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질문, 100번의 생각
질문 12. 당신에겐 타임머신이 있어요. 과거에 한 번 다녀올 수 있습니다. 언제로 가고 싶나요? 왜 그때인가요? 가서 뭘 하고 싶나요?
2011년으로 다녀오고 싶어요. 그 시절의 때 묻지 않은 나로 돌아가서 다시 그때처럼 즐겁게 여행하며 다양한 인연들을 만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순수하게 지금 서있는 그곳에서 온전히 행복했던 나로. 사람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던 나로.
사실 질문을 보고 2012년에 떠났던 인도로 다녀올까 살짝 고민했지만, 2011년으로 택한 이유는 스마트폰이 없었던 여행이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구글맵이 모든 것을 알려주지만, 그때는 종이지도가 다 해질 때까지 들고 다니면서 여행했거든요. 아날로그 여행이 그리워요.
지금도 성격이 엄청 밝은 편이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해피 바이러스가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교환학생 때 옆집에 살던 러시아 친구는 좀 우울감을 잘 느끼는 아이였는데, 정말 진지하게 저에게 묻곤 했어요.
"Why are you so happy??"
그렇게 활기찬 성격 탓에 여행하다 틈만 나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곤 했어요. 그 해에 혼자서 총 두 달 정도 유럽 몇 개국을 여행했는데,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한국인 아내가 있는 더블린의 서브웨이 점원 Felipe는 한국인 여행자인 내가 반갑다며 더블린 시내에 갈만한 곳을 안내해줬어요. 가난한 학생이었던 저에게 스타벅스 커피와 케이크도 대접해줬지요. 골웨이행 버스를 타러 가면서 인사차 들렀더니 버스에서 배고플 때 먹으라며 샌드위치와 쿠키를 잔뜩 포장해주기도 했어요.
마드리드행 비행기에서 만나서 친해진 스페인 친구 Paula와 그녀의 남자 친구는 저를 마드리드 최고의 타파스 집에 데려가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대접해줬어요. 가이드북에는 나와있지 않은 현지인 맛집이었죠. 더치페이 하자는 내게 다음에 본인들이 한국에 놀러 가면 한잔 사라며 윙크를 날리는 고마운 친구들.
그라나다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인연, 시크한 언니 Y는 나를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 데려가 주었어요. 언니의 캐리어에 소중히 간직하던 컵라면도 나눠먹었죠. 한국에 돌아와서도 연락을 하고 지냈고, 1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물러터진 나에게 늘 따끔한 충고를 해주는 인생 선배가 되었어요.
톨레도에서 만난 인연, M 언니는 후에 바르셀로나에서도 다시 만났죠. 시장에서 체리와 츄러스도 사주고, 샹그리아가 맛있었던 레스토랑에도 함께 갔죠. 일 년 후 서울로 면접 보러 온 나에게 편히 지내다 가라며 기꺼이 방 한 칸을 내어주고 밥도 사주며 가족처럼 응원해주었어요.
여기에 적은 인연들 말고도 정말 여행하는 도시와 장소마다 너무 감사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고,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2011년 그해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한 모든 여행에서 말이에요.
물론 나는 지금도 여행이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잘 걸긴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사람에 치이면서 이제는 누군가를 새로 사귄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조금 꺼려지기도 하고 귀찮을 때도 있더라고요. 누군가 친절히 다가오면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이러지?', '무슨 의도가 있는 거지?' 하면서 의심할 때도 있고요.
그래서 나는 2011년 때 묻지 않은 그때로 돌아가 다시 그때처럼 여행하고, 의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소중한 인연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