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소녀, 아리>

15 아리의 편지

by 정이나


“퓌이~!”


아리가 휘파람을 불자 야크가 느릿느릿 걸어왔다. 야크가 모여든 곳 주변으로는 나무 말뚝이 박혀 있었고, 아리는 그 말뚝을 끈으로 연결했다. 그러자 멋진 우리가 탄생했다. 야크가 탈출하려고만 하면 언제라도 탈출할 수 있는 아주 허술한 우리였다. 하지만 순하디순한 야크는 반항하지도 않았고, 탈출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먹은 풀을 되새김질할 뿐이었다.


새로 난 새끼 야크가 엄마 젖을 빨았다. 젖을 잔뜩 빨아 먹은 새끼는 우리 밖으로 나가서 팔짝팔짝 뛰어놀았다. 아리는 양철로 만들어진 통을 들고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젖이 불어있는 야크의 목끈을 말뚝에 연결했다. 야크의 젖을 짤 때에는 야크가 조금만 움직여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야크의 목을 꼭 끈으로 매어 놓아야 한다.


야크는 하루 종일 풀을 뜯어 먹고 젖을 만든다. 암야크가 만들어 낸 젖은 한 마리 새끼가 제법 빨아먹고도 많이 남는다. 야크의 불어 있는 젖을 그대로 놔 두면 젖몸살에 걸리기 때문에 새끼를 먹이고 남는 젖은 아리네 가족이 나누어 먹었다. 암놈 야크는 움직이는 우유공장과도 같았다. 그래서 유목인들의 재산 1호는 단연 암야크이다. 반면 수야크는 아기도 낳지 못하고, 우유를 만들어 내지도 못한다. 그래서 대장 야크를 빼고는 덩치가 어미만큼 커지면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지금 젖을 먹고 신나게 뛰어노는 야크도 수야크다. 저 귀여운 녀석도 언젠가는 시장에 팔려 가야 한다. 그리고 내일, 다섯 마리의 야크 중 두 마리가 아리네 가족을 떠나게 된다. 그들은 사람들이 먹는 고기가 될 것이다. 그것은 티베트에서 사는 야크의 숙명이었다.


라싸에 머무는 유목민이 많아 금세 풀이 줄어들었다. 풀이 줄어들면 양과 야크의 먹이가 없어지고, 배고픈 양과 야크는 제멋대로 날뛴다. 그래서 풀이 없다 싶으면 양과 야크를 몰고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야 한다. 주변에 함께 머물렀던 유목민들도 이미 하나둘 짐을 챙겨 떠나고 있었다. 아리네 가족도 내일 라싸를 떠나 북쪽으로 올라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아리네 가족은 양 떼를 몰고 카일라스 아래에 있는 초원으로 갔다. 그 초원에는 이모와 이모부 가족이 양을 몰고 있었다. 아빠와 아리는 엄마와 양 떼를 이모에게 부탁하고 별러 왔던 카일라스 순례를 하기로 했다. 카일라스 순례는 모든 티베트인들의 꿈이었다. 순례를 하자면 또 얼마간 편지를 쓸 수 없었다. 아리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야크 털 카펫 밑에 놓아둔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뭉뚝한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편지를 써 나갔다.


웨이,

내가 전에 했던 말 기억나니? 내 이름을 따 온 ‘아리 지구’에 있는 어머니의 산, 카일라스에 가고 싶다고 했잖아. 올겨울에는 내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아. 아빠와 함께 카일라스에 가려고 하거든! 지팡이 하나에 작은 배낭을 메고 어머니의 산을 만나러 갈 거야. 그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 내 영혼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겠지! 그곳에서 나와 만난 바람은 길고 긴 여행 끝에 내게도 이야기를 전해 줄 거야. 귀를 기울여 봐. 그리고 다음번에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때는 피아노가 서로의 이야기를 대신해 줄 테고.


상하이에서는 어떻게 지내니? 학원에 다니느라 많이 바쁘겠지, 콩쿠르 준비를 하느라 시간에 쫓기겠구나. 하지만 난 알아! 웨이는 언제나 평온한 마음으로 웨이만의 멋진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 거야. 진짜 피아니스트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겠지.

그럼 몸 건강히 잘 지내! 순례에서 돌아와 편지할게.


티베트에서 아리가.



웨이는 편지를 읽으며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아리의 염원이 바람이 되어 상하이까지 불어왔다. 노랑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사람들도 자동차도 바쁘게 지나갔다. 청소차는 길가를 다니며 은행나무를 흔들었다. 청소차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노란 은행잎이 떨어져 내렸고, 나무는 순식간에 벌거벗었다. 자동차 밑에서 기다리던 청소부 아저씨들은 떨어진 낙엽을 바쁘게 쓸어 봉지에 담았다.


웨이가 티베트에서 상하이로 돌아왔을 때, 까마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빌딩은 너무 높고, 자동차는 너무 빠르고, 사람은 너무 많았다. 여유가 없었다. 사람들은 눈을 맞추기가 무섭게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버렸다. 상하이에서는 자신이 내뱉는 말만을 들을 수 있었다.


“다시 티베트로 돌아갈까!”


웨이는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아리와 야크, 양 떼와 알록달록한 색의 전통의상도 그립기만 했다. 티베트 음식점에 가서 차페지아도 마셔 보았지만, 흉내만 냈을 뿐 티베트에서 먹었던 맛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웨이는 드디어 자신의 마음속 티베트를 발견했다. 티베트는 늘 깨어 있으면서 웨이의 마음속을 채워 주었고, 가득 찬 마음은 상하이를 달리 보이게 해 주었다. 흩날리는 낙엽들도,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들도, 밤이 되면 반짝반짝 빛나는 간판들도, 알록달록한 아가씨들의 옷들도 모두 다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오색 타르쵸였다. 빌딩 사이로 흘러나오는 바람에서는 역겨운 기름 냄새 대신에 구수한 야크 똥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방에서 눈을 감고 누우면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별들이 웨이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저 높은 하늘 끝에는 티베트의 영혼, 진정한 행복을 좇는 마음들이 있으니……’


그뿐이 아니었다. 피아노를 칠 때면 티베트의 낡은 레스토랑 앉아 음악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주의 중심 카일라스.

우주의 중심은 어디에나 있었고, 따라서 카일라스도 어디에나 있었다. 웨이의 가슴에도, 지나가는 그 누구의 가슴에도 오색의 신전이 있었다.


웨이는 즐거웠다. 평안했다. 행복했다.


‘옴마니반메훔.’


바람이 아리의 기도를 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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