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와 조의 지구한바퀴, 우리가 만난 사람들
여행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들리게 되는 도시들이 있다.
너무 먼 도시로 한 번에 갈 수 없어서 하루 묵어가는, 그런 도시.
바고는 그런 도시였다. 짜익티요에서 껄러로 한 번에 갈 수가 없어서 하루 묵어야 하는 곳.
짜익티요에서 출발한 낡은 버스는 우리를 길거리 한가운데 내려줬다. 여기가 바고란다.
황당했지만 믿는 수밖에... 배낭을 내리고 미리 알아봐 둔 숙소를 찾아보니 1km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15kg, 20kg 되는 배낭을 지고 1km를 걷는 건 쉽지 않다. 지나가는 툭툭 기사에게 호텔을 보여주니 다행히 아는 곳이다. 그런데 툭툭 기사가 우리에게 '너희 껄러간다며 버스 티켓 먼저 사야 하지 않니?' 한다. 똑똑한데- 하긴 이 동네 오는 외국인들은 다들 그 이유로 왔겠지. 그런데 버스 티켓 오피스라며 내려주는 곳이 선술집이다. 황당해하고 있는데 론지를 입은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너네 어디 가니?'
'XX 호텔로 가.'
'거긴 왜?'
'아- 내일 껄러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거든,, 그래서 하루 묵어야 해'
'껄러로 가는 버스는 오늘 저녁에 있는데? 왜 굳이 하루 묵으려고 해?! 여긴 반나절이면 돌아보는 도시야. 게다가 너네가 가려는 숙소는 도로변이라 무지 시끄러워. 게다가 내일 체크아웃하면 뭐할 건데? 아무것도 볼 것 없는 도시에서? 버스는 무조건 저녁에 한대라고.. 그냥 여기서 조금 기다렸다가 오늘 저녁 버스 타고 가-'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것 없는 도시에서, 내일 저녁까지, 무려 30시간을 꼼짝없이 낭비하게 생긴 것이다.
그제야 자기는 버스 티켓 판매원이라며 활짝 웃는다.
아하- 싶었지만 이 아저씨의 상술은 남달랐다. 근거 없는 꼬드김이 아니었다. 활짝 웃는 모습에도 여유가 넘쳤다. 결국 우리는 저녁 버스 티켓을 샀고 그 선술집에 눌러앉아 여유롭게 미얀마 맥주를 주문했다. 자연스럽게 아저씨도 우리 옆에 앉는다. 소개가 오간다. 아저씨 이름은 코피오. 버스 티켓 판매원이고, 이 선술집이 자기 사무실이란다. 서빙이나 테이블을 닦아주는 대신 여기서 버스 티켓을 팔 수 있게 해 준다고...
맥주를 두병째 마셔갈때즘엔 선술집 아저씨들 모두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작은 마을에 이방인 부부가 떨어진 것이다. 또 코피오는 이 작은 마을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유일한 난 놈이었다.
난 놈과 이방인들의 대화, 마을 남자들에겐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코피오는 오래전 아일랜드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결혼을 했고 아일랜드로 가서 살기 시작했다. 아들도 태어났다. 그렇지만 이방인 코피오는 아일랜드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집에만 갇혀있는 삶은 그를 지치게 했고 코피오는 다시 미얀마의 고향마을로 돌아와서 버스 티켓 판매원을 하고 있다. 마음이 이상했다. 코피오는 지금 행복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코피오가, 너네 시간 너무 많이 남았다. 바고 투어 한번 할래? 오토바이로 하는 거고 어쩌고.. 한다. '아니 괜찮아' 라고 했는데, 옆에서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아저씨를 가리키며 '이 친구 도와주는 셈 치고 한번 해봐- 너네가 너무 싫으면 어쩔 수 없는데 얘가 너무 간절해서 나도 눈치가 좀 보이네'라며 허허 웃는다. 투어 가격도 저렴하고, 그래 이 선술집에서만 6시간은 너무 지겹겠다 싶어서 일일 투어를 다녀왔다.
바고의 유명한 수도원도 가고, 조서방이 노래 부르던 두리안도 한통 사 먹고, 발바닥이 크은 와불상도 보고, 크은 뱀을 모시는 사원에도 가보고, 우리 가이드 아저씨의 집에도 들렀다. 집이라고 부르기가 무색한 판잣집에 어머니, 아내, 어린 딸이 있었다. 딸이 많이 아픈데 병원을 못 데리고 가고 있다며 딸을 보여준다. 너무 작은 아기인데 따끈따끈 열이 나고 퉁퉁 부어있었다. 정말 아파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 '너네가 버스 타고 가는 것만 아니면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가면 좋은데...'라고 하신다.
헷갈린다. 이 아저씨는 돈을 바라고 우리에게 집과 가족을 보여준 걸까, 아니면 오늘의 땟거리라도 해결할 수 있게 해 준 우리가 고마웠던 것일까... 코피오가 왜 이 친구 도와주는 셈 치고 투어를 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버스시간까지는 한 시간이 더 남았다. 우리는 코피오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주변 아저씨들도 말을 걸어왔다. '미얀마 맥주 맛있지?' '미얀마 위스키는 먹어봤니?' '내가 한잔 줄게 한번 먹어봐-' '축구는 좋아하니?'
겉 핥기 여행자가 조금은 바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듯했다.
마지막으로 코피오에게 말했다. 덕분에 시간 낭비하지 않고 껄러로 갈 수 있게 되었다고, 고맙다고...
'그런데 어쩜 그렇게 말을 설득력 있게 잘하니-' 했더니, '내가 좀 그래- 나한테 걸린 이상 너네는 오늘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을 거야-' 라며 하얗게 웃는다.
역시나 밉지가 않다.
여행을 하다 보면 10원이든 100원이든 바가지를 쓴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한다. 또 최저가로 여행을 다닌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렇지만 그게 나한테 큰 손해가 아니라면? 작은 사기 정도는 눈감아 줘도 되지 않을까. 코피오의 말과 다르게 껄러로 가는 아침 버스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토바이 아저씨는 우리에게 팁을 더 받으려고 집과 가족을 보여줬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시간낭비 대신 바고 아저씨들과의 만남이 있었고, 바고를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코피오는 아직도 바고의 선술집에서 버스 티켓을 팔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