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한 편
2024년 6월 17일,
1년 전 오늘. 나는 룩셈부르크에 이사왔다.
2025년 6월 17일,
얼마 전에 써놓았던 글을 여기에 붙여서 함께 공유하고 싶다.
‘추락의 해부’라는 영화를 봤다. 여기저기서 추천을 해서 기억하고 있다가, 결국 며칠간의 방학을 이용해서 봤다. 영화를 보면서 쉬는 느낌을 받는 건 오랜만이었고, 영화도 재밌어서 보고 나서도 시간 낭비를 했다는 찜찜함이 남지 않아 좋았다. 설산에 살고 싶다는 느낌과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 나의 안녕을 살펴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어제 사온 브리오쉬 빵에 버터와 딸기잼을 바르고, 계란과 베이컨을 넣는데 그 순간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빵에 난 촘촘한 결들, 풍성한 버터 향, 머릿속에 남은 영화의 잔상과 손끝에 맴도는 글쓰기에 대한 충동. 모든 것이 어우러진 순간에 터져 나오는 이름, R. 그와 일구어 가는 이 집 안에서 보내는 이 순간, 내 일상에 편안함과 생기를 가져다 준 이를 향하는 솟구치는 감사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까 고민하다, 나는 아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한낮에, 위로 솟았다가 가라앉는 내 배를 바라보며 누워 있는 시간마저 귀하게 여기다 못해 아까워하는 지금을 보내고 있음에,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 중 하나기에.
세상에 좋은 영화와 책, 작품 등이 많을 테지만, 적절한 순간에 내게 도움이 되는, 고통과 권태를 덜어 주는 방향으로 내 숨통을 틔워 주는 것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오늘에 걸쳐 본 영화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테고, 난 또 언젠가 다가올 특별한 작품을 가만히 기다리겠지.
욕심을 더 부려 보자면, 나는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살고 싶다. 햇살이 쨍쨍하고, 바닷가 혹은 호수나 폭이 넓은 강이 멀지 않은 곳, 민소매를 입어도 한기가 들지 않고 덥지도 않은 곳. 올리브를 마음껏 먹고, 어제 저녁에 먹었던 그 치즈, 꽃향기가 나던 치즈를 원할 때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에서. 매끼 와인 한 잔 곁들일 수 있는 일상을 보내면서, 욕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고, 합당한 보상과 보람을 느낀다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않는 일상. 무언가를 갈구하고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일상. 어떠한 자극도 바라지 않고,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런 단조로운 일상.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잃어도 포기할 수 없는 R이 곁에 있는 일상. 이제는 내 가족과 비슷한 수준 혹은 더한 중요도를 갖게 된 그의 야망과 즐거움과 행복을 지지하면서,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는 일상.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후회라는 생각과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내가 내일 죽는다면을 가정했을 때, 아쉽지 않아진 날들은 과연 언제 시작됐을까. 이러면 좋겠다는 소망이 흙먼지가 되어도 아쉽지 않은 지금을 나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 냈을까.
다음 주에는 파리에 간다. 파리를 떠난 지 막 1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 기차표도 호텔도 전부 제공을 받는 입장으로 나름의 ‘출장’으로 그곳에 다시 돌아간다는 게 사뭇 감동적이다. R과 같이 가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혼자 다녀오는 게 맞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몇 주가 걸렸는데,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3년 전 나는 R 없이 파리에 처음 갔다. 이후에 우리가 함께 몇 년간 쌓아 온 역사가 군데군데 남아 있어 매순간 기억을 자극할 것이 두려워도,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흘러서 여기에 와 있는지를, 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3년 사이에 결과적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내가 해 온 생각들과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지난 몇 년 사이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더 파고들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비록 그것이 포갠 두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퍼 나르는 일일지라도, 절대 도달하지 못할 층위의 이해일지라도, 뭔가는 해야 한다는 직감이 들기에, 그래서 한다.
지난주에 나는 누군가에게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글도 쓰고, 가르치는 일도 하고, 언어도 배우고 공부하면서, 친교도 쌓고 사랑도 하고, 무엇보다 자유를 더는 갈구하지 않는 현재를 맞이한 나의 현재 일들이 좋다고 했다. 그래? 정말 그런가? 오늘 나는 일이 좋기보다 일에 매이지 않고, 일과 나 사이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진, 일이라는 규명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그런 일상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일이 아닌 것? 일이란 무엇이더라. 무엇이 일이고, 무엇이 일이 아닌가. 경계를 허물 수는 있는가. 경계는 애초부터 없었던가. 아마 앞으로의 시간 동안 내가 붙들고 있을 새로운 테마는 이것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