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곡을 치다가 재즈피아노

를 배우기 시작했으나 이도저도 못 치는 실력에 대한 변명

by 정이나

나는 취미로 피아노를 친다. 꽤 오래 쳤다. 더이상 배운 지 몇 년 됐냐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왜 대답하고 싶지 않냐면, 연차만큼 '잘' 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다. 동네 학원도 다녀 보고, 혼자서도 해 보고, 중간에 쉬어 보기도 하고, 비싼 선생님을 찾아가 보기도 하고, 온라인 지면 레슨도 받아 보고 여러가지 다 해 봤다. 좀 오래 걸리더라도 곡 하나씩 완성해서 작은 모임에 나가 연주회도 몇 번 했다. 베토벤, 쇼팽, 라흐마니노프, 하이든도 쳐 봤고 했지만 결국 계속 연습하지 않으면 다 잊어 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초견(새 악보를 보자마자 치는 능력)을 잘하냐? 그렇지도 않다. 물론 취미생인 내가 날로 먹으려는 심산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암보까지 해서 연주회에 올렸던 작품만큼은 잊어버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쳤으면 하는 게 바람이었다. 그러나...그것은 불가능했다.


연주회의 긴장감을 잃어버리면, 매일 친다 해도 다른 일들에 밀려 그만큼 집중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인간의 뇌는 우선적인 것들을 먼저 처리하느라 암보 같은 것은 그냥 잊어버리는 게 생존에 유리하겠지 싶다. 그래, 다 좋다 이거다. 내가 젊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밑빠진 독에 물을 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 가자, 체력이 달리기 시작했다. 손가락도 아프고, 페달 밟는 발목도 아프고, 악보의 작은 콩나물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핑계 같지만, 핑계만은 아니다. 게다가 이제 무대에서 친다는 것도 정신적으로 쉽지 않다. 원래 소심한 성격도 한몫을 할 것이겠지만.


완전히 소화했다고 (나름대로) 생각한 곡을 치매환자처럼 하나씩 하나씩 잊어갈 때의 그 허무함과, 새로운 곡을 시작할 때의 막막함 (물론 기대와 흥분도 있다) 그것들을 더이상 감당해 내지 못하겠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틀어 봤다. 바로 실용음악을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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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편집을 하고 취미로 피아노를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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