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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Sep 06. 2020

조금은 천천히 익숙해지고 싶다

초보운전자의 단상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장롱면허는 '운전면허를 딴 후 오랫동안 운전을 하지 아니한 사람의 면허증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속되기 까지 한 줄은 몰랐기에 검색한 순간 괜스레 씁쓸해졌다. 장롱 속 나의 면허증에 켜켜이 올라앉은 먼지는 무려 8년 전부터 쌓여있었다.



비온 뒤 촉촉한 길을 걷네


2012년 여름,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 나 스스로 운전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진 못했지만 대학 졸업 전에 무조건 면허를 따두어야 한다고 주변 사람들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물 면허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면허를 따기 쉬울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지각 능력이 떨어지는 나는 한 번의 고배를 마신 후 다시 도전해 가까스로 70점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 그 날 이후 운전과는 담을 쌓고 살았고 이대로 운전 한번 하지 않고 면허증을 갱신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성이 김 씨인 것도 한몫했지만 '김여사'라는 단어는 늘 남일 같지 않았다. 온통 빵빵거리는 차들로 가득한 도로에 나서는 게 무서워서, 그리고 김여사가 될까 걱정돼서 운전을 미루고 또 미뤄왔다.






사실 그동안은 운전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기도 했다. 이사를 여러 번 했지만 모두 대도시였기 때문에 버스나 지하철만 타도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덕분에 운전할 필요가 없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면허증을 장롱 안으로, 더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강릉으로 이사를 오니 대중교통만으로 다니기엔 한계가 있었다. '너도 운전해야지'라는 공격을 더 이상 '여기선 운전할 필요가 없어'라는 방패로 막을 수 없어졌다. 처음 얼마간은 똥고집을 부리며 편도 40분 거리도 걸어가고, 더운 여름 왕복 두 시간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했다. 가고 싶은 곳은 너무 많은데 갈 수가 없었다. 차로 10분이면 갈 거리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1시간 이상은 기본이었다. 자타공인 지독한 밖순이인 나는 결국 백기를 들고 운전대를 잡았다.



어른이 보호구역은 없나요


처음 운전한 날은 운전대를 너무 꽉 잡은 나머지 밤에 어깨에 통증이 올 정도였다. 한 여름에도 선풍기를 안 켜는 내가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손에 땀이 줄줄 났다. 왜 김여사들이 장갑을 끼는지 비로소 깨달은 순간이었다.


8년 만에 제대로 앉아본 운전석은 익숙하지 않은 것 투성이었고, 차가 상처 투성이가 되는 데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수석에 앉는 것이 몸에 익어서 자꾸 안전벨트를 오른쪽에서 찾았다. 쨍쨍한 날 와이퍼가 작동하는 것은 예삿일이고, 차키를 안 뽑고 그냥 내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하루는 시동이 안 걸려서 차가 고장이 난 것 같다고 허둥지둥 전화를 했는데, 알고 보니 기어를 드라이브에 두고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차선 변경을 못해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까지 갈 뻔 한 날도 있었다. 마치 초보 운전자가 하는 실수들은 모조리 섭렵하려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었다. 평생 뚜벅이로 살다 보니 차를 타고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짐의 무게에서 자유로워졌다. 가방에 항상 책과 다이어리, 카메라 같은 짐을 많이 넣어 다녔기에 뚜벅이 시절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늘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그런데 차로 다니면 짐이 아무리 많아도 그냥 조수석이나 뒷자리에 툭 던져 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날씨의 영향도 덜 받게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의 외출이 자유로워졌다. (물론 앞이 안보이거나 침수가 될 정도로 많이 오는 날은 정말 무섭지만) 무더운 날도 티셔츠가 땀에 젖지 않게 되었다. 추운 날이 오면 엉따도 켤 수 있고 매서운 바람도 막아주겠지.


주변의 작은 양보와 도움의 손길에도 감사했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내가 차선을 변경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주변의 운전자들도 고마웠고, 도움을 청하면 주차하거나 차 빼는 것을 지켜봐 주는 사람들도 눈물 나게 고마웠다. 제주도 보복운전 사건 생각나서 무서움도 있었는데 다행히 지금까지는 좋은 운전자들만 만났다.


혼자만의 소소한 기쁨도 느꼈다. 매번 이리저리 왔다 갔다 몇 번을 하고서야 주차를 하는데 어쩌다 운 좋게 후진 한 번만에 주차를 했을 때, 아무도 봐주는 사람 없지만 스스로 대견함과 뿌듯함에 웃음이 나왔다. 회전교차로를 무사히 빠져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양 옆에 차들이 빼곡히 주차된 좁은 골목을 막 빠져나왔을 땐, 마치 올림픽 경기의 결승선이라도 넘은 듯했다.



삶에도 누가 신호를 줬으면


그렇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났다. 늘 잔뜩 긴장해있던 어깨와 팔도 조금은 느슨해지고, 가끔 필요시엔 핸들을 한 손으로 잡을 수도 있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해야 했던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을 느꼈다. 주차를 할 때 핸들을 이쪽으로 돌렸다 저쪽으로 돌렸다 하는 것 말이다. 내비게이션 앱을 봐야만 갈 수 있던 길도 이제는 앱을 보지 않아도 당연하다는 듯이 다니게 되었다. 소소한 기쁨과 감사함도 처음보다 줄었다. 운전석의 모든 것이 전보다 익숙하다고 느껴진 어느 날, 문득 조금은 천천히 익숙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에 익숙해지면 그것은 어느새 당연해지고, 감사함과 소중함이라는 단어는 멀어진다. 이제는 공기처럼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주변의 것들이 떠올랐다. 공기만 해도 그렇다. '공기처럼 익숙하다'말마저도 익숙한데 공기가 없어진다면 우리는 단 몇 분도 살아갈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늘 잊고 지낸다.


취준생일 때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읽었다. 평생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헬렌 켈러가 50대가 되어 딱 3일만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떨지 가정하고 쓴 에세이이다. 취준 생활에 찌들어있던 내가 단지 두 눈으로 앞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사실 이런 깨달음은 오래가지 않곤 했다. 늘 담뿍 젖어있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쉬웠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랬다. 모든 게 돌아가기 쉬운 당연한 일상이었다.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것도, 주말이면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것도. 가끔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도.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담뿍 젖어있던 일상일지라도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 무엇이든 늘 곁에 있을 때는 감사함과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앞으로 미래에는 또 어떤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지 않게 될까.


당연했던 햇살, 바람 그리고 커피


비단 환경이나 일상뿐만 아니라 늘 내 곁에 있을 것만 같은 부모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을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도 언젠가는 내 곁에 있는 게 당연하지 않게 되겠지. 이제 하루에 다만 한 가지라도 일상에서 만나는 익숙한 것들을 처음인 것처럼 혹은 마지막일 것처럼 느끼고 감사하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태풍이 지나간 뒤 찾아온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감사하다. 저녁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한 통 드려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어차피 운전을 잘하지 못하는 초보운전자변명 같기도 하지만 운전도 너무 빨리 익숙해지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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