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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경 Jun 19. 2020

모래성이 부서지더라도

하찮은 인생을 대하는 자세

인생은 모래성을 쌓는 일이다. 얼렁뚱땅 그 성을 세운 건 아닌데 어떤 이는 쉽게 이룬 줄 알거나 금방 해낸 줄 안다. 한낱 모래성도 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억울한 건 그렇게 쌓은 모래성이 지나가는 바람에 할퀴거나 누군가의 발길에 채이기라도 하면 쉬이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말마따나 별 것 아니고 가벼운 게 맞는 논리다. 그럼에도 모래성을 쌓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다. 그저 쌓고 허물고를 반복하는 모래성 같은 인생일지라도 뭐 어떠하랴. 모래는 극치로 자유롭다.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 내가 이것저것을 맘껏 해볼 수 있던 것도 모래 위에 서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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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는 이따금씩 단단한 콘크리트를 꿈꾼다. 단단하고 고정된 모양새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렇다 해도 모래는 알기는 할까? 콘크리트의 비애를, 움직일 수 없고 흩어질 수 없는 저주를 말이다. 이도 저도 될 수 없는 단단한 형상은 누군가를 홀릴 테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저릿할 일이다. 어찌어찌해도 나는 모래의 자유분방함이 좋다. 어느 날은 산이었다가 또 어느 날은 비가 되었다가 길이 되기도 하고 집이 되기도 한다. 그 정의 내려지지 않는 자유가 참 좋다. 


이쯤 되니 가볍고 흔한 것을 좇는 나도 딱 모래만큼 같다. 정형화된 고착을 거부하는 나는 모래성만큼 쌓이다가 흩어지는 인생이다. 그럼에도 안타깝거나 슬프지만은 않다. 앞으로도 단단해지려고 굳이 불행을 좇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고로 내 인생은 해방된 삶이다. 어느 날은 쌓다가 부서질 것이고 다른 날은 모였다가 흩어질 것이다. 제 모양 하나 갖춰있지 않아도 더는 하찮거나 시시할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래성이 부서지더라도, 다시 달리 쌓을 수 있으니 그걸로 충분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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