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집 제작기 <출판은 처음이라> Episode 3
머릿속으로 그렸던 책이 실물로 완성되기까지 잘 준비했다 생각했지만 실전은 연습과 다르고, 현실도 이상과는 다르다. 좌충우돌 끝에 완성한 사진집 제작기를 매주 한편씩 풀어보려 한다. 독립출판이나 1인 출판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Episode 1. 모든 일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Episode 2. 인생도 출판도 선택의 연속.
✓ Episode 3. 1인 출판을 위한 첫걸음.
Episode 4. 시작이 반이다.
Episode 5. 좋은 것 사이에서 더 좋은 것 골라내기
Episode 6. 편집 디자인의 세계.
Episode 7. ISBN 발급받기 (feat. 온라인 판매 등록)
Episode 8. 좋은 인쇄소는 정말 없는 건가요?
Episode 9. 신비한 인쇄의 세계
Episode 10. knock knock, 제 책을 받아주세요.
Epilogue. 당신 곁에 머무를 파리, < from Paris > 사진집
Epilogue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길 잘한 것 같아
이름이 뭐예요?
출판을 위한 3가지 선택지 중에서 나의 선택은 1인 출판이었다. ISBN을 발급받을 수 있으면서 독립출판과 같은 방식으로 혼자 책을 만들 수 있다. 독립출판과의 차이점은 ISBN을 발급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인데 ISBN 발급을 위해서는 출판사 등록 번호가 필요하다. 출판사 등록 번호를 받으려면을 출판업으로 사업자를 내야 하는데 등록 자체는 어렵지 않다. 나에게 출판사 등록보다 중요한 일은 출판사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
이름을 짓는 것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행위다. 세상에 태어나 이름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되고, 이름이 불려짐으로써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니까. 이름은 가장 확실한 자기 존재의 표시이자 존재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징표 역할을 한다. 사람에게도 이름이 중요하듯 브랜드 네이밍 역시 중요하다고 들어왔다.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날지라도 사진집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고, 담고 싶은 것을 출판사 이름 안에 함축적으로 담고 싶었다. 오랜 시간 무엇이 좋을지 고민했다. 부르기 쉬운 이름은 뭘까? 한번 들으면 쉽게 각인되는 이름이 좋을까? 우리말로 지어야 할까? 프랑스어로 지어도 괜찮을까? 이것저것 고민하다 '보네르 아카이브(Bonheur Archive)'로 지었다. 부르기 쉬운 이름도 쉽게 각인되는 이름도 아니지만 내가 사진을 찍고 사진집을 만드는 이유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이름이라 마음에 들었다. 좋아하는 프랑스어 단어 중 하나가 '행복'이라는 뜻의 'Bonheur'다. 애초에 파리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던 건 힘든 유학생활 중 오직 파리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순간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행복해지는 순간들을 차곡차곡 아카이빙 해서 완성한 사진집을 출간하기 위한 출판사 이름으로 '보네르 아카이브(Bonheur Archive)'만큼 마음에 드는 이름은 없었다.
정성스레 지은 출판사 이름이 이미 존재한다면 작명을 위한 고뇌의 시간도 허탕이니 이름을 고민할 때, 2-3가지 정해두고 출판사명 중복확인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문화체육관광부 출판사 인쇄사 검색시스템을 이용하면 전 지역의 출판사 명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나는 다행히 1순위로 정해둔 이름과 중복되는 출판사 명이 없어서 바로 진행할 수 있었다.
