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5년 차: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의 기준

by 쏘쏘

5년 차가 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분명 일은 전보다 잘한다. 회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갈지 예측할 수 있고, 민원이 들어왔을 때 어떤 순서로 정리해야 하는지도 안다. 신입직원 때처럼 “내가 왜 이렇게 멍청하지”라는 자책은 줄어든다. 그런데 마음은 더 자주 흔들린다. 일의 윤곽이 선명해질수록,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오래 끌고 갈 수 있는지도 함께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5년 차의 질문은 대체로 여기로 모인다. ‘나는 계속 남을 수 있을까?’ 혹은 ‘이제는 떠나야 하는 걸까?’


이 갈림길 앞에서 사람들은 흔히 스스로를 두 부류 중의 하나로 분류하려 한다. 남는 사람은 더 단단하고 더 성숙한 사람, 떠나는 사람은 약하거나 예민하거나 적성이 맞지 않는 사람. 하지만 5년 차에서 이 이분법은 거의 항상 틀린 결론으로 이어진다. 5년 차의 선택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남으면 ‘왜 남았지’가 남고,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떠나면 ‘왜 떠났지’가 남는다. 같은 선택을 해도 기준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후회가 결정으로 바뀌는 지점이 바로 기준이다.


5년 차에 찾아오는 피로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초년의 피로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일을 몰라서 긴장하고, 익숙하지 않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처음 보는 위기와 슬픔에 몸이 놀라서 지친다. 그런데 5년 차의 피로는 “이제는 할 줄 아는데 왜 이렇게 허하지?” 같은 느낌으로 나타난다. 성과는 나는데 내 안에 남는 느낌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결국 내가 처리한다. “네가 잘하니까”라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 다음 업무가 배정될 신호처럼 들린다. 이 피로는 단순한 과로가 아니라, 전문성으로 축적되지 않는 소모성 노력으로 인한 것이다. 열심히 한 시간이 전문성으로 쌓이기보다 조직의 빈틈을 메우는 데 흡수되어 사라질 때, 사람은 자신이 ‘점점 능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소모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느낀다.


이때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번아웃을 떠올리지만, 동시에 자기검열부터 한다. 다들 힘든데 내가 유난인가. 마음이 약한가. 성격 탓인가. 그러나 번아웃은 성격 테스트의 결과가 아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번아웃을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관리되지 않은 만성 직장 스트레스가 만들어내는 결과”로 설명하며, 흔히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일에 대한 거리감이나 냉소가 커지며, 직업적 효능감이 떨어지는 상태. 중요한 건 ‘스트레스가 있다’가 아니라 ‘스트레스가 관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번아웃은 “더 강해져야지”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관리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구조를 바꿔야 하는” 문제에 가깝다.


이러한 의미에서 5년 차의 질문은 “내가 번아웃인가?”가 아니라, “내 스트레스는 왜 관리가 되지 않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남을지 떠날지의 판단도 감정이 아니라 근거 위에서 이루어진다. 회복 가능한 스트레스라면 ‘남되 방식과 조건을 바꾼다’가 가능하고, 회복 불가능한 구조라면 ‘떠남은 회피가 아니라 안전장치’가 된다.


5년 차 사회복지사의 판단을 결정하는 요소는 대개 다음 중의 하나이다.


첫째는 생계와 고용의 현실이다. 초년에는 의미가 버팀목이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감각이 힘든 하루를 견디게 한다. 하지만 사명감은 통장 잔고를 지켜주지 못한다. 의미가 약해진 게 아니라, 의미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커진 것이다.


둘째는 경계의 붕괴다. 일의 경계, 감정의 경계, 관계의 경계가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늘 좋은 것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종종 감정노동의 확대와 연결되고, 결국 “다른 사람의 불편을 대신 떠안는 능력”을 능력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셋째는 자기 발전의 기준 변화이다. 3년 차가 일이 늘어나는 시기라면, 5년 차는 일이 늘어난 상태에서 “이제 나는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가 본격적으로 요구되는 시기다. 사례관리를 더 깊이 할 것인가, 기획과 행정으로 무게를 옮길 것인가, 중간관리와 리더십을 준비할 것인가, 기관 유형을 바꿔 구조 자체를 갈아탈 것인가. 선택지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을 만든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선택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5년 차의 결정을 돕는 중요한 기준은 ‘감정’이 아니라 ‘지표’가 되어야 한다. 감정은 중요한 데이터지만 결론이 되기엔 변동성이 크다. 오늘의 분노와 내일의 죄책감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지표는 방향을 잡아준다. 내가 추천하는 지표는 네 가지다.


