의 도심 풍경은 에트르타와 함께 인상주의 화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훗날 인상주의가 태동하는 데 많은 영감을 주었다.
옹플뢰르를 방문했다면 항구와 함께 생 카트린 성당을 방문해 보는 것도 잊지 말 것! 모네도 옹플뢰르를 오가며 생 카트린 성당을 화폭에 담았았는데 성당은 백년전쟁 종전을 기념하여 주민들의 모금으로 지어진 목조 건물로 프랑스에서 가장 규모가 큰 목조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예배당과 종탑은 서로 마주 본 채 떨어져 있는데 여기엔 삶의 지혜가 하나 숨어 있다고 한다. 번개가 칠 경우 예배당 대신 더 높은 종탑에 번개가 떨어져 목조 성당에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대부분의 성당이 그러하듯 생 카트린 성당에도 오르간이 있는데 방문했을 당시 영국에서 온 합창단이 저녁에 열린 공연 리허설 중이라 실제로 오르간이 연주되는 걸 볼 수 있었다. 옹플뢰르를 떠나 도빌로 출발하기 전 들린 성당에서 우연히 보게 된 마주한 그들의 공연 리허설은 우리에게 깜짝 선물이 되어주었다.
옹플뢰르 여행에서 항구를 바라보며 즐기는 노르망디의 신선한 해산물 요리 역시 놓칠 수 없다. 추천 메뉴는 홍합찜과 각종 생선요리 그리고 깔바도스! 사과주의 일종인 깔바도스는 옹플뢰르가 속해있는 노르망디 깔바도스 주를 대표하는 지역 특산품이기도 하다. 도수가 높은 깔바도스가 부담스럽다면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시드르를 함께 곁들여도 괜찮다. 항구에 정박된 요트와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이 수 놓아진 옹플뢰르 야경은 활기 넘치던 낮 풍경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Reference
본 글은 매일경제/네이버 여행+ CP 8기 활동으로 제공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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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행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