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억의 상처에도 새살이 돋을까?

외할머니의 동백나무

by 본조잘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쉽게 꺼내보지 못했다. 아픈 기억일수록 자꾸 꺼내보고 둔감해지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제는 글을 통해 풀어내어 마주해 보려고 한다.

간호사로 한몫을 잘 해낼지 알 수 없었던 나의 그 시절 우리 외할머니는 많이 아프셨다. 이미 예전부터 뇌출혈로 몇 번 쓰러지셨고 그즈음에는 거동도 어렵고 말씀도 하지 못하시던 상태였다. 하지만 나를 보면 항상 웃어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웃음조차도 지어 주실 수 없는 상태가 되셨고 대학병원에서도 더 이상 해 드릴 수 없다는 소견과 함께 어느 작은 병원에 연명치료의 목적으로 입원하시게 되었다.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모시고 가서 마지막을 준비하게 되었다.

의학에서 말하는 해줄 수 없는 것과 가족이 생각하는 해 줄 수 없는 것의 이해는 확연히 다르다. 그때의 가족들은 의학적 소견이 아닌 우리가 끝까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병원에서 근무하던 이모가 소견서와 함께 병원의 양해를 얻고 처방을 받아 수액을 받아왔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23년 전 그때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간호사로서 출발도 하지 못 한 내가 수액을 놔 드려야 했다. 선택이 아니라 그냥 해야만 했다. 문제는 미숙했던 나의 스킬과 많이 약해져 버린 외할머니의 혈관이었다. 성공한 날도 있고 그렇지 못한 날도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마저도 얼마 안 가 시행할 수 없게 되었다.
여름 어느 날인가 집에서 쉬고 있던 내게 걸려온 빨리 외할머니댁에 가보라는 엄마의 다급한 전화에 그 당시 뛰어서 2분도 채 안 걸리던 외할머니댁에 급히 뛰어가서 마주한 모습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호흡을 내뱉고 계시던 외할머니였다.

집에는 외할아버지와 나만 있었고 외할머니의 죽음을 내가 직접 확인해야 했다. 이게 뭐지 싶었지만 "이제 진짜 가버렸다..."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는 외할아버지 말씀에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가장 먼저 기억하는 타인의 죽음이다.

그렇게 장례식을 치르게 되고 입관하던 날을 아직도 나는 잊을 수 없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데 보이던 발등의 보라색 멍자국. 언제 놨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혈관이 터져 다 낫지도 못했던 그 주사자국이 나를 너무 아프게 했다. 많이 아프기만 하셨는데 내가 더 아프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었고 속으로 묻어야 했다. 나의 아픔이 안 그래도 엄마를 잃고 힘든 내 엄마에게 또 다른 아픔으로 전이되는 게 싫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마지막 모습은 한 동안 꿈에도 나오며 내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그러하듯 무뎌진 듯 괜찮아진 듯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둔 채 살아가던 병원에서의 어느 오후였다.
주사를 놓고 돌아서는데 할머니 환자분이 "주사 안 아프게 놔줘서 고마워" 하시는 거다. 그 말 한마디에 조용히 묻어 두었던 그때의 기억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환자를 내 가족처럼"이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어왔지만 한 번도 환자가 가족처럼 느낀 적 없던 내게 적어도 할머니 환자분들이 가족처럼 느껴지고 "할머니 제가 안 아프게 놔드릴게요"하고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말을 건네기 시작했던 게 그때부터 인 것 같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마지막까지 발등에 남아있던 그 상처는 나에게도 낫지 않은 기억이 되어버렸다. 작년 겨울 오래도록 가보지 못했던 외할머니 산소를 수목장으로 옮긴 뒤 뵈러 갔었다. 가는 길 내내
내색은 못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조금만 늦게 아프지.. 나 이제 주사 안 아프게 잘 놔줄 수 있는데.. 그때 너무 아프게 해서 미안해..'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 외할머니는 어느 수목장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곳에 추운 날씨 속 내린 하얀 눈에 뒤덮인 초록초록한 동백나무로 자리하고 계셨다.
사진에 걸려있는 아프기 전 외할머니의 사진 한 장이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싶었던 착각이라 할지라도 그게 나의 자기 합리화라 할지라도 그냥 그 사진을 보며 그렇게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말했었다.
"아프다가만 가셨는데 조금 있음 우리 할머니 예쁘게 동백꽃 피겠네.. 꽃 피면 예쁘겠다.."
이제는 내게 외할머니가 상처로만 기억되지는 않을 것 같다. 상처에서 동백나무가 돋아난 느낌이랄까.

아픈 기억은 끝까지 아프지만은 않다. 시간이 걸릴 뿐
기억 속에서 상처 나고 덧나고를 반복하며 기억의 흉터로 남아 내 일부가 되고 시간이 지난 후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돋아나는 새살이 된다. 나에게는 동백나무가 새살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