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예권 리사이틀-팬의 탄생

클래식 피아노

by 정이나

선우예권 리사이틀이 있던 날,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오후에 아예 친정집으로 퇴근을 했다. 같이 공연을 보겠다고 한 엄마는 일찌감치 안 간다고 포기를 하셨고. 엄마는 내가 보내 준 피아노 연주 오디오를 들어보시더니 지루해 하셨기 때문에, 동생이 대신 가기로 하였다. 혹시나 동생도 지루해할까 봐 미리 선우예권이 연주할 곡들 연주를 유튜브에서 찾아서 일일이 소개해 주었다.


드디어 엄마 집에서 세 모녀 상봉! 엄마는 동생과 이미 낮데이트를 해서 기분이 좋아져 계셨고, 퇴근한 아빠와 함께 오랜만에 넷이 식사를 했다. 두 딸들이 시집간다고 집을 나간지 어언 16년!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식사 후 느긋하게 한담을 나누다 공연시작 40분 전에 집을 나갔다. 공연장은 집에서 걸어서 5분! 차를 주차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나는 공연장에 갈 때마다 먼저 화장실에 다녀온 뒤에 복도에 앉아서 공연직전까지 기다리곤 한다. 미리 들어가봐야 답답하니까. 그런데 동생이 얼른 먼저 들어가자고 했다. 클래식 공연 보러 첨 온 동생은 무척 설레했다. 다행이었다.


들어가서 앉으니 공연장 규모가 좀 작게 느껴졌다. 2층이라서 그랬을까? 하지만 피아노는 잘 보였다. 선우예권 얼굴도, 손가락도 잘 보이는 위치였다. 그런데 눈이 안 좋아서 표정까지는 잘 안보였는데, 동생은 선우예권 님 양 귀가 빨개진 것까지 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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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공연시작 전 5분 전인가, 이상하게 별로 설레지가 않았다. 나이 들어서 그런가? 그런데 피아노를 바라본 순간, 갑자기 설레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저 피아노는 어떤 소리가 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번 설레기 시작한 가슴은 곧 선우예권을 본다는 기대감에 더욱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 공연을 앞둔 듯이 긴장이 되고 입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한 건 무슨 조화인지?


드디어 피아니스트가 나오고 의자에 앉았다.


기대하던 '왼손을 위한 샤콘느 d단조!'


유튜브에서 Daniil Trofonov의 연주를 찾아 들었을 때,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 손으로 어떻게 저리 잘 칠 수 있느냐는 감탄과 함께, 오른손으로 피아노를 잡고 열정적으로 치는 모습이 너무나 멋졌었다.


그런데 선우예권 님은 아예 오른손을 등 뒤에 돌리고 쳐 버리셨다! 우아~~ 내 눈이 잘 안 보여서 땀도 안 흘리나 봐 했더니, 언제쯤인가 오른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런데 난 계속 목이 마르고 목이 간질간질하고 눈이 부셨다. 그 점도 음악 감상에 방해 요소였는데, 더 큰 요소가 있었으니, 내 옆자리는 비었는데 그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코를 훌쩍이고 좌석을 발로 차 댄 점이다.물론 이해는 한다. 아주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일 것이다. 나는 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며 연주에 집중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그런데 동생은 정말 빠져들듯이 공연을 보는 것이었다. 오, 다행이야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집중력이 얕은가 하고 자책했다. 조금만 집중하지 않으면 금세 딴 생각을 하게 되니까 말이다.


어쨌든 '왼손을 위한 샤콘느 d단조!'가 끝나고, 피아니스트는 잠시 퇴장했다. 이어서 칠 줄 알았는데, 퇴장해 주시니 그동안 사람들은 참고있던 기침을 마음껏 했다.


다음으로 '건반을 위한 파르티타 2번 c단조'


유튜브에서 아르헤리치 연주를 진짜 잘 봤기에 역시나 기대가 되었다. 흑흑 역시 바흐야. 정연하고도 아름다운 곡! 선우예권님 연주 역시 이번 연습이 끝나면 바흐 곡을 치고 싶게 만드는 멋진 파르티타 연주였다. 당연히 난 못 치겠지 싶었다.


인터미션 시간.


