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되고 우아한 '독서 영업서'
나에게 이 책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세련되고 우아한 '독서 영업서'>라고 하고 싶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한적한 동네에 문을 연 평범한 서점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상처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내가 이 책을 독서 영업서라고 평한 첫째 이유는, 책의 물성이 주는 매력과 특징을 잘 그려냈다. 책으로 가득 찬 서점이라는 공간에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단정하고, 진지해진다. 책 속 생면부지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예의를 갖춰서 연대를 맺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건 배경이 서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서점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두 번째 이유, 책의 정신성에 대한 통찰과 해석이 깊이 있다. 서점 주인인 영주가 책의 정신성에 대해 말하는 대사가 많다. 아직 독서의 즐거움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도 독서에 반하게 될만한 말을 한다. 시중의 독서법 책들 처럼, 책 좀 읽어라. 이렇게 읽어라, 저렇게 읽어라. 잔소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도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 책이 줄수 있는 기쁨을 무심한듯 은근하게 보여준다. 내 곁에 소중한 사람 누구에게나 선물하기도 좋은 책이다.
아래 독후감은 크게 책의 효용, 주인공, 작가.
내게 인상 깊게 다가온 3가지 포인트를 기준으로 작성했다.
Point 1. 독서모임을 위한 완전서
신생아를 위한 완전식품이 모유라면, 이 책은 독서모임을 위한 완전서.
그 이유는
첫째. 책린이와 프로독서가 모두에게 유익하다.
쉽게 읽히는 책이라서 독서초보자들이 읽기에 부담이 없다. 내용이 어렵지 않지만,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1) 질문을 던진다. 때문에 독서 수준이 높은 분들이 읽었을 때도 '책이 너무 쉬워서 남는 게 없네.' 하는 허무함이 남지 않는다.
1) 질문 예시
*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성공이 아닌) 내게 맞는 성공은 어떤 모습인가?
* 나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인생을 살고 있는가?
* 내가 놓치고 사는 일상 속 행복은 어떤 게 있을까?
*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작별해야 할 대상(사람, 후회, 상처...)은?
둘째. 독서모임에서만 다룰 수 있는 대화 주제를 총망라했다. (삶의 의미, 성공, 나다움, 욕망... )
친한 친구랑 대낮에 '삶의 의미, 나다움, 불안, 등...' 일상을 벗어난 주제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참가자들은 의미 있고 생산적인 대화에 목이 말라 있다. 독서모임에 찾는 이유가 뭘까? 지금보다 어떤면에서든 조금 더 나은 삶, 나다운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일 터다. 이 책은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보게 해준다.
셋째. 독서모임 브랜딩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휴남동 서점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휴남동 서점에 있는 사람들처럼 나도 위로받고, 치유받고, 성숙해지고 싶을 것이다. 휴남동 서점이 주는 편안함, 포근함을 아는 사람들이 같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면? 모임 중에 참가자들에게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 곳의 느낌을 불러올 것이다. 자연스럽게 모임을 향한 애정이 더 깊어진다.
Point 2. '주인공' 영주와 나의 (소름 끼치는) 교집합 (feat. 불쾌한 골짜기)
누구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저런 면은 나랑 비슷하네, 내 이야기 같아. 격렬하게 공감하면서 스토리 속에 빠져든다. 휴남동 서점 주인공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영주'는 불쾌할 만큼 나와 닮아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집이 쫄딱 망하면서 생긴 트라우마, 회복을 위해 책을 지푸라기처럼 붙잡는 모습, 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는 직업, 모든 게 내 탓이라 자책하는 과한 책임감, 남편과 사회적 성공을 목표로 파트너처럼 함께 달리는 서사, 타인의 사정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오지랖,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일을 크게 벌리고 쫓기는 억척스러움.
한 가지 다른 점은 일단 영주는 나보다 훨씬, 매우, 압도적으로 책에 대한 내공이 깊다.(부럽다.)
Point 3. '작가'를 향한 질투
작가는 독서의 효용과 이점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언어화해서 보여줬다. 상상속에 있던 어떤 형상을 눈앞에 마주한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줬다. 책을 읽으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계속 읽는다. 하지만 그 이유를 나는 작가만큼 설득력 있으면서도 감동적이게 말하지 못한다. 질투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하는데. 나는 지금 작가에게 비빌 깜냥이 못 되는데. 왜 질투를 느끼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 이유는 내가 책을 작가만큼 사랑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