첫째, 회복 가능성이다. 일을 쉬면 회복되는가, 아니면 휴가 뒤에 더 무너지는가. 팀의 지원이나 슈퍼비전이 있을 때 회복이 가능한가, 아니면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번아웃에 가까워지는가. 업무량을 줄이지 못하더라도 업무 설계(일정, 역할, 분장, 책임의 범위)를 조정하면 삶이 나아질 여지가 있는가. 회복이 의지가 아니라 설계 변경으로 가능하다면, 남는 선택은 충분히 건강해질 수 있다.


둘째, 효능감의 방향이다. 5년 차에 필요한 효능감은 단순히 일을 잘 처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역량이 강화된다는 감각이어야 한다. 기록이 축적되어 다음 해가 쉬워지는가. 내가 만든 방식이 팀의 표준이 되는가. 내 경험이 설명 가능한 언어로 남는가. 계속 바쁘기만 하고 ‘쌓이는 감각’이 없다면, 문제는 대개 능력이 아니라 배치와 구조에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참는 것이 아니라 역할의 재설계다.


셋째, 나와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가 일치하는지다. 여기서 가치란 선악이 아니다. 공정함과 관계 유지, 질과 양, 안정과 성장 같은 축에서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조직이 무엇을 우선하는지의 일치 정도를 말한다. 현실적으로 완전한 일치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그 차이가 조정 가능한 수준인지 아니면 내 기준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충돌인지는 구분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남는 선택은 시간이 갈수록 자기혐오로 바뀌기 쉽다.


넷째, 생활 지속 가능성이다. 냉정하지만 피할 수 없다. 지금의 조건으로 나의 경제생활, 시간, 건강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가. 월급 액수보다 중요한 건 실질 생활 여력이고, 야근 시간 자체보다 중요한 건 회복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느냐이다. 수면이 무너지고 위장이 흔들리고 감정이 자주 폭발한다면, 그것은 ‘마음 관리가 부족한 신호’라기보다 신체가 보내는 구조 신호에 가깝다. 이 지표를 무시하면 결국 번아웃이 대신 결정을 내려버린다.


이제 남는 선택을 다시 보자. 남는다는 것은 충성심의 문제가 아니다. 5년 차에 남는다는 것은 스스로와 조직과 일의 방식에 대한 재계약이다. “나는 계속 이 일을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나는 이 조건에서는 계속할 수 없습니다.” 혹은 “이 조건이라면 계속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태도는 착함이 아니라 설계다. 일을 위에서 주는 대로만 받아 수행하는 방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과업과 관계와 의미의 경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옮겨가는 것. 작은 변화가 누적될 때 지속가능성이 생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가 반복해서 떠안는 소모성 업무를 목록화하고, 일부라도 이관·자동화·간소화해본다. 감정노동이 집중되는 상황을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않고, 팀의 프로토콜로 바꾼다. ‘도왔다’는 감각을 ‘어떤 판단 기준으로 사정했고, 어떤 자원을 조정했고,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의 언어로 기록해본다. 이런 재계약이 가능하다면 남음은 미덕이 아니라 전략이 된다. 반대로 재계약이 불가능한 조직에서 남는다면, 남음은 전략이 아니라 소모가 된다.


떠나는 선택 역시 마찬가지다. 떠난다는 것은 포기의 문제가 아니라 전환의 문제다. 다만 떠남이 지속 가능한 전환이 되려면 한 가지 작업이 필요하다. 그동안 내가 쌓은 경험을 설명 가능한 언어로 정리하는 일이다. 사회복지 현장은 많은 경험을 하는 곳이지만, 그 경험이 종종 “설명되지 않는 경력”으로 남는다. 떠날 때 흔들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생긴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말할 수 없을 때, 떠남은 막연해지고 두려움은 커진다.


