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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쥴스 Nov 12. 2021

몸 쪽 꽉 찬 돌직구

나 자신을 믿는다는 것.

 "이 티켓 진짜 어렵게 구한 거야. 한 장에 10만 원이라고!" 

2015년, 남자 친구(현 남편)의 손에 이끌려 '가을야구 직관'이라는 세계를 처음 경험했다.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1,2위를 가르는 코리안시리즈 3차전. 치맥을 먹으며 희희낙락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경기장에 감도는 공기가 무겁고 결연했다. 팬들은 선수들 만큼이나 바싹 각 잡힌 모습으로 응원전을 펼쳤다.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처럼 깃발과 응원도구를 수직으로 높이 치켜들고. 어리벙벙하던 나는 어느새 선배 장수들의 기에 눌려 두산을 목이 찢어져라 외치고 있었다. 그날 경기는 우리가 응원하는 두산 베어스가 승리했다. 


남편은 유년 시절부터 두산 베어스를 응원해온 골수팬 of 골수팬이다. 연애 시작과 동시에 야구 룰이라고는 홈런밖에 모르는 나에게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사 입혔다. 등 뒤에는 '엄마곰'이라는 남사스러운 마킹까지 정성스럽게 박아서. '너도 곧 두산팬이 될 거다.', '평생 나와 같이 야구를 봐야 한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태어날 우리 아기도 두산 팬이 되어야 한다.'라고 끊임없이 나를 세뇌시켰다. 결과적으로 남편의 모든 예언들은 코리안시리즈 경기 직관 한 방이 홈런 타구가 되어 모두 현실로 이루어졌다. 우승하는 팀의 팬이 되어 누리는 대리만족의 뜨거운 맛을 내가 알아버린 거다.  


2021년 현재, 나는 2015년을 시작으로 언 7년 차 두산 베어스 팬. 우리 집엔 늘 야구중계가 백색소음으로 깔려있다. 7년이 자나는 동안 팀을 응원하는 차원을 넘어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를 사랑하게 됐다. 선수의 타고난 피지컬적인 요소가 승패를 가르는 타 스포츠와 달리 야구는 멘털과 지략이 피지컬만큼 중요하다. 점수차가 크게 나도 좌절하기엔 이르다. 야구는 9회 말 2 아웃부터 시작이니까. 마지막까지 결과를 알 수 없다. 야구를 사랑해온 세월 중 변한 게 있다면, 홈런이 빵빵 터지는 타격전에 열광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단 1점도 나지 않는 팽팽한 투수전이 훨씬 더 흥미롭다. 불방망이 타자를 속수무책으로 제압하는 투수에겐 아우라가 있다. '어디 한 번 쳐볼 테면 쳐보라지.'라는 당당함으로 몸 쪽 꽉 찬 돌직구를 밀어 넣는 모습에 전율이 오른다. 

 

승리를 이끈 투수는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제가 제일 잘 던지는 공으로 결과가 어떻게 되든 자신 있게 붙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반면, 패전투수의 피칭은 이와 정반대의 양상이다. 타자의 기세에 눌려 이리저리 도망 다닌다. 볼넷을 주다가 자기 공은 1 구도 던져보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며 마운드에서 내려간다.     

내 강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것. 경기에 임하는 투수, 그리고 각자의 인생을 꾸려나가는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태도이지 않을까. 과거 일이 잘 안 풀리는 때를 되돌아보면 언제나 자신있게 내 공을 던지지 못했다. 주변의 눈치를 보고 못하는 일을 잘하려고 애쓰다가 자신감을 잃었다. 나의 상황이 무언가 잘 못 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인지하면, 마운드 위의 투수를 떠올린다. 지금 나는 나의 공을 던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두산 베어스는 7년 연속 코리안시리즈에 진출했다. 다음주 목요일, 11월 18일 저녁 6시 30분. 2015년 남편의 바람대로 아빠곰, 엄마곰, (뱃속)아기곰이 함께 고척돔에서 가을 야구를 직관한다. 올해는 두산의 승리와 함께 한 가지를 더 소원한다. 곧 태어날 아이가 자신의 공을 신나게 던질 줄 아는 빛나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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