난 기지개를 켜며 엉덩이 쉬러 밖에 나가서 쉬어야한다고 하고선, 동생과 함께 나와 화장실부터 달려갔다. 동생은 아까 화장실 갔는데 뭐하러 또 가냐고 했다. 아! 3살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인가? ㅎㅎ


내겐 연주시간이 짧지 않았는데, 동생은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선우예권 팬 됐다며 흥분하며 말했다! 어쩜 그렇게 잘생기고 잘치고 멋있을까? 동생은 선우예권님이 피아노 치면서 머리흔드는 것, 땀 훔치는 것, 입고 있는 자켓 자락을 뒤로 날리는 것 모두에 빠져 버렸다. 그리고 한손으로 치는데 열손가락으로 치는 것 같다며 좋아했으니, 오늘, 선우예권 새로운 팬이 탄생해 버렸다!


2부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쇼팽주제에 의한 변주곡'의 길이는 무척 길었으나, 1부 연주에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빨리 지나갔다. 이 변주곡들이 무척 좋아서 그런 듯했다. 실제로 집에서 들을 때도 '코렐리'를 가장 많이 들었다. 뭔가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변주곡이니까. 어쩌다 연말연주회 곡으로 하이든 변주곡을 연습하게 됐는데, 운명인지, 이번 선우예권 연주회에서 변주곡을 두 곡이나 듣게 되었다. 변주곡이라고는 모차르트 변주곡밖에 모르다 한꺼번이 이런 대곡들을 마주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다.


미리 검색해본 바, 앵콜곡을 3곡 한다고 해서 기대하고 갔는데, 2곡만 들을 수 있었다. 하나는 라흐 프렐류드이고 하나는 기억이 안 난다. 사실 앵콜 후에 얼른 가서 사인을 받아야했기에, 정신이 딴 데 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중에 씩씩한 10살짜리 아이의 당찬 연주도 하나 들었다. 선우예권 님이 씩씩하게 답하는 남자아이 하나를 무대에 올려 다같이 아이의 연주를 듣는 이벤트가 있었다.


연주가 끝난 뒤 우리는 2층이라 1층까지 쏜살같이 내려갔으나, 가 보니 이미 줄이 길었다. 원래 2군데에 사인을 받고 싶었던 나는 하나를 동생한테 부탁했었는데, 이미 동생이 팬이 된 마당에 내 거를 부탁할 수가 없었다.


결국 동생도 프로그램표에 자신을 위한 사인을 받기로 하고, 나는 사인받을 악보랑, 시디 두 개를 내밀었다. 혹시 안 되면 악보에만 받아야지 생각했다. 먼저 악보에 사인해 주시고, 그 다음 시디에 사인해 주셨는데, 시디가 내 다음 사람 것인 줄 알고 그쪽으로 내미셨다. 그 사람이 자기 거 아니라고 하자, 어리둥절해하며 잠시 나를 쳐다봐 준 선우예권 님! 나는 수줍게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냉큼 시디를 챙겼다. 얼떨결에 두 개 받기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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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넘 많아서 내 이름이 들어간 사인은 못 받고, 사진도 어린아이들만 찍어주었으니, 나는 멀리서 사진 찍기만 했는데, 그래도 너무 좋았다. 사실 사인받는 거 평생 첨 해봤다!


쌀쌀한 밤길에 얼른 친정집에 돌아와서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갔다. 담날 일찍 출근하셔야 하는 아빠는 거실에서 주무시고 계셨고, 나랑 동생도 조용히 살짝 씻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다음에는 서로의 흥분을 카톡으로 주고받았다. ㅋㅋ '잠이 안 올 거 같아'어쩌고 하면서. 십 대 소녀시절로 돌아간 듯, 나는 프로그램표랑, 사인받은 악보와 시디, 그리고 찍은 사진들을 계속해서 바라보면서 좋아했다. 한참 그러다 다음날을 위해서 불끄고 잘 때 뭔가 넘나 아쉬웠다.


다음날 집에 돌아와서 틈틈히 그때의 흔적들을 즐기며 CD에 들어있던 포토 뒷면에 쓰인 선우예권님의 글을 가만히 읽어보기도 했다. 얼마전 나도 통영에 다녀왔는데, 통영에서 이 CD를 녹음했던 예권님의 글귀가 그래서인지 더 와닿았다. '최대한으로 더 끌어올릴 수 있기를...' 나도 역시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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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 나서 옛날 일기를 올려 본다.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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