정리하는 작업은 어렵지 않다. 성과가 아니라 기능으로 정리하고, 감정이 아니라 과정으로 정리하고, 사건이 아니라 반복 패턴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내가 위기 상황에서 무엇을 근거로 판단했고 어떤 조정을 했으며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것을 ‘상황–행동–결과’의 언어로 남기면 된다. 그리고 내가 반복해서 잘한 것과 반복해서 지친 것을 분리하면 다음 환경을 고르는 기준도 선명해진다. 떠남이 도망이 아니라 전환이 되는 지점은 대개 여기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결론을 서둘러 내지 않는 편이 좋다. 5년 차의 결정은 한 번에 끝나는 선언이 아니라, 작은 조정과 확인, 그리고 짧은 탐색을 거치며 비로소 단단해질 때 흔들림이 적다. 예컨대 한 달만이라도 나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시간을 일정에 넣어본다(상담 뒤 10분, 민원 뒤 15분, 기록을 위한 시간의 형태로). 또 한 번만이라도 업무 재분배를 위한 대화를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자료(업무 목록, 소요 시간, 리스크, 대안 등)로 시도해본다. 그리고 이직 가능한 다른 기관의 특징과 그곳에서의 직무들을 가볍게 비교해보며, 내가 견딜 수 있는 조건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구체화해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쳤는데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때 떠남은 충동이 아니라 근거가 된다. 반대로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낸다면, 남음은 ‘그냥 버팀’이 아니라 ‘조건을 바꾼 지속’이 된다.


5년 차는 “열심히 하면 된다”는 선언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기다. 그렇다고 당신이 나약해진 것은 아니다. 이제 당신이 기준을 가져야 하는 연차가 된 것이다. 남는다는 것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재설계하는 것이고, 떠난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환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이든 명확한 기준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나를 지키는 일이 된다. 그래서 5년 차의 선택은 삶의 방향을 뒤집는 결단이 아니라, 흐려진 경계를 다시 분명히 하는 일이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좋은 질문 (당신이 5년차 사회복지사라면)


- 내가 요즘 지치는 이유는 업무량 때문인가, 아니면 회복이 불가능한 업무 설계(역할, 일정, 책임의 범위 등) 때문인가?


- 최근 6개월을 떠올렸을 때, 내 일에서 “역량이 높아지는 느낌”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것은 기록, 방식, 관계, 성과 중 무엇이었나?


- “네가 잘하니까”라는 말이 들릴 때, 나는 칭찬으로 느끼는가, 아니면 추가적인 업무 부과에 대한 부담의 예고로 느끼는가? 그렇게 느끼게 만든 구체적 사건은 무엇이었나?


- 내가 지금 겪는 스트레스는 “힘든 일이 좀 있다.”의 수준인가, 아니면 만성 스트레스로 굳어졌다는 신호(수면장애, 위장장애, 감정 폭발, 냉소, 무기력)인가?


- 내가 속한 조직에서 담당업무, 책임의 범위, 성과 기준, 의사결정 구조, 감정노동 프로토콜 중 가장 먼저 바꾸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 내 가치는 공정 vs 관계, 질 vs 양, 안정 vs 성장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그리고 우리 조직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가까운가? 그 간극은 조정 가능한 긴장인가, 내 기준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충돌인가?


- ‘남는다’를 선택한다면, 나는 무엇을 줄이고(소모) 무엇을 늘릴 것(축적)인가? 이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변화는 무엇인가?


- ‘떠난다’를 선택한다면, 내가 지난 5년 동안 해온 일을 성과가 아니라 기능으로 설명한다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가? (사정, 개입, 자원확보, 조정, 갈등중재, 행정, 평가대응 등)


- 내가 반복해서 잘한 것과 반복해서 지친 것은 각각 무엇인가? 전환할 조직을 선택할 때 반드시 필요한 조건과 피하고 싶은 조건은 무엇인가?


- 3개월 뒤의 나에게 “지금의 선택이 내 시간을 지키는 결정이었나, 아니면 후회를 미루는 방식이었나?”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 같은가

작가의 이전글7장. 3년 차: 경력 설계의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