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2014년,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고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했다. 책 속으로 파고들수록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는 가짜 나를 털어내고, 진짜 나를 견고하게 세우고 싶어졌다. 행복을 과장해서 전시하는 내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에고를 분출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오프라인에서 평생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지인과의 얕은 연결은 피로했다. SNS를 하는 것이 잘 못 됐다는 말이 아니다. 플랫폼을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실보다 득이 크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 뿌리가 부실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내 안에 없었기에 외부 자극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타인의 인생을 맥없이 부러워하면서 정작 나는 어디로 가야 할 줄 몰라 동동거렸다. 알맹이 없는 분출 대신, 응축의 시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7년이 흘렀다. 나를 찾기 위해 분투한 시간이었다. 그 사이 3번의 이직을 했다. 하고 싶고,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았다. 호텔리어로 시작했던 커리어는 광고대행사 AE를 거쳐 IT회사 마케터로 자리를 잡았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관성적으로 만나던 관계들과 멀어졌다.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기쁨인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시간을 나눈다. 일, 사랑, 관계. 나를 구성하는 필수 기둥들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렸다.
책에 기대어 지나온 응축의 시간이 단단한 나를 만들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알게 됐다. 이제는 더 넓고 크게, 나와 같은 뜻을 품은 사람들과 연대하며 함께 성장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SNS를 현명하게 '활용'하고, 영악하게 '이용'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작년 5월 7년 만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과거의 나처럼, 자기 다운 삶을 살지 못해 흔들리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졌다. 책을 읽을수록 나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나를 뾰족하게 브랜딩하고 알려야 할 목적과 이유가 생겼다.
내가 원하는 바, 내가 믿는 바를 더 많이 발신한 만큼, 같은 것을 원하고 믿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
<일하는 마음> 제현주
개인의 목표와 꿈을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과 시간을 쏟는 사람들을 찾았다. 얼마 후 <미라클나잍>이라는 커뮤니티에 함께하게 됐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일하고, 퇴근 후 밤 시간에 각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모임이다. 구성원의 직업과 연차는 모두 달랐다. 디자이너, 개발자, 마케터, 기획자, 작가... 나이, 성별, 가치관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책을 읽는다. 그리고 글을 쓴다. 또 한 가지 놀라웠던 건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구성원 모두 '책'만' 읽는 '인풋'의 시간이 많은 것에 조바심을 냈다는 거다. 이들에게 책을 읽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글을 써서 아웃풋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매일 밤, 오늘은 읽는 대신 글을 쓰자며 서로를 격려했다.
읽는 사람은 읽는 사람끼리 어울리면서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다. 쓰는 사람은 쓰는 사람끼리 모여서 더 잘 쓰게 된다. 안 읽고 안 쓰는 사람은 그들끼리 모인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25장 29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있는 그것도 빼앗기리라."
목표와 꿈이 있는 사람은 책을 읽을 가능성이 높다. 꿈을 갖는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궁금한 게 많아지면서 검색을 하게 된다. 검색으로는 피상적이고 일반적인 정보만을 얻을 수 있다. 꿈이 간절할수록, 깊은 정보가 필요해지고 결국엔 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가까이하는 게 도움이 된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주변을 바꿔야 한다. 닮고 싶은 사람을 곁에 두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