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파블로 네루다, 칠레 발파라이소

보니와 조의 지구한바퀴, 우리가 만난 사람들

by Bonnie

맞다. 우리가 아는 그 시인 파블로 네루다.

네루다의 집은 칠레에 세 군데가 있는데 우리는 발파라이소의 네루다 하우스를 방문했다.


칠레 발파라이소에 머물 때였다. 언덕에 올라서는 순간 눈에 들어온 풍경은 익숙했다. 내 고향 부산의 영도 항구와 똑 닮아 있었다. 한때 번성했으나 지금은 한물간 쓸쓸한 항구도시, 하지만 그 낡은 맛이 운치 있는 도시.


파블로 네루다의 집은 발파라이소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네루다는 항상 바다와 관련된 것들에 매료되어있었다고 한다. 꼭대기 작업실에는 모형 배, 선원들의 물건, 세계 지도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발파라이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집과 너무 어울리는 물건들이었다. 저절로 시가 나올 것 같은 풍경.


2층엔 거실과 바가 있었다. 네루다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식사하고 술 마시는 걸 좋아했다고... 낡은 의자와 벽난로, 오래된 유리잔들과 술병을 보고 있자니, 이 노인네는 무척 유쾌한 글쟁이였구나 싶었다. 시로만 알던 파블로 네루다와는 달랐다. 이래서 집이 그 사람의 얼굴일 수 있구나. 발파라이소라는 도시를 선택한 것도, 항구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언덕에 집을 지은 것 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공간도 다 네루다였다.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Puedo escribir los versos mas tristes esta noche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제일 슬픈 구절을.


예컨대 이렇게 쓴다. "밤은 산산이 부서지고 푸른 별들은 멀리서 떨고 있다."


밤바람은 공중을 선회하며 노래한다.


오늘 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을 쓸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때때로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


이런 밤이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

끝없는 하늘 아래서 나는 연거푸 그녀와 키스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때때로 나도 그녀를 사랑했다.

누가 그녀의 그 크고 조용한 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 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을 쓸 수 있다.

나한테 이제 그녀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에 잠겨.


광대한 밤을 듣거니, 그녀 없이 더욱 광막하구나.

그리고 시가 영혼에 떨어진다. 목장에 내리는 이슬처럼.


내 사랑이 그녀를 붙들지 못한 게 뭐 어떠랴.

밤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녀는 내 옆에 없다.


그게 전부다. 멀리서 누가 노래하고 있다 멀리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은 게 못마땅하다.


내 눈길은 마치 그녀한테 가려는 듯이 그녀를 찾는다.

내 가슴은 그녀를 찾고, 그녀는 내 곁에 없다.


같은 밤이 같은 나무를 희게 물들인다.

그때를 지나온 우리는 이제 똑같지가 않다.


나는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그건 그렇지만,

허나 나는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가서 닿을 바람을 찾기도 했다.


다른 사람 거. 그녀는 다른 사람게 되겠지. 지난날의 키스처럼.

그 목소리. 그 빛나는 몸. 그 무한한 두 눈.


나는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그런 그렇지만,

허나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지도 몰라.

사랑은 그다지도 짧고, 잊음은 그렇게도 길다.


이런 밤이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았으므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어버린 게 못마땅하다.

비록 이게 그녀가 내게 주는 마지막 고통일지라도.

그리고 이게 그녀를 위해 쓰는 내 마지막 시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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