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불운의 사나이, 훈이 형님

보니와 조의 지구한바퀴, 우리가 만난 사람들

by Bonnie

훈이 형님은 전직 배구선수, 키가 190cm이다.

훈이 형님 말씀으로는 191cm였으면 아주 난감했을 거라고 한다. 왜냐하면 전 세계 대부분의 침대 길이가 190cm여서란다. 가끔 침대에 누워있는 훈이 형님을 보면 그 말이 생각나서 피식 웃게 된다. 정말 침대 머리에 형님 머리를 딱 붙여야지 발끝이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훈이 형님을 세부에서 만났다.

세계일주를 떠난 첫날 아침, 어학원 식당에서, 키가 큰 중년의 남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새로 오셨나봐요. 환전하러 같이 가실래요?' 이게 우리의 첫인사였다. 나는 솔직히 어딘가 이상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머리는 빡빡 밀었지, 키는 190cm이지, 말할 때 눈은 동그랗게 뜨지, 이건 아무리 봐도 정상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훈이 형님이 3년 동안의 세계일주를 계획하고 있고, 그 첫 도시가 세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상황은 급 반전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첫인상과 달리 너무나도 정상인 분이셨고...

세계일주 첫 도시가 같다 보니 훈이 형님과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인도네시아를 같이 여행했고 아프리카, 중미를 같이 여행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세계일주의 3분의 1 정도를 훈이 형님과 함께 한 셈.


훈이 형님은 대학 배구부였다. 그때는 체육학과가 없을 때라 본인이 원하는 과를 정할 수가 있었단다. 형님은 경영학과를 선택하셨고 졸업장에는 XX대 경영학과가 선명하게 박혀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졸업장으로 작은 운송회사에 취직하셨고, 그 첫 직장을 20년 넘게 다니셨다고 한다. 이어지는 뻔한 스토리, 형님은 이 회사에 이십여 년을 몸 바쳐 일했으나 악덕한 사장으로 인해 모든 전의를 상실하셨다. 그런데 때마침 야금야금 투자해둔 주식이 200% 성장하는 기적 같은 일이 터진 것! 그리하여 회사를 떼려 치고 국토종단을 시작했다. 고생하는 게 좋은 여행인 줄 착각하고 배낭을 메고 거지 같은 무전여행을 하셨단다. 결국 남은 건 상한 발목, 하지만 그 경험을 발판으로 그래 까짓 거 세계일주도 한번 가보자! 이런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고...

항상 가족을 위해 살고, 나에게는 투자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던 노총각 훈이 형님은 이제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 거라고 했다.


첫 해외여행, 모든 게 처음이라 다 신기하고 즐겁다는 유쾌한 훈이 형님, 이렇게 행복한 상황이건만 훈이형님에겐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바로 남들에겐 평생 한번 일어날까 말까한일이 훈이형님에겐 자주 일어난 다는 것! 일상이 시트콤, 블랙 코미디인 것이었다.


2박 3일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러 가겠다며 나서시더니 반나절 만에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셨다. 수영장 교육을 마치고, 장비를 차고 바다 입수를 하러 가는 길, 콘크리트 맨홀이 무너지면서 그 아래로 몸이 떨어진 것, 불행 중 다행으로 산소탱크 때문에 상반신이 걸려 바닥까지 떨어지진 않았다. 대신 다리엔 긁힌 상처들이 엉망, 가슴이 아파서 갈비뼈에 금이 간 건 아닐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큰 고비를 넘기자 다들 웃음이 터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 두꺼운 콘크리트 맨홀이, 왜 하필 거기! 그 자리! 에서 무너지냔 말이다.

이때 알아챘어야 하는데,, 훈이 형님은 0.1%의 사나이라는 걸,,

그 후로도 훈이 형님이 어딘가에 발이 빠져서 허우적 댄다거나 [분명 다 같이 걷고 있었지만,,] 훈이 형님 것만 없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비일비재해서 심심해질 만하면 웃을 거리를 주셨다. 그래도 그때마다 허허 웃으시며 '내가 그렇지 뭐-' 머리 몇 번 긁적긁적하면 끝이다. 훈이 형님의 에피소드는 너무 많아서 하나씩 하나씩 공개될 예정이다.


형님은 아직도 길 위에 계시다, 올해 5월이면 한국에 들어오실 텐데,, 형님의 여행기가 벌써부터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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