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어린 시절 무엇이 떠오르나요?

by 나온

100개의 질문, 100번의 생각

질문 5. 내 기억 속의 어린 시절(초등학생 or 국민학생 이하) 무엇이 떠오르나요?

3개(이상)씩 얘기해 주세요.

당신이 품고 있는 어린이를 살짝 불러오세요.



1. 할머니

'어린 시절'하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은 단연 할머니예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할머니랑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나를 '똥강생이'라고 부르며 엄청 좋아하셨어요. 할머니는 늘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어요. 개구쟁이였던 나는 할머니가 옆으로 돌아누워 주무실 때 비녀를 쏙 빼곤 했어요. 하얗게 새어버린 긴 머리를 돌돌감아 비녀를 끼우는 모습이 신기했거든요.


영화 '집으로'에서 할머니가 바가지를 대고 주인공의 머리를 자르는 장면이 낯설지 않았어요. 우리 할머니도 바가지를 대고 나의 머리를 잘라주셨거든요. 어릴 땐 그래서 남자아이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또래 여자아이들은 예쁘게 머리 길러서 땋고 다녔는데 나는 늘 바가지 머리를 찰랑거리며 다녔죠.


할머니가 해주던 간식들이 먹고 싶어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냄비에 감자를 삶아주셨어요. 냄비에 눌어붙어 딱딱해진 부분을 좋아해서 늘 그 부분 먼저 떼어먹곤 했어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에 설탕을 비벼먹으면 그것만큼 맛있는 간식이 없었어요. 여름이면 냉면그릇에 얼음을 동동 띄워 미숫가루를 타 주셨어요. 일자로 펴졌을 정도로 오래된 숟가락으로 미숫가루를 저어 주셨는데, 아직까지도 그만큼 맛있는 미숫가루 맛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할머니는 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할매손이 약손이다'라고 주문(?)을 외우면서 배를 문질러 주셨어요. 그럼 신기하게도 배가 안 아프고, 스르륵 잠이 들곤 했어요. 할머니 손은 진짜 약손이었나 봐요.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만큼 힘들었던 시기에 나는 할머니가 너무 그리웠어요. '할머니 약손으로 문질러주면 나 괜찮아질까?'


궁둥이를 팡팡하며 '똥강생이'라고 부르던 할머니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해요.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너무 보고 싶다.


2. 초등학교 운동장과 문방구

학교 운동장과 문방구가 정말 최고의 놀이터였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이를 할 때면 해가 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어요. 운동장 스탠드와 정글짐을 오르락내리락하고, 그네는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 평행봉은 누가 더 잘하나 대결했지요. 땅따먹기는 물론이고, 술래잡기, 얼음땡, 고무줄놀이, 실뜨기, 살구(공기놀이)까지. 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빼놓을 수 없어요. 색종이를 접어서 '동서남북'도 하고 놀았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놀거리가 정말 많았네요. 에버랜드 하나도 안 부럽다!


문방구는 모든 아이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한 곳이었어요. 단지 학용품과 준비물을 사는 곳이 아니었어요. 친구들과 만남의 광장이었죠. 게다가 학교 앞에 문구점이 3개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각각 타겟 고객이 달랐어요. 한 곳은 예쁜 문구를 많이 팔아서 여자 아이들이 늘 바글바글 했고, 다른 곳은 학교 준비물이 제일 잘 갖춰져 있었고, 마지막 한 곳은 앞에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어요. 나는 늘 예쁜 문구가 많은 '똘똘이 문방구'에서 아이쇼핑을 하곤 했어요.


코 묻은 돈을 모았다가, 불량식품이나 장난감을 사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었어요. 아폴로, 꾀돌이, 밭두렁과 쫀듸기 이런 거요. 불판에 구워주는 작은 소시지도 맛있었어요. 올챙이탄(?)이나 본드풍선 이런 것도 자주 샀던 기억이에요! 어린 기억 속 초등학교 운동장과 문방구는 엄청 컸는데, 조금 자란 후에 가보니 정말 조그마해서 놀랐어요. 다음번에 고향에 내려가면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보고 싶어 졌어요.


3. 만화책/비디오 대여점과 카세트테이프

언니들과 터울이 8살, 4살 차이가 나서 일찍부터 만화책과 비디오를 보기 시작했어요. 언니와 손을 잡고 동네 비디오/만화책 대여점에 가서 엄청 빌려다 봤어요. 제일 좋아했던 비디오는 '하하호호 아줌마', '모래요정 바람돌이', '짱구는 못 말려'같은 만화였어요. 최신 프로, 신프로, 구프로 이렇게 나눠져 있었는데 2박 3일 단위로 빌려보고 반납하고 그랬던 기억이에요. 만화도 '짱구는 못말려'부터 시작해서 언니들이 빌려온 순정만화도 읽었어요. 이제 비디오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지만, 그때는 정말 비디오 보는 게 큰 즐거움이었어요. 지금 다시 생각만 해도 즐거워지네요.


큰 언니가 서태지에 빠져서 집에 서태지 테이프가 엄청 많았어요. 그때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노래였지만 언니들이 들을 때부터 같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HOT가 나왔고 장우혁의 팬이 되었죠. 조성모 테이프도 많았어요. 시간이 흘러 god의 육아일기를 보며 fan god로 갈아탔었고요. 이제 보니 완전 잡팬이었네요 하하. 언젠가 엄마가 서랍 가득한 테이프들을 보며, 듣지도 않는 거 버리라고 해서 다 버렸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아까워요.




추억여행에서 돌아오니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졌어요. 아쉽게도 제일 보고 싶은 우리 할머니는 볼 수 없지만, 고향집에 내려가면 할머니와 찍힌 사진 앨범을 보고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가볼래요.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90년대 음악을 들으면서 말이에요. 즐거운 추억 여행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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