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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 Oct 29. 2024

대필된 나 사용 설명서를 몽생미셸에 부쳐

설령 그것이 불리한 사항일지라도


어쩌다 이렇게, 오늘의 나


오늘의 나는 어쩌다 오늘의 내가 됐나, 그것을 알기 위해서 나는 지난 1년 간의 일기를 1년 후의 시점으로 써보기로 했다.그렇게 나는 과거의 나와 오늘 만나면서 곧 달라질 또 어쩌다의 나를 그려볼 수 있을 테다.


• 모든 글들은 찍은 사진들을 바탕으로 한다.


• 사진이 없을 경우 블로그, 메모, 모닝페이지 등 모든 것을 뒤져 정보를 찾아낸다.


• 그 무엇도 없을 경우, 전날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거나 1년 후 오늘 시점의 글을 쓴다.







24년 10월 28일 월요일 @룩셈부르크





로망에게 어제 나에 대해 써 달라고 했다. 최근에 굉장히 잘 지내는데, 그래서 정작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다는 생각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로망에게 내 이야기, 생각, 상념을 한 치의 숨김 없이 털어놓고, 그는 나와 거의 24시간을 붙어 있다시피 하니 어쩌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알 때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의 눈으로 보는 나에 대해 읽고 싶었다.



그리고 몇 시간, 사실 몇 시간 동안 이거 하는 척하면서 약간 산만하게 딴짓도 하느라 그리 오래 걸렸던 것 같긴 한데, 나중에 내게 메시지로 보내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입부부터 웃겼다. 누구신지, 나는 뉘신지요. 나요,



<보현은 누구인가요?>



저는 보현이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깊은 동기를 얻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그녀의 개인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가진 학생들을 만나는 것


2. 한국어에 대해 더 깊이 배우면서 모국어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


3. 그녀가 관심 있는 언어들에 대해 배우는 것


4. 문학 전반에 대한 탐구



보현의 동기를 관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가 이러한 주제들에 의해 동기를 얻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성이나 돈이 그녀의 목표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예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그녀의 주된 동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어느 정도 칭찬을 받거나 루이즈 같은 사람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을 좋아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갖는 것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좋아하는 일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면 좋은 것이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여깁니다.



보현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정말 즐기기 때문에, 교수라는 직업이 그녀에게 딱 맞는 조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사회적인 교류를 하며, 한국에 대한 지식을 깊이 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초보 교수들과 협업하여 자신의 지식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상황은 보현에게 큰 동기가 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있지만, 한두 번 정도만 할 수 있는 일이며 곧 흥미를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동기 부여가 된 보현은 잠들 때까지 일하고, 깨어나자마자 일할 만큼 열심히 노력합니다. 반대로, 동기가 떨어진 보현은 발을 질질 끌며 만족할 만큼만 일을 하며, 평소보다 더 열정적으로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에세이를 작성하는 것도 그녀에게는 좋은 일이 될 수 있지만, 주제에 따라 달라집니다. 보현은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그녀가 자신의 독특한 관점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진가를 발휘합니다. 그녀는 대부분 사람들이 흥미롭게 여길 만한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충분히 솔직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며, 이는 회사와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녀가 어떤 것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면, 설령 그것이 불리한 사항일지라도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녀의 생각이며, 그녀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솔직함을 바탕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제가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이런 주제에 대해 쓰려니 쉽지 않네요.









23년 10월 28일 토요일 @몽생미셸




몽생미셸에 갔다. 가기 전에 먼저 지베르니에 들렀다가 몽생미셸로 넘어갔다. 투어를 신청해 나, 로망, 엄마, 이모, 이모부 다 같이 갔다. 40인승 버스가 꽉 찼다.



모네 집은 대학원 시절에, 한창 해외여행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거기에 온 힘을 쏟던 시절에, 지금 돌아보면 추억 정도는 남았으나 꼭 우선순위가 될 필요는 없었다는 아쉬움에 괜히 격하게 쓰고 마는 그 여행에 미쳤던 시절에, 왔다 갔다. 워낙 나는 모네 그림을 좋아했기에 처음 모네 집에 방문했던 그때의 전율을 잊지 못한다. 인증샷 찍느라 바빴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아마도 한 번 왔다가서인지 아니면 어른들을 모시고 와서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다르게 구경했다. 엄마와 이모의 인증샷을 찍어주느라 바쁘긴 했으나 그들을 포함한 배경까지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고 했던 것 같다.



