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독대

by 정이나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나자 나는 집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얼마 안 되었다. 마을 전체가 손바닥만 했다. 길이 500미터 폭 300미터밖에 안 되었으니 말이다. 주변은 온통 논밭이었다. 산이라 할 만한 것은 가까이에 없었다. 동산이면 모를까? 그나마도 아이들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었다. 많이 없앴다고 하지만 전쟁 때 심어놓은 지뢰를 밟을 위험은 언제나 있었다.


‘길이 아닌 곳은 가지도 말라.’


대성동 마을에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었다. 증조할머니도 지뢰를 밟아 돌아가셨다.


오후부터 기분이 별로였다. 거짓말을 한 게 마음에 걸렸다. 마을 아이들 몇이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었다. 아까는 그토록 자신만만했는데… 승기는 아까 나한테 윙크를 하고는 스쿨버스를 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게, 지하실이라면 지하실이지, 뭐.”


나는 발끝으로 돌멩이 하나를 툭툭 차면서 집으로 걸어갔다. 상큼한 꽃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집 마당에 들어섰다.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꼬마동산 위에 냉큼 올라앉아 있는 아름드리나무를 양팔로 안아 보았다. 과연 승기가 좋아할 것 같았다. 집 안에는 들어갈 것도 없었다.


마당을 지나 집 뒤로 좀 더 걸어갔다. 집에서 삼십 걸음도 더 떨어진 곳에 생뚱맞게 무너지다 만 돌담장이 하나 서 있었다. 담장에는 마치 총알구멍처럼 보이는 작은 구멍이 몇 개 뚫려 있었다. 담장 옆에 똑바로 서면 머리 꼭대기만 비죽이 보였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장독 뚜껑이 하나, 둘, 셋, 네 개가 있었다. 뚜껑 하나를 들어 올리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해가 벌써 등 뒤에 있어서 장독 안이 어두컴컴했다. 난 장독 안이 비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보니 독 안에서 서늘한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뚜껑을 다시 닫고 일어섰다.


이 장독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마당에 소금이며 간장을 담아둔 장독은 모두 단단한 땅 위에 서서 펑퍼짐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장독대의 장독들은 땅 위로 주둥이만 쑥 내밀고 있었다. 둥그런 몸체는 땅속에 묻혀 있었다. 왠지 땅이 억센 나무뿌리처럼 장독대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섬뜩했다.


땅에 묻은 장독 속의 음식은 마치 냉장고처럼 김치나 젓갈 같은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장독을 쓰지 않았다. 마당에 몇 개 있는 작은 독에는 오이지를 담아 넣었지만 엄마는 주로 김치냉장고를 썼다.


나는 그전부터 여기에만 오면 한여름에도 스산한 바람에 맞은 듯 목덜미에 소름이 쫙 끼치곤 했다. 귀신이 무서운 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열두 살, 사내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냥, 이곳에 서면 70여 년 전 전쟁 때 피를 흘리며 죽어간 누군가를 상상하게 된다. 이 아래 네 개의 장독 중 하나에 부상자가 숨어들었으리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내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장독이니까 어른이라 해도 무릎만 좀 구부리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장독 깊숙이 뼈다귀 하나쯤 남아 있지 않을까? 물론 직접 들어가서 찾아보진 못했다.


이래 봬도 5학년 생활은 꽤 바쁘다. 저녁 7시면 민정부대가 집으로 와서 집안 식구들이 다 들어왔는지 확인한다. 나는 그 시간 이후로는 나가 돌아다닐 수가 없다. 어른들도 밤 12시가 지나면 집 밖에 나가선 안 된다. 우리 식구는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숙제를 한다. 9시가 되면 할아버지가 불을 꺼 버린다. 그냥 자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낮에는 어떻냐고? 낮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평소에는 이 장독대가 있다는 것도 까먹고 산다. 여긴 그냥… 장독대니까 말이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은가. 그런데 내일은 이곳에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이 장독대 지하 공간에서…. 승기는 날 거짓말쟁이라고 할까? 아니면 이곳에서 함께 상상 속 전쟁놀이를 할 수 있을까.


다음 날 승기는 우리 집에 못 왔다. 부모님께서 허락을 안 해 주셔서다. 승기는 4시 반에 방과 후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는 곧바로 스쿨버스를 타고 파주로 내려간다. 그다음에는 또다시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에 가야 한단다. 승기가 타고 갈 스쿨버스의 시간까지도 정해져 있었다. 일주일이 걸려서야 겨우 승기는 부모님을 설득했다. 방과 후 수업을 하루만 빼고 우리 집에 놀러 올 수 있게 되었다. 그 일주일 동안 우리는 정말 절친한 단짝이 되었다.


오늘은 승기가 오는 날이다. 나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힘들게 우리 집에 놀러 오게 되었는데, 만약에 승기가 실망하면 어쩌지 싶었다. 난 승기를 바라보았다. 승기의 상상력은 일주일 동안 날개에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부풀 대로 부풀었다. 승기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승기의 얼굴은 군인 해골을 본다는 기대에 차서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나는 승기와 어깨동무를 하고 떠들면서 집으로 향했지만 마음속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입술까지 바싹 말라 왔다. 아마 얼굴도 납빛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승기는 나를 보고 웃었다.


승기는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미루나무와 꼬마언덕을 보고 탄성을 지르더니 재빨리 그 위에 올라섰다.


“제군들은 들으라~! 내가 대장이다!”


승기는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나무줄기를 탁탁 쳤다.


“제군! 그래, 해골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

“넵!”