출판사 등록하려고요
출판사 이름을 정했다면 정식으로 출판사 등록을 할 차례. 출판사 등록은 신고 주소지 관할구역의 구청 '문화체육부' 혹은 '문화공보과'에서 담당한다. 해당 기관에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구비서류를 제출하면 3일 이내로 완료된다. 보통 2-3일 이내로 처리된다고 했지만 나는 반나절만에 등록증을 받았다. 내가 출판사 등록을 한 곳은 서울/경기도 지역이 아닌 부산. 규모가 큰 인쇄소도 드물고, 독립서점도 많지 않은 지방에서 사양산업에 가까운 출판사를 차리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일처리가 더 빨리 된 것 아닐까 싶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 오전에 방문해서 신청했는데, 그날 오후에 등록증 찾아가라는 연락에 한국은 배달과 택배만 빠른 것이 아니라 민원이나 행정 처리도 속도가 남다르구나 싶었던 순간.
서류는 신분증, 등기부등본, 사무실이 따로 있는 경우라면 임대차계약서를 준비하면 된다. 1인 사업장은 자택을 사무실로 겸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나는 집 서재를 임시 사무실 삼아 책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 등기부등본만 제출했는데, 부모님 댁이라 가족관계 증명서도 함께 첨부했다. 일반적으로 지참해야 하는 서류는 신분증, 등기부등본, 임대차계약서지만 가능하면 관할 구청에 전화로 문의하는 것이 좋다. 관할 구청마다 출판사 등록을 담당하는 부서명이 다를 수도 있는데 문화체육부에서 담당한다고 하지만 해운대구청은 '관광문화부'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방문 전 해당 구청에 전화로 출판사 등록을 위해 방문하고자 하는데 담당 부서명과 부모님 명의의 집을 사무실로 사용할 경우 필요한 서류가 무엇인지 물어본 후 방문했다.
1인 출판을 결정하고 간과했던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세금. 출판사는 등록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등록하는데 비용이 발생한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주어지는 것은 이름이요, 이름을 달고 사회에 나오면 가장 먼저 주어지는 것은 세금이로구나 싶었던 순간.) 매년 1월 출판사 등록비 27,000원을 납부해야 하는데 1인 출판으로 책을 만들 계획이라면 가급적 연초에 출판사를 등록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나는 11월에 출판사 등록을 마쳤고, 책은 다음 해 3월에 나왔다. 출판사 등록 전, 틈틈이 사진집 작업을 해오면서 책이 2/3 정도 완성되었을 때 출판사 등록을 시작했는데, 11월에 등록비 납부하고 두 달 만에 다음 해 등록비를 지급해야 했다. 휴업이나 폐업 등록을 하지 않는 이상 매년 납부해야 하는 돈이지만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해가 바뀌고 또 세금을 내자니 괜히 아까운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달까. 경험을 담보로 시작한 1인 출판 예상 운영 기간이 짧은데 경험도 쌓고, 책도 만들고, 출판도 해보고, 세금도 아끼고 싶다면 출판사 등록은 연초에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1인 사업자가 되었다.
출판사 등록 후에는 사업자를 등록해야 한다. 사업자 등록의 경우 출판사 등록증 주소지 관할 구역의 세무서로 가거나 홈택스에서 신청도 가능하다. 나는 방문 등록을 택했다. 사업자 등록을 위한 신고서를 작성하는데 이때 주업태와 주종목을 기재해야 한다. 미리 찾아본 바에 의하면 '서비스/출판'으로 기재하면 된다지만 알려주는 곳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직접 물어보고 등록하기 위함이었다.
출판업은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사업자다. 단순히 책만 판매한다면 면세사업자로 등록하면 된다. 나는 연말에 포토캘린더도 만들고, 사진집에서 제외된 사진을 따로 모아 엽서나 포스터도 만들어 판매할 계획이라 해당 사항에 대한 별도의 문의가 필요했다. 면세는 오직 출판에만 해당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업장을 운영할 계획에 맞춰 면세사업자와 일반과세자 사업장 2개를 내야 하는지, 하나로 등록하는 것도 가능하지 확인 후 진행하고 싶어 세무서를 직접 찾았다. 결론은 책 이외의 다른 출판물을 판매한다면 일반과세자로 등록하고, 책 판매 건에 관해서만 면세로 신고하면 된다. 간혹 인쇄기는 있는지, 편집은 누가 하는지 등 출판 여건을 물어보기도 한다길래 답변을 미리 준비해 갔는데 나에겐 물어보지 않았다.
