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이해하려다 나를 보았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12년이라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그 시간 동안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를 느끼게 해 준 인생에 다시 없을 특별한 경험이었다.
특히 응급실은 특별한 상황 속 환경 때문에 더 그러했던 것 같다.
응급실은 한마디로 '갑자기'다.
무언가 인생에서 예기치 못한 갑작스럽고 급박한 상황에서 가게 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고 정제되지 않은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정말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고 별의별 욕도 다 들어봤다.
'세상에 이런 욕도 있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처음엔 당황했고 상처도 받았고 시간이 흐른 뒤엔 속으로 같이 욕했고
내 안에 사람에 대한 화가 가득했다.
한참 일이 능숙해지고 날아다니던 시절이었다.
저녁 근무 중이었고 다음 밤 근무 인계 준비 때 일이 터졌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퇴근한다는 신나는 마음으로 응급실을 정리하고 환자 정리를 하던 중 간호사 스테이션 바로 정면에 누워 있는 환자 침상에 커튼이 쳐져 있었다. 그 침상에 커튼이 쳐지면 그 옆으로 죽 이어진 다른 모든 침상들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 탓에 커튼을 걷으며 설명을 했다. "죄송한데 이 침상에서 커튼을 다 치시면 옆 쪽 다른 환자들이 보이질 않아서요 인계 하면서 환자를 봐야 하니 좀 불편하시더라도 커튼 좀 걷을게요"라고 설명 후 커튼을 걷었더랬다. 그리고 잠시 다른 침상에 들러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데 아까 그 침상의 보호자가 또다시 커튼을 휙 하고 치는 거다. 한숨이 절로 나왔고 또다시 가서 "커튼 좀 걷을게요"하고 커튼을 걷었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보호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디 싸가지 없이!!!"
'네?? 잉? 뭐라고요?'
그 뒤로 이어진 보호자의 폭언과 이기적인 말들은 정말이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퇴근을 하는데 퇴근하는 것 같지 않았다. 몸은 퇴근 중이지만 내 머릿속은 아직도 응급실에 서서 누군가의 폭언을 듣고 있던 그 순간에 멈춰있었다.
머릿속에는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럴까, 아프면 이기적이어도 되는가,
나는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인가 등등 나를 저 지하로 끌어내리는 생각들만 가득한 채로 집으로 향했다.
그전에도 수많은 일들과 사람들의 예민함 까칠함 속에서 일했지만 그때 그 일이 나에게 트리거가 되었던 것 같다.
사람이 싫어서 도망가고 싶고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직업이 뭘까 고민했다.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그런데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다 '라는 말 자체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병원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직장으로 지원서를 넣었고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울적함과 내 안의 화를 달래고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던 중 즐겨보던 미드에서 나오는 상담사를 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 사람이 이해될까?' 그 단순한 생각에 병원 3교대를 하며 공부할 수 있는 학교와 과를 알아보던 중 어느 사이버대학교에 상담심리학과를 알게 되었고 나는 그렇게 덜컥 편입을 하게 됐다.
해가 가면 갈수록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기심에 지치고 화가 가득 쌓인 나는
'그래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도대체 사람이 왜 그러는지 알아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심리가 궁금해서 호기롭게 시작한 새로운 공부는 2년에 끝나야 했지만 교대 근무를 하면서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고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자퇴를 하기엔 아까웠고 계속 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4년 만에 졸업을 했다.
내가 중간에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타인의 이해가 아니라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예민함, 경계심, 완벽주의 성향 등 내가 '왜' 그러는지가 보였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다. 포기하지 않고 4년을 붙잡고 있었던 이유. 지금 나에게 그 시간은 참 다행스러운 시간이었다.
희한하게도 남을 이해해 보고자 시작했던 그 일은 결국 나를 돌아보고 분석하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래서 모든 일에는 양면이 존재한다고 하는 걸까?
타인의 말에 상처받고 힘들었던 그 시간 덕분에 시작한 공부였는데 오히려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으며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남을 이해해보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알게되었으니 말이다.
그 이후 모든 사람의 행동이
'아 왜 저래!!'가 아니라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됐을까?' 하는 시각으로 보게 됐다.
화가 없어진 건 아니다.
여전히 타인의 무례함과 이기심에 화가 나지만
나를 갉아먹고 소모 시킬 만큼 길게 가진 않는다.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겼달까?
누구도 원해서 그렇게 된 사람은 없다.
태어나 지나온 모든 상황과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나 또한 그러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