나는 차렷 자세를 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리고 몰래 한숨을 쉬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담장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승기가 뒤따라오면서 물었다.


“어디 가는 거야? 지하실은 집 안에 있는 것 아냐?”


나는 잠자코 걸어갔다. 장독대가 보이는 곳으로 꺾어 들어갔다. 따라오던 승기는 앞서가는 내 앞으로 펼쳐진 황량한 풍경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와, 저 담장, 진짜 전쟁의 폐허 같은데! 너희 집에 이런 곳도 있었냐? 정말 멋지다!”


신나 하는 승기의 모습을 보자 갑자기 자신감이 솟았다. 나는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대고 허리를 굽혔다.


“쉿! 조용히 좀 해. 저 너머에 적군이 있을지 모르니까.”


이번엔 내가 대장이 되었다. 승기가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적의 눈에 띄지 않게 저 담장 안쪽으로 재빠르게 가는 거야. 너는 왼쪽으로, 나는 오른쪽으로! 저 담장 중간에서 만나자.”


우리는 각자 눈에 보이지 않는 긴 총을 장전하고서 잔뜩 구부린 자세로 빠르게 건너갔다. 긴장이 되었다. 저쪽으로 간 뒤, 내가 거짓말한 것을 알면 승기가 나를 쏠까.


승기는 담장에 가 닿은 뒤부터는 갑자기 전쟁 놀이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담장에 난 구멍에 눈을 바짝 대더니 이젠 손가락까지 쑤셔 넣고 있었다. 나는 슬금슬금 다가가서 승기의 얼굴에 선제공격을 했다.


“타타타타타탓!”


나는 큰 소리를 내지 않은 채 침만 튀겨 댔다. 누가 들었다가는 깜짝 놀랄지 모르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비무장지대였다. 승기가 옷소매로 얼굴을 훔치더니 자기도 소리를 내며 침을 튀겨 댔다. 우리는 배가 아플 때까지 웃었다.


승기가 시계를 바라보았다.


“자, 해골 어딨어? 우리 시간 많지 않잖아.”


스쿨버스를 타야 할 시간이 한 시간도 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온 것 좀 더 극적으로 승기를 놀래 주리라. 나는 턱을 까닥하면서 눈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승기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 땅에 뭐라도 있어?”


나는 승기에게 미소를 보내면서 쭈그리고 앉았다. 날마다 열어 보던 장독 뚜껑에 손을 대고서 승기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 안에…, 이 안에!”

“이 안에?”

“그래, 네가 이 뚜껑을 열어 봐.”

“왜?”

“이게 우리 집 지하실이야. 정확히 말하면 지하 공간이지.”


승기가 눈을 크게 뜨고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이 속에 해골이 들어있다고?”


나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승기는 갑자기 내 눈치를 살폈다.


“네가 열어 보지 그래?”

“난 벌써 옛날에 뚜껑을 열고 들어가서 해골을 만져 봤어. 승기, 너, 해골 보고 싶어서 온 것 아냐?”

“그렇긴 하지만….”


나는 승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굳이 장독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돼. 그냥 뚜껑 열고 보기라도 해 봐.”


승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장독 뚜껑을 잡았다. 승기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내 침도 꼴깍 넘어갔다. 승기는 아주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듯 양 팔에 힘을 잔뜩 주더니 드디어! 뚜껑을 들어올렸다.


“자, 안을 들여다 봐!”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이쯤에서 무서워 도망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승기는 뻣뻣한 고개를 가까스로 숙이고 독 안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컴컴한 독 안에 무언가 희끄무레한 것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독 안에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승기의 목덜미에 닭살이 돋은 게 보였다. 나도 허리를 굽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독 안에는 커다란 눈 구멍 두 개가 움푹 팬 진짜 해골이 들어있었다!


“말도 안 돼!”


승기가 눈을 질끈 감더니 외쳤다.


“쨍!”

“으아아아~!!”


장독 뚜껑이 깨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나와 승기는 양팔을 옆구리에 꽉 붙인 채 안마당을 향해 뛰어갔다.


장독대가 보이지 않게 된 다음에야 우리는 숨을 돌렸다. 승기가 내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헉헉… 야, 너 왜 그래? 넌 벌써 해골 만져 보았다며?”

“내가 뭘?”

“얼굴이 파랗게 질렸어.”

“아니야. 아하하하핫! 넌… 어때? 해골을 감상한 기분이?”


승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조금 무섭지만… 최고야! 네 말, 정말이었어! 난 별로 믿지 않았는데 말이야!”


나는 의아했다. 내 말을 믿지 않았는데도 우리 집에 왔다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다. 아까 그건 정말 해골이었을까? 어제만 해도 독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해골 하나가 생기기를 바라면서 일주일 동안 독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하늘이 감동해서 소원이 이루어진 건가? 아니면 그 사이에 오소리라도 들어가 죽었나? 하지만 그렇게 빨리 살점이 썩어서 해골이 됐을 리는 없었다. 나는 왠지 귀신에게 놀아나는 것 같았다.


승기는 흥분해서 계속 떠들어 댔다. 나로서는 어쨌든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아서 좋았다. 학원에 다니느라 바쁜 승기는 아마도 우리 집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이다. 승기를 학교에 다시 데려다주러 집에서 멀리 떨어지자 내 마음도 안정되었다.


‘에이, 우리 둘 다 잘못 본 거겠지.’


승기는 버스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내게 눈을 찡긋했다. 우리 둘은 해골 이야기를 비밀로 하기로 했다. 혹시 어른들이 알면 귀찮아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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