만든 책을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직접 판매하게 된다면 사업자 등록과 함께 통신판매업 신고도 겸해야 한다. 오프라인 서점/온라인 서점/오픈마켓 등에 입고 판매를 하는 경우라면 필요한 과정은 아니지만 본인이 직접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만들어 판매할 계획도 있다면 필요한 과정이다. 통신판매업 신고 전에는 사업자 통장을 개설하고 구매안전거래 확인증을 발급받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통신판매업 신고는 정부 24시 홈페이지 혹은 관할 구청 방문 신청도 가능하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경우 기업용 공인인증서, 구매안전거래 확인증, 사업자 등록증을 준비해야 하고, 오프라인으로 진행할 경우 신분증, 사업자 등록증, 구매안전거래 확인증, 개인사업자 통장 사본, 임차계약서(사무실이 있는 경우)를 제출한다. 통신판매업 신고 시 중요한 것도 역시 세금. 통신판매업을 등록하면 출판사 등록과 별개로 연 1회 지방세(40.500원)를 납부하게 되어 있다. 나는 11월 말에 출판사 등록과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12월 초에 통신판매업 등록을 진행했는데 역시나 한 달 뒤, 새해 1월에 2021년 분의 지방세를 곧바로 납부했다. 출판사 등록비와 더불어 연초에 일찍 출판사 등록을 시작하지 않았던 나의 결정을 후회했던 순간이다.
빠름과 느림 사이
1인 출판을 위한 첫걸음은 책 기획과 출판사 등록이다. 혼자서 만들고, 판매하고, 운영하는 작고 소중한 1인 사업장이지만 사업자가 된다는 건 두렵고 걱정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더 꼼꼼하게 모았다. 행정이 느리고 고약하기로 소문난 프랑스에서 체류증 갱신부터, 세금신고까지 웬만한 행정은 경험해 본 덕분에 한국에서 하는 출판사 등록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는데,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프랑스에서 행정 관련 일을 처리할 시기가 다가오면 한 달 전부터 밤잠을 설친다. 트리플 체크를 해도 운이 나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 프랑스 행정이니까.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들은 공감하리라.) 진행 속도도 더딘데 재수 없으면 진행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내가 일으킨 문제가 아니라면 느리지만 결국 해결은 된다. 프랑스에서의 경험 때문에 출판사 등록을 위해 자료수집부터, 서류 준비까지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나는 지금 한국이라는 사실을. 여러 번의 서류 확인이 무색하게 출판사 등록을 위해 챙겨갔던 서류는 담당자의 신분증 확인 하나로 프리패스됐다. 3일 걸린다던 등록증 발급은 반나절만에 끝났고, 세무서에서 사업자 등록증 발급까지는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사업자 통장 개설부터 통신판매업 등록까지는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출판사 이름을 정하느라 고민했던 시간이 사업자 등록을 완료하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길었다. 시속 30km로 달리다 아우토반 위를 질주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
빨리 끝나서 좋기도 했지만 어색하고 불편한 점도 있었다. 서류상에 오타가 있다거나 (담당자가 '출판업'을 ‘충판업'이라 기재한 사실을 다음날 알게 되어 세무서에 재방문해서 서류를 다시 발급받았다.) 확인하지 않을 서류를 발급하는데 쓸데없는 비용이 들어간다거나 하는 일이다. 약식으로 간소하게 처리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규정에는 절대 예외를 적용하지 않는 프랑스 행정에 익숙해서 인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넘어간 듯한 찝찝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느 쪽이 맞다 틀렸다 보다는 한국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과 프랑스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달까. 둘 중 어디가 더 좋냐고 묻는다면, 규정에는 예외를 적용하지 않으면서도 일 처리는 빨리되는 쪽이면 좋겠지만.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독립출판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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