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마지막을 지나, 나에게 남은 이야기
나는 지방의 어느 종합병원 간호사로 12년 정도 일했다.
그중 응급실에 근무했던 8년 정도의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의 마지막을 보고 겪었다.
신규 간호사로 아무것도 모르고 일에 적응하기도 벅차던 그 병아리 시절 처음 겪었던 타인의 죽음은 너무 낯설었고 그 자리에 간호사라고 서 있는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에 치이고 사회생활, 인간관계에 치이면서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고 타인의 죽음에 익숙해져 가며
누군가의 인생의 끝이 일로만 느껴지던 순간을 마주했을 때 나 자신이 냉혈한 같고 인간성을 잃은 것 같은 그 기분은 전혀 다행스럽지도 달갑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렇게 일에서 감정을 배제했기 때문에 내가 온전하게 나 자신을 지키며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처음 적응이 안 되던 타인의 죽음 그 순간부터
응급실에서의 마지막 타인의 죽음까지 언제나 항상 의식처럼 마음속으로 행했던 나만의 중얼거림이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병실이 아닌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분들을 배웅하면서 '좋은 곳으로 가세요'
하고 마음속으로 말하게 되는 버릇..
종교도 없고 사후세계에 대한 어떤 신념도 없지만
어느 순간 습관처럼 그렇게 루틴이 되었다.
누군가는 그러더라
"명복을 빌어주는 건 너의 몫이 아니다."
"의료인으로서 너의 일을 다 했으면 그걸로 끝인 거다."
되게 야박하게 들렸다..'T발 놈인가....'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욕하진 않는다.
공과 사를 구별하기 위한 그 사람만의 신념이겠거니 하며 일에서 감정을 배제하자는 나와 같은 맥락이겠지 생각하니 이해 못 할 말도 아니었다.
응급실은 대부분 갑작스러운 사고와 불미스러운 일로
사망하게 되는 케이스가 대부분 이다.
즉 누구도 준비하지 못 한 갑작스러운 삶의 끝인 것이다.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된 죽음 앞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던지 간에 그냥 좋은 곳으로 갔으면 하는 한 사람의 바람이 있다면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혹은 누군가의 인생의 끝을 끊임없이 만나야 했던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함 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간호사로 살아왔던 12년 정도의 시간 동안
여러 환자들의 케이스와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났다는 기억도 강렬하지만 지금 가만 생각해 보면 그 시간 동안 내게 남은 것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누군가의 마지막 모습과 이야기들이다.
내가 많은 사람의 죽음을 직접보고 함께 했다는 것..
직업의 특성상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많은 죽음을 목격했지만 그때의 경험과 기억들은 단순히 내게 '사건사고도 많고 사람이 많이 죽었었다' 보다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가 남겨졌다..' 그런 느낌이 더 큰 것 같다. 누군가의 인생의 마지막장에 내가 함께 있었다는 것..
하나하나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여전히 그 순간들이 잊히지 않고,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 그들의 이야기가 어제 일처럼 기억난다.
그분들의 사고경위와 마지막 모습들이 문득문득 떠올라서 예전에는 이것도 일종의 PTSD인가 라는 생각에 괴로울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40이 넘은 지금 이제는 그냥 내 인생의 일부 이야기라고 느끼며 괴롭다기보다 그 기억 또한 버릴 수 없는 나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한 경험과 이야기들이 바탕이 되어 지금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치관과 기준을 만들었고, 또 감사와 행복에 대한 생각을 적립하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무조건 나쁜 것만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게는 그분들의 마지막 장면이 이야기가 되어서 남았고 그 이야기들이 지금의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