몽생미셸로 가는 차 안에서 무척 피곤하고 진이 빠졌던 기억이 난다. 나는 버스를 오래 타는 걸 싫어한다. 버스만 타면 신물이 난다. 경기도민으로서 대학, 대학원, 직장 등 늘 어딘가를 가려면 광역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이상을 타고 다녔다. 매번 멀미가 났고 도로에서 버리는 시간에 대한 아까움에 몸살이 잦았다. 버스도, 자가용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기차를 좋아한다. 기차를 타고 풍경을 보면서 노트북을 펼치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버스나 자가용 안에서는 글 쓰기가 힘들다. 아마 그래서 더 싫어하는 것일지도.



대만조 때를 맞춰 갔다. 일 년에 세 번인가 네 번 있다고 했던 그 대만조, 물이 차올라 다리가 잠겨버린다는 그 대만조를 볼 수 있는 날짜에 맞출 수 있는 타이밍이 신기했다. 비가 많이 왔다. 몽생미셸에 도착하고 호텔에 짐을 풀고 다리가 완전히 잠겨 통제되기 전에 서둘러 가자는 가이드의 말에 곧바로 다시 방에서 나와 관광지 버스를 타고 조금 가니 몽생미셸 앞에 도착했다. 이미 해수면이 많이 상승해 운동화에 물이 조금씩 젖어들었다. 해가 진 탓에 그림자진 바닷물이 지나치게 어두워 공포스러웠다. 나는 바다가 무섭다. 어렸을 때부터 바다가 무서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의 어둠이 어찌도 광활한 우주만큼의 공포를 자아내는지, 보다 보면 토할 것처럼 아찔해져서 물가에서 최대한 멀어지곤 했다.



엄마랑 다퉜던 것 같다. 내가 엄마를 찍어준 사진이 별로 없다. 좋은 날이었는데, 한 번밖에 못 가는 날이었는데도 화를 누르지 못하고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을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거늘 짐작은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더 참고 더 노력해볼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거다. 엄마의 단독 사진은 많지 않지만, 이모와 엄마가 함께 찍은 건 많다. 이모를 찍는 체하며 은근히 엄마의 사진을 같이 찍으려고 했던 노력이 보이는 사진들이다. 로망이 나를 대신해 엄마 사진을 좀 찍어주기도 했다. 쓰면서 기억나는 건 아마도 엄마가 호텔에서 내게 비 맞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라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했고, 엄마가 그럼 감기 걸리니 목이라도 여미라고 했는데 나는 젖은 머리가 뒷목에 닿는 게 싫어서 안 한다고 했다. 엄마가 참 말을 안 듣는다고 내게 뭐라 하며 로망에게 내 흉을 봤는데, 나는 그게 또 싫었다.



이런 자잘하고 사소한 다툼들이 쉼 없이 발생하는 여행을, 그걸 알면서도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어디로 여행을 갈지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짜며 반복하는 걸 보면, 역시 인간은 인간이다.



몽생미셸은 나도 프랑스에 여러 번 여행을 갔었고 살았었지만 처음 가는 곳이었다. 로망은 어렸을 때 아빠와 왔다 간 이후로 두 번째라고 했다. 내 기억이 맞나 싶어 방금 옆으로 고개를 돌려 물어봤는데 맞단다. 팩트체크 완료.



여행을 다니면서 또 유럽에 살면서 거기가 거기 같은 느낌에 점점 감흥이 없어지는 내 거만함이 못마땅했던 나에게 몽생미셸은 경종을 울리는 관광지였다. 여기서만 볼 수 있는 그 특유의 고유성이 살아 있는 대체 불가능한 장소가 갖는 의미와 아우라에 오지 못한 가족들을 떠올렸다. 아빠와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 만약 왔으면 좋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다음엔 다섯 식구가 꼭 와야지,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선명히 떠오르는 사진들을 1년 만에 다시 보니 가슴이 여러